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목포
고하도에서 바라본 목포 유달산 [사진/임헌정 기자] |
◇ '바다 보다, 너 보다'
목적지는 목포가 아니라 유달산이었다. 유달산이 목포에 있었지만, 왠지 유달산이 없다면 목포도 없고, 목포가 목포다운 건 유달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유달산에 가는 방법들. 직접 오르고, 멀리서 바라보고…. 여기에 몇해 전 해상케이블카가 추가됐다. 케이블카에 대한 선입견을 단박에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북항 승강장. 평일이라 한산했고 여느 케이블카 승강장과 큰 차이가 없다.
캐빈에 탑승하고 불과 1분 뒤. 창밖 풍광에 말을 잃는다. 짙은 옥빛의 바다, 그 위에 섬, 섬, 섬… 그리고 그 속에서 울퉁불퉁 존재감을 드러내는 바위산. 그 옆에 빽빽한 목포 도심이 스며들었다.
유달산 상공을 지나는 목포해상케이블카 [사진/임헌정 기자] |
바다·산·도시의 절묘한 어울림에 눈을 떼지 못한다. 풍경은 모두를 압도한다. 캐빈 유리창에 새겨진 "바다 보다, 너 보다"라는 문장이 겨울 하늘 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총길이 3.23㎞의 케이블카는 중간에 유달산 정거장을 지나 고하도로 향한다.
유달산 중턱을 지나면서 왼쪽으로 신선이 노닌다는 '유선각'(儒仙閣)을 내려다보고, 구름을 바라본다는 '관운각'(觀雲閣)을 올려다본다.
케이블카로 이 두 누각에 가고 싶다면, 고하도에서 북항으로 돌아올 때 유달산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본 목포 앞바다 [사진/임헌정 기자] |
윤슬로 반짝이는 다도해와 거미줄 같은 목포 시가지가 한눈에 잡히는 유선각 앞에는 수필가 차재석이 쓴 표비가 있다.
"흰 구름이 쉬어 가는 곳입니다. 세 마리의 학이 고이 잠든 푸른 바다의 속삭임을 새벽 별과 함께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풍경에 놀라고 표비 글의 멋스러움에 또 한 번 놀란다.
◇ 짙은 회색빛 곰솔
고하도. 병풍처럼 둘러친 유달산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전망대로 향하는 길 주변은 해안가에서 자라는 곰솔 군락지다. 검은빛이 도는 짙은 회색의 수피가 한겨울에도 푸른 침엽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군데군데 굴피나무, 광나무, 사스레피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소사나무 같은 활엽수들이 곰솔 군락 속에서 대항하듯 무늬처럼 박혀 있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유달산 관운각 [사진/임헌정 기자] |
10분쯤 걸으니 전망대가 나타났다. 고하도는 이순신 장군이 1597년 9월 13척의 판옥선으로 명량대첩을 이끈 뒤,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06일간 머무르며 전열을 가다듬었던 섬이다.
전망대는 13척의 판옥선 모형을 격자형으로 쌓아 올린, 독특한 건축물이다.
2층부터 5층까지 이순신 장군이나 목포 관광에 대한 전시물이 볼만하고 층마다 유달산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옥상 전망대는 쪽빛 바다와 유달산 기암괴석의 진면목이 꾸밈없이 드러나는 곳이다.
고하도에는 1.8㎞ 길이의 해상 데크 길이 있다. 구불구불 뱀처럼 이어진 데크 길 위로 고하도와 육지를 잇는 목포대교가 하늘을 나는 용처럼 떠 있는 절경과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착각을 선사한다.
목포대교 [사진/임헌정 기자] |
용머리 방향으로 가면 충무공의 동상도 만날 수 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곳곳에 나타나는 장군의 모습은 신에 필적하는 존재감을 자랑한다.
◇ "오포 텄다. 밥 먹으러 가자"
몇번을 왕복해도 새로울 것 같은 케이블카에 대한 미련을 뒤로 하고 대학루(待鶴樓)와 오포대로 향했다.
대학루는 '학을 기다리는 누각'이란 뜻이다. 이름의 뜻을 푸니 멋도 함께 풀려나온다.
유달산을 두 발로 오른다면 출발점이 될 수 있는, 비교적 낮은 곳에 있지만, 목포를 내려다보는 경치만큼은 유달산의 여느 곳에 뒤지지 않는다.
