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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8 (토)

    참수당한 王 찰스1세와 '손바닥 王' 윤석열의 무기징역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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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윤석열의 내란 수괴 재판에서 참수형을 당했던 17세기 영국의 왕 찰스1세가 언급됐다. 뜬금없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다는 점에서 이 사례는 지귀연 재판부의 인용 목적 외에도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다.

    지귀연 판사가 찰스1세를 언급한 건 지난 2월 윤석열이 1심 결심 공판의 최후 진술에서 한 다음의 주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의 법정 최후 진술은 온갖 파렴치한 거짓말과 정신병리학적 허위 망상으로 점철돼 있어서 상세히 언급할 필요가 없고, 지귀연 판사가 주목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절만 떼 온다.

    "전 세계 헌정사에도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와 관련하여 형사법정에 선 전례가 없다. 물론 계엄선포 이후 유혈사태가 발생하여 개별 행위들에 대하여 그 상당성과 책임 문제를 논하는 것은 별론이다.(...)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는 내란이 될 수 없다."

    지귀연 판사는 이 말을 듣고 아마 전 세계 헌정사를 뒤진 모양이다. 그러나 남미 등 저개발 국가의 사례는 떨어지는 게 없고 선진국의 사례는 찾을 수 없으니(당연하다. 민주주의 시스템이 공고화된 어느 선진국의 대통령이 내란을 벌이겠는가.) 근대법 원칙(법 아래 평등)의 탄생 설화로 간주되는 '찰스1세 사례'를 가져온 것 같다. 지귀연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영국에서 의회가 생기고 왕과 의회 사이에 세금 징수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는 일이 생기게 되다가, 결국 잉글랜드 왕 찰스 1세가 의회가 자신의 잘못 200가지를 시정해달라는 취지의 결의문을 낸 것에 분노하여 직접 군대를 이끌고 의회 의사당에 난입하여 그 자리에서 의회를 강제로 해산시키는 일이 발생하였고, 그 결과 왕과 의회 사이에 내전이 벌어져 결국 찰스 1세는 반역죄(왕이 국가에 대해 반역을 하였다고 인정하였음)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죽게 되었다. 이때부터 종래의 반역 개념, 즉 왕에 대한 범죄라는 생각이 점차 바뀌어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의회에 대한 공격을 하는 것은 왕이라 하더라도 주권을 침해한 것이 되어 반역죄가 성립된다는 개념이 퍼지게 되었다."

    첫번째로 지적할 점은, 윤석열의 주장에 귀한 판결문의 귀퉁이를 굳이 내어 줄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윤석열의 내란 사건은 고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 지도자가 스스로 헌법상 요건에 맞지 않는 비상계엄을 통해 친위 쿠데타를 획책한 것이 본질이다. 지귀연 판사 본인이 언급했듯 민주주의 이후 세계사에서 그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윤석열의 "전 세계 헌정사에도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와 관련하여 형사법정에 선 전례가 없다"는 주장은 "전 세계 헌정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초유의 국가긴급권 남용을 통해 친위 쿠데타를 획책했기 때문에 더 중한 처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말로 반박돼야 한다.

    또 하나는 군대를 일으켜 의회를 침공한 찰스1세를 언급해 놓고 왜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원칙적으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내란죄에 해당할 수 없"다는 모순된 판단을 내렸냐는 것이다. 애초에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려던 찰스1세의 의지에 일말의 정당성을 부여한다면 왕정복고를 추진했던 '왕당파'들이 모두 무덤에서 일어나 반길 일이다. 전두환의 불법 계엄에 대한 한국 법원의 판단 사례가 존재하는데 굳이 400년 전 영국의 사례를 들고 올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사실 찰스 1세의 사례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뒷 이야기다. 근대 공화국의 탄생과 백래시, 그리고 입헌군주제와 민주주의가 정립되는 어지러운 영국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1649년 찰스1세가 참수형을 당하고 의회파가 승리했지만, 왕당파(Cavalriers)들은 찰스1세를 '순교자'로 포장하고 영국 최초로 세워진 올리버 크롬웰의 공화국에 반기를 든다. 올리버 크롬웰의 공화국은 왕당파의 저항이 아니라 군사 독재 정치로 인해 스스로 무너졌다. 크롬웰 사후 왕당파는 찰스1세의 아들 찰스2세를 다시 왕으로 세웠다. 왕정복고다. 찰스2세는 크롬웰의 무덤을 파내고 교수형을 언도한 후 시신을 참수했다. 그리고 그는 25년간 통치했다. 그의 별명은 '즐거운 왕(Merry Monarch).

    이 '즐거운 왕'은 평화로운 시대를 열고 천부 왕권을 누리며 대대손손 잘 살았을까? 아니다. 뒤를 이은 찰스2세의 동생 제임스2세는 절대 왕정을 지지했던 카톨릭 교도임을 스스로 내세우며 세상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려 했다. 결국 의회는 영국 왕위 계승권을 가진 네덜란드의 빌렘3세를 끌어들였고, 제임스2세에 의해 추방된 군인들과 네덜란드 군인이 연합해 영국에 상륙하자 제임스2세는 프랑스로 도망쳐 루이14세의 왕궁에서 평생 연금으로 살아가게 된다.

    역사 속에서 보여지는 혁명→백래시→재혁명의 순환사다. 이 혼란은 1688년 명예혁명으로 이어지고 입헌 군주제가 확립되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무려 39년간 피로 점철된 정치사를 겪은 영국인들은 '절대왕정'과 '과격한 공화주의'를 모두 배격하기로 하고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점진적 혁명'을 일궈냈다. 100년 후에 벌어진 프랑스 혁명은 방식도 달랐고 훨씬 폭력적이었지만, 역시 수십년간 혁명→백래시→재혁명의 비슷한 절차를 거치게 된다.

    기왕 지귀연 판사가 찰스1세의 사례를 꺼냈으니, 한국의 현대 민주주의에서도 비견해 볼 만한 구석을 찾아보자. 요컨대, 찰스1세에는 윤석열이 아니고, 박근혜를 대입해 볼 수 있겠다. 무능과 폭정이 대통령 탄핵을 불러왔고, 폐위된 왕의 자리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으나, '왕당파'의 집요한 복고 노력은 최악의 대통령 윤석열 정권을 기어이 탄생시켰다. 윤석열 정권의 폭정은 한국을 명예혁명(무혈혁명)으로 이끌었고,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공고화 과정을 밟아가고 있는 중이다. 지난 10년간 우리가 겪은 혁명과 백래시, 그리고 재혁명의 과정이다. 민주주의의 역사 역시 도전과 응전의 반복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수십년 걸려 달성한 일들을 21세기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10년동안 겪어낸 셈이다.

    지귀연 판사가 이런 스토리까지 염두에 두고 찰스1세를 인용하진 않았겠지만, 우린 여전히 '윤어게인'을 외치고 윤석열에 대한 단죄를 '순교'로 미화하려는 현대판 '왕당파'들과 함께 호흡을 하고 있다. 두번의 탄핵을 겪고도 장동혁 체제의 국민의힘은 여전히 '미몽'에 빠져 있는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되돌리려는 노력은 언제나 실패했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

    역사에서 반동은 언제나 두 번 나타났다. 첫번째 개혁은 항상 실패했다. 윤석열의 존재는 한국 현대사의 암흑기이자 반동적 체제였다. 국민의힘은 과거 왕당파처럼 권력 그 자체를 위해 윤석열이란 폭군을 세웠으나, 역사는 또 다른 '명예혁명'으로 낡은 잔재를 청산하고 있는 중이다. 민주주의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프레시안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윤석열 전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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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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