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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8 (토)

    "주식계좌에 20억 벌어놓고도 못 쓴다"...은퇴 후 자식의 삶까지 갉아먹는 '이 병' [은퇴자 X의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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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설계를 흔드는 가장 불편한 변수 '치매'
    의사결정권 약화로 자산 통제조차 못할수도


    파이낸셜뉴스

    치매에 걸린 부모를 돌보아야 할 50대에서 '경도인지장애'가 크게 늘고 있다. 치매는 기억을 잃어가는 고통스러운 질병이다. 환자 1명당 한 해에 2000만원 넘게 관리 비용이 든다는 점에서도 은퇴생활에 만나고 싶지않는 최대 변수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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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낸셜뉴스]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 배우 정우성과 손예진이 주연으로 참여한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는 그 시대 2030에게 멜로 영화의 상징처럼 회자됐다. 기억을 잃어가는 연인과 그를 바라보는 연인의 이야기. 그때만 해도 치매는 극적인 설정을 위한 장치처럼 느껴졌다. 사랑을 더 애절하게 만드는 서사적 도구였다.

    초로기 치매 9만~10만명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X세대에게 치매는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통계로 다가온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6년 3179명이던 50대 치매 환자 수는 2011년 6547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5년새 두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최근 수치는 없지만 증가세를 고려하면 현재는 5만명을 넘어섰을 수도 있다.

    실제 65세 미만에서 발병하는 ‘초로기 치매’는 전체 치매 환자의 약 8~10%를 차지한다. 인원으로는 약 9만~10만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50대는 은퇴 설계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하는 시기다. 주택담보대출을 정리하고, 자녀 교육비를 감당하며, 노후를 위한 자산을 굴리는 세대다. 이 시기에 치매가 발병하면 문제는 단순한 질병을 넘어 가계 구조 전체를 흔든다. 소득은 줄고, 지출은 늘고, 판단 능력까지 약해진다. 은퇴 설계 전제가 무너질 수 있다.
    가장 두려운 병,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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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령별로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그래픽=정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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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에 대한 두려움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수치로 확인된다.

    대한치매학회가 2025년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치매가 연령별 가장 걱정되는 질병 1~2위에 올랐다. 만 19~24세와 30대, 40대는 '암'을 꼽았지만 50대와 60대 이상은 나란히 '치매'를 골랐다. 특이한 점은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도 치매를 암에 이어 걱정되는 질병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최근 휴대전화에 자주 울리는 실종 알림도 그 현실을 보여준다. ‘○○에서 배회 중인 △△△를 찾습니다. 발견 시 112 신고 바랍니다.’ 실종자의 상당수가 고령자다. 모두가 치매 환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인지 저하와 무관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치매는 통계가 아니라 일상의 장면이 됐다.

    치매 100만명 시대, 잠재 치매인은 4명 중 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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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 및 경도인지장애진단자수 /그래픽=정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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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은 현실이 되고 있다. 2026년 한국은 ‘치매 환자 100만명 시대’에 들어선다. 치매는 더 이상 일부 고령층이나 특정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치매역학 조사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국내 치매 환자 수(65세 이상)는 약 97만명으로 추정된다. 유병률은 9.17%다. 2030년에는 121만명, 2050년에는 226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히 인구가 늙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로 보기에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더 주목해야 할 숫자는 따로 있다. 치매 환자보다 훨씬 많은 ‘경도인지장애(MCI)’ 인구다. 경도인지장애는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일상생활은 아직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해 ‘치매 바로 직전 단계’다.

    2025년 기준 국내 경도인지장애 추정 인구는 약 298만명. 65세 이상 노인의 약 28%에 해당한다. 65세 이상 어르신 4명 중 1명 이상은 '아직 치매는 아니지만, 언제든 넘어갈 수 있는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이 수치는 2030년에는 368만명으로 늘어나고 2050년에는 568만명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 인구 증가 속도를 감안하면 치매는 이미 ‘예정된 미래’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현실’이다.

    비용의 역습: 은퇴 설계의 최대 지출항목

    치매는 질병 중 하나지만 영향은 삶 전반으로 번진다. 아니 본인뿐 아니라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병원비과 요양시설 비용이 증가하며 지속적인 돌봄 노동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대가족 안에서 흡수되던 돌봄이 지금은 요양원과 방문요양, 간병 서비스로 이동했다. 돌봄은 외부화됐고, 비용은 개인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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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환자 1인당 연간 관리비용(2023년) /그래픽=정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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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치매환자 1인당 연간 관리비용은 2023년을 기준으로 2639만원에 달한다. 직접의료비가 1115만원, 노인장기요양비 1103만원, 직접비의료비 331만원, 간접비가 88만원 수준이다. 여기서 직접의료비는 치매 치료를 위한 의료비, 약제비로 구성되며 직접비의료비는 간병비, 병원이용 교통비 등을 포함한 금액이다.

