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인 줄 알았는데"…낚시성 결제에 우는 소비자
법망 비웃는 상술, '열거식 규제'로는 역부족
기술 진화 못 따라가는 법…'포괄적 금지' 도입되나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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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TV=정명진 인턴기자] 최근 직장인 정 씨(57)는 통장 정리 중 황당한 경험을 했다. 가입한 기억이 없는 '쿠팡 와우 멤버십' 월회비가 8개월째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사실을 인지한 정 씨는 그제서야 멤버십 해지 신청을 했다.
정 씨처럼 본인도 모르는 사이 OTT나 쇼핑 플랫폼에 구독돼 비용이 지출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소비자 부주의'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소비자가 인지하기 어렵게 설계된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기술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행법을 보완하기 위한 포괄적 규제안 논의에 나서고 있다.
두잇 결제화면 이미지[사진=어플 화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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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성 가격 뒤에 숨은 '자동 가입'
소비자를 속이는 수법은 배달 플랫폼에서도 나타난다. 배달 앱 '두잇'을 이용하는 한 사용자는 "799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을 보고 주문을 진행했는데, 알고 보니 멤버십 가입을 전제로 한 금액이었다"고 토로했다. 해당 제품을 구매하면 멤버십에 자동으로 구독돼 2주 후부터 월 2900원이 자동으로 결제되기 시작한다. 결제 화면에 띄워진 안내가 마치 일반적인 혜택 안내처럼 구성되어 있다 보니, 소비자들은 별생각 없이 결제 버튼을 눌렀다가 나중에야 유료 구독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실제로 블로그 등에서 '큐레이션 상품에 멤버십이 포함돼 있어 모르는 사이에 멤버십이 결제됐다'는 후기를 찾아볼 수 있었다.
무료 체험을 미끼로 구독이 자동으로 전환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디자인 플랫폼 '미리캔버스'는 7일 무료 체험 이후 별도의 해지 절차를 밟지 않으면 자동으로 유료 멤버십에 가입되는 구조다. 이용자가 기간 내 해지하지 않으면 곧바로 정기 결제가 시작된다.
영상 편집 앱 캡컷 역시 무료 체험 종료 후 유료 구독으로 자동 전환되며, 연간 구독료인 약 18만 원이 한 번에 결제된다. 더 큰 문제는 결제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다. 전액 환불을 받으려면 결제 후 14일 이내에 신청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사이 서비스를 단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어야 한다. 사실상 구독 전환을 즉시 인지하지 못하면 거액의 구독료를 떠안아야 하는 구조인 셈이다.
이러한 수법은 전형적인 '다크패턴'으로 분류된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다크패턴을 "이용자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했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조작적·기만적 설계"라고 정의한다. 이는 소비자들의 긍정적인 행동을 유도해 구매로 이어지게 하는 '넛지(Nudge)'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다크패턴이 심각한 이유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2021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모바일 앱 100개 중 97%에서 최소 1개 이상의 다크패턴이 발견됐다.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서도 '숨은 갱신'과 '특정 옵션 사전선택' 유형의 피해 경험률이 각각 92.6%와 88.4%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의 제재와 비판 여론 속에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해지 절차를 고의로 숨기거나 복잡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해 쿠팡 등 일부 플랫폼은 회원 해지 단계를 기존 4~5단계에서 2단계로 줄이는 등 간소화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소비자를 유료 결제의 늪으로 끌어들이는 다크패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자상거래법 온라인 다크패턴 규제[사진=공정거래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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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는 있지만... '우회 수법' 앞에 무용지물
문제는 관련 규정이 있음에도 유사한 피해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3년 다크패턴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2024년 전자상거래법 개정을 통해 △숨은 갱신 △순차공개 가격책정 △특정 옵션 사전 선택 △잘못된 계층구조 △취소·탈퇴 방해 △반복 간섭 등 6개 주요 유형에 대한 법적 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계가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7월 발간된 국회입법조사처의 '다크패턴의 법제화와 적용상 쟁점 및 보완과제'에 따르면 일부 조항은 문언이 추상적이거나 적용 기준이 불명확해, 실제 현장에서 해석의 일관성이나 사업자의 예측 가능성에 한계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6가지 유형으로 열거식으로 규율하고 있어 새로운 형태의 다크패턴에는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 역시 "현재 다크패턴을 조사하고 모니터링하는 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어 적발과 피해 구제가 제때 이뤄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이어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할 유인이 부족한 반면, 소비자는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온라인 거래 환경에서 대응 역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유럽이나 일본은 중개 플랫폼의 책임 범위를 강화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중개 플랫폼의 명성이나 인지도에 비해 실질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여지가 적어 아쉽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에서 사업자가 이를 위반할 경우 부과되는 과태료는 500만 원 이하 수준이다. 기업이 다크패턴을 통해 얻는 막대한 부당 이득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술이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은 행위를 일일이 열거해 금지하는 방식이어서, AI 알고리즘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우회 수법에는 대응이 쉽지 않다. 소비자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해 설계된 맞춤형 추천 알고리즘은 선택의 폭을 자동으로 좁히며 실질적인 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지만, 이러한 방식은 ‘명확한 금지 행위’로 규정되지 않아 법망을 피해 가는 실정이다.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기존에 예상하지 못한 방식의 유인·왜곡 수단이 등장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나열식 규제 넘어 포괄적 금지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20일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존의 나열식 규제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 발전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포괄적 규제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금지 유형을 개별적으로 열거하는 수준을 넘어, ‘부당한 방식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유인·왜곡하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포괄적으로 정의해 금지하도록 했다. 동시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실제 사례 중심의 해설서를 마련해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상시 업데이트할 수 있는 근거를 명문화했다.
이해민 의원실 관계자는 "작년 국정감사 때 하이브가 '얼굴패스'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해당 정보가 토스에 1년간 보관된 사례를 조사하다 보니 여섯 가지 유형만으로는 다크패턴을 온전히 잡기 어렵다는 점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개정안으로 소비자의 피해가 발생한 후 이를 규제하는 것보다 미리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영애 교수는 소비자 교육과 홍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온라인 거래가 일상화되면서 소비자들이 플랫폼과 서비스에 대해 과도한 신뢰를 갖는 경향이 있다”며 “이 같은 환경에서는 다크패턴이 기만이나 현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비자들이 자동 결제나 구독 구조의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교육과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myngjin@sedaily.com
정명진 기자 myng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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