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1 (사진=코티컬 랩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배양 접시 속 인간 뉴런(Neuron)이 고전 게임을 학습하고 플레이하는 시대가 열렸다.
호주 스타트업 코티컬 랩스(Cortical Labs)는 27일(현지시간) 20만개의 인간 뉴런을 칩 위에 배양한 신경 컴퓨팅 시스템 'CL-1'으로 1인칭 슈팅 게임 '둠(Doom)'을 구동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코티컬 랩스는 최근 공개한 영상에서 이른바 '리얼 뉴런 게임플레이(Real Neuron Gameplay)'를 시연했다. CL-1은 다중 전극 배열이 탑재된 마이크로칩 위에 약 20만개의 인간 뉴런을 배치한 시스템이다.
인간 뇌 전체 뉴런 수가 수백억개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실험 결과는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이 시스템은 단순히 게임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뉴런이 직접 게임에 반응하도록 설계됐다. 화면의 시각 정보는 전기 자극 패턴으로 변환돼 뉴런에 전달되고, 뉴런이 특정 방식으로 발화하면 그 신호가 다시 게임 속 캐릭터의 행동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특정 패턴으로 발화하면 캐릭터가 총을 쏘고, 다른 패턴이면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뉴런이 게임을 배우는 원리는 '자유 에너지 원리'에 기반한다. 뉴런이 예측 불가능한 자극(무작위 소음)을 피하고 예측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학습이 일어난다.
현미경으로 본 칩 위에는 유기적으로 얽힌 뉴런 네트워크가 반듯한 회로 기판 위를 뒤덮고 있다. 생물학적 조직과 실리콘 회로가 결합한 모습은 SF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현재 뉴런들의 게임 실력은 초보자 수준이다. 연구진은 "이 세포들은 컴퓨터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초심자처럼 플레이한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뉴런 네트워크는 가소성(plasticity)을 지니고 있어 반복 자극을 통해 점차 적응하고 학습할 가능성이 있다. 인간 두뇌의 학습 능력도 이러한 신경망 가소성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성능 개선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또 영상 속 게임은 원작 둠이 아니라 '프리둠(Freedoom)'이다. 둠 엔진을 기반으로 하지만, 저작권이 남아 있는 원작의 몬스터와 무기는 포함하지 않은 오픈소스 버전이다.
이 회사는 지난 2022년 10월 약 80만개의 뉴런으로 구축한 '디시브레인(DishBrain)' 시스템으로 '퐁(Pong)' 게임을 플레이한 사례로 유명해졌다. 이번에는 훨씬 복잡한 3D 게임으로 성능 향상을 입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코티컬 랩스의 브렛 케이건 박사는 논문에서 이 시스템을 '지각이 있는(Sentient)' 상태라고 표현해 과학계에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다른 과학자들은 '단순한 전기적 반응'일 뿐이라고 맞섰다.
코티컬 랩스는 개발자들이 파이썬 기반 API를 통해 CL-1에 원격 접속해 실험할 수 있는 '코티컬 클라우드'도 출시했다. 전 세계 연구자와 개발자가 생체 신경 컴퓨팅을 실험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CL-1은 세계 최초의 바이오하이브리드 컴퓨터로, 가격은 3만5000달러(약 5000만원)로 알려져 있다. 실제 복잡한 생물학적 신경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여러개의 유닛이 필요하므로 병렬 연결을 통해 확장 가능하다.
이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는 '에너지 효율성'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고작 20W 내외의 전력으로 슈퍼컴퓨터급 연산을 수행한다. 기존 GPU 기반 AI의 막대한 전력 소모를 해결할 대안으로서 가치가 주목된다.
하지만 윤리적 논란도 제기된다. "이 뉴런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제기된다. 현재 코티컬 랩스에서 사용하는 뉴런은 실제 환자의 뇌에서 추출한 것이 아니라, 유도만능줄기세포(iPSCs)를 이용해 배양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과거 무단으로 채취된 세포가 상업·연구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며 논란이 됐던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 사례처럼, 생체 유래 물질의 소유권과 동의 문제는 앞으로 쟁점이 될 수 있다.
또 인간 뉴런이 탑재된 시스템이 게임을 넘어 상업적 AI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경우,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를 두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찬 기자 cpark@aitimes.com
<저작권자 Copyright ⓒ AI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