    연간 치매 관리비용은 같은 해 가구소득 평균(약 6029만원)의 40%가 넘는 수준이다.

    물론 가족이 이 금액을 모두 생돈으로 내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라는 강력한 안전망이 있다. 등급 판정을 받으면 시설 급여(요양원 등)는 비용의 80%를, 재가 급여(방문요양 등)는 85%를 국가가 지원한다. 즉, 식재료비와 비급여 항목을 포함하더라도 가족이 부담할 실질 비용은 월 60만~120만원 선으로 내려간다.
    문제는 이 '줄어든 비용'조차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겐 매달 고정적으로 발생하는 재무적 타격이라는 점이다.

    실제 서울 관악구에 사는 박철원씨(57·가명)씨는 3년 전 어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은 뒤부터 통장 씀씀이가 달라졌다. 요양보호사 비용, 기저귀, 병원비…. 한 달에 80만원 가량 나간다. 그러다 문득 '나는? 나중에 내 아이들도 이러겠구나'라는 생각에 노후 비용을 다시 계산했다. 치매는 남의 일이 아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치매가 '우리 가계'에 얼마짜리 청구서로 오는지 파악해야 한다.

    더 본질적인 변화: 의사결정권의 약화

    치매가 무서운 이유는 기억 상실 그 자체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의사결정권의 약화다.

    병세가 진행되면 당사자는 자신의 예금을 인출하거나, 보험을 해지하거나, 부동산을 처분하는 판단을 스스로 내리기 어려워진다. 이때부터 자산은 ‘보유’와 ‘통제’가 분리된다.

    자산은 있지만 활용은 쉽지 않다. 은행은 본인 확인을 요구하고, 금융기관은 분쟁을 우려한다. 가족은 급한 병원비를 마련하려다 절차 앞에서 멈춘다.

    이 지점에서 치매는 의료의 영역을 넘어 재정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기존의 은퇴 설계는 숫자 중심이었다. 얼마를 모을 것인가, 몇 세까지 버틸 것인가, 연금 수익률은 얼마나 되는가, 하지만 치매 사회에서는 질문이 달라진다.

    내가 판단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내 돈은 어떻게 쓰이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자산 규모는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
    제도는 이미 작동

    정부는 지난 2006년 제1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을 내놓은 이후 5년마다 대책을 내놓고 있다.

    치매안심센터
    전국 256곳에서 조기검진, 가족 상담, 사례관리, 장기요양 등급 연계를 지원한다. 진단 이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가족에게 첫 관문이 된다.

    ▶장기요양보험
    등급 판정을 받으면 방문요양, 주야간 보호, 시설 입소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본인 부담은 있지만, 전액 자부담과는 구조가 다르다.

    공공후견 및 재산관리 지원 확대
    정부는 치매 환자의 권리 보호와 재산 관리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하고 있다. 공공후견 지원 확대, 재산관리 지원 시범사업 등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또 최근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6~2030)’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예방과 조기검진을 확대하고, 지역사회 돌봄을 강화하며, 공공후견과 재산관리 지원을 넓히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치매를 의료의 문제에서 생활과 권리 보호의 문제로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제도는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알고 신청해야 하고, 설계에 반영해야 비로소 안전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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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자 X가 지금 해야 할 점검

    전문가들은 미리미리 치매와 관련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 부모 자산의 위치와 구조를 알고 있는가
    □보험 수익자 지정은 명확한가
    □의료·요양비 예상 규모를 계산해봤는가
    □형제자매 간 역할은 정해져 있는가
    □고액 이체 알림 등 금융 안전망은 설정했는가
    □무엇보다 “판단 능력이 있을 때 정하자”는 대화를 시작했는가
    준비는 거창한 자산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판단 능력이 약해진 뒤에는 선택지가 급격히 줄어든다.

    간병 파산이나 간병 비극은 효심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구조의 문제다. 치매는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고령화 사회의 상수다. 은퇴 설계는 이제 연금 계산표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인지 기능 저하라는 변수를 포함한 설계로 확장돼야 한다.

    그리고 다음 질문이 남는다. 자산은 있는데, 쓰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 회에서는 치매가 돈을 멈추게 하는 순간과 ‘치매머니’의 구조를 짚어본다.

    '은퇴=퇴장'이라는 낡은 공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평균수명 83세 시대, X세대가 본격적인 은퇴를 맞이하면서 기존의 은퇴 개념 자체가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담은 [은퇴자 X의 설계]가 매주 토요일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면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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