판옥선 모형을 본뜬 고하도 전망대 [사진/임헌정 기자] |
바로 밑으로 노적봉이 내려다보인다. 유달산 등산의 시작점인 대학루에서 내려다보인다니 봉우리가 맞나 싶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은 노적봉 위를 짚으로 덮어 마치 군량미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도록 하고 주민들에게 군복을 입혀서 노적봉 주위를 돌게 해서 마치 대군이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
또 영산강에는 백토 가루를 뿌려 바다로 흘러드는 물줄기가 쌀뜨물로 보이게 하는 전략도 썼다.
적의 사기는 꺾였고 결국 왜장은 군사를 돌려 후퇴했다. 지형을 이용한 고도의 심리전이다.
노적봉을 돌던 전술은 훗날 강강술래로 발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노적봉 [사진/임헌정 기자] |
대학루에서는 노적봉이 정면으로 보이고, 노적봉을 바라보는 충무공 동상의 뒷모습도 볼 수 있다.
대학루 옆에는 일제강점기 정오(正午) 시간을 알리는 신호 기구인 오포대가 있다.
원래 1909년 4월 노적봉 인근 옛 측후소 동산에 설치했다가 일제 말기 일본이 공출로 거둬 가버린 것을 1988년 복원한 것이다.
오포가 있던 그 옛날 목포에서는 점심때면 노동자들이 "오포 텄다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고 한다.
후일 오포가 사라지고 사이렌 소리가 등장했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오포 텄다'는 표현을 썼다.
오포대와 대학루 [사진/임헌정 기자] |
◇ 히말라야시다와 조각공원
대학루 앞에 이국적인 모습의 나무 몇그루가 눈길을 끌었다. 분명 상록 침엽수인데, 가지에 난 잎들이 둥근 모양의 섬처럼 나뉘어 공중에 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나무일까. 물어보니 '히말라야시다'로 잘 알려진 개잎갈나무라고 한다. 원래 전나무처럼 생긴 평범한 모습인데 가지치기를 특이한 형태로 한 것이었다.
히말라야가 원산인 개잎갈나무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일본인들이 들여온 수종으로 현재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노적봉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보기 드문 개잎갈나무를 보게 된 게 신기했다.
유달산조각공원 작품 사이로 보이는 목포 시내 [사진/임헌정 기자] |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도 '꼭 가보라'고 감히 권할 수 있는 곳이 유달산조각공원이다.
1982년 우리나라 최초의 야외조각공원으로 문을 열었고, 작품성을 인정받은 국내외 저명한 조각가들의 작품 104점이 전시된 것은 차치하고, 목포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등바위 바로 아래 자리 잡고 있고, 각종 희귀목과 관상수가 조각과 어우러져 더없는 힐링 장소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여름이면 만개한 수국과 시원한 분수까지 감상할 수 있다.
◇ 목포는 왜?
유달산 자락에 있는 북교동엔 목포의 모던보이 1세대이자 한국 근대극의 개척자로 불리는 김우진을 기념하는 거리가 조성돼 있다.
이곳은 목포 문학 거리로, 목포 출신인 한국 근현대 문학 거장들(김우진, 박화성, 차범석, 김현)의 거리가 모두 인접해 있다.
반딧불 작은 도서관의 김우진 관련 조형물 [사진/임헌정 기자] |
가수 윤심덕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진 사건으로 더 유명해졌지만, 김우진은 30년을 채우지 못한 짧은 생애에 한국 문학계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그가 1925년 집필한 희곡은 최초의 한글 근대극이고 1926년에 쓴 '난파'와 '산돼지'는 한국 최초의 표현주의 희곡이자 실험극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최후의 선택을 했을까. 혹시 그의 작품 속에서 그 열쇠를 찾을 수 있을까. 유달산을 생각하며 김우진의 문학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목포 출신으로 훨씬 더 대중적인 셀럽이 있다면 단연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을 꼽을 수 있겠다.
유달산 중턱에 있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에서는 지금도 이난영의 구슬픈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목포항 부두 [사진/임헌정 기자] |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항구 목포에는 왜 늘 이별 이야기가 나오는지, 목포는 왜 '설움'과 '눈물'로 이해해야 하는 건지. 유달산에 올라 보면 조금이나마 알게 되지 않을까.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fait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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