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이란 공격에 글로벌 지형도 먹구름
지지율 하락에 트럼프 국면 전환용 선택
장기전 땐 미군 차출 등 한반도에도 파장
北 핵도발 위협 속 한미동맹 더 굳건해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였던 보수 논객 터커 칼슨은 미국의 이란 공격 직후 “역겹고 사악한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번 사태가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그가 말한 판도는 이란의 핵 개발이나 중동 분쟁의 판도가 아니라 미국 정치 역학의 판도였다. ‘여자 트럼프’라고 불렸던 마저리 테일러 그린 전 미국 하원의원도 트럼프의 이번 군사작전에 격한 말을 토해냈다. 그린 전 의원은 소셜미디어에 “트럼프 행정부는 늘 거짓말이었고 미국은 뒷전이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한술 더 떠 “이번에는 최악의 배신처럼 느껴진다”고도 쏘아붙였다.
이란 공격을 두고 미국 내 여론은 부정적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란 공습 직후 진행된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서 ‘이란 공격을 반대한다’는 응답은 43%였다.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27%에 그쳤다. 인상적인 것은 칼슨과 같은 트럼프 핵심 지지층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정치 토대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은 대외 군사 개입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2기 집권 이후 기존 약속과 엇박자 행보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핵심 지지 기반에서조차 부정적 정서가 커질 것을 뻔히 예상하고도 이란 공격을 결정했던 배경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거론되는 것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국면 전환용으로 이란 공격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해석이다. 자신의 지지 텃밭에서조차 흔들리는 지지율에 트럼프가 극단적인 판 흔들기 전략에 나선 것이라는 의미다. ‘필요에 의한 전쟁, 선택에 의한 전쟁’의 저자인 리처드 하스 전 미 외교협회 회장은 “미국의 이번 이란 공격은 이란을 공격할 ‘필요성’이 있었던 게 아니라 ‘기회’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미국 언론 뉴욕타임스도 트럼프의 이란 공격은 궁극적으로 ‘선택에 의한 전쟁’이라고 진단했다.
역사의 선례를 보면 궁지에 몰린 국가 최고지도자들이 국내 정치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적을 향한 공격 명령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오죽하면 ‘전쟁론’을 쓴 프로이센의 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서 정치의 연장이다”라는 경구를 남겼겠는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란 정치와 분리된 행위가 아니라면서 국가의 정치 목표와 정책에 맞게 엄격하게 계획되고 통제돼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트럼프의 이번 이란 공격은 미국 국익은 물론 보수 진영의 정치적 이해와도 크게 어긋나 있다는 점에서 도박에 가까워 보인다.
중간선거를 겨냥해 운명의 주사위를 던진 트럼프의 베팅이 성공할 가능성의 기댓값은 전쟁이 단기간에 미국의 승리로 끝나야 겨우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정가에서는 벌써부터 장기전 가능성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번 전쟁은 패권 경쟁의 기운이 팽배한 글로벌 지형도에 짙은 먹구름을 불러들이고 있다. 영국·프랑스 등 우방국에서는 전쟁 대신 이란과의 대화를 촉구하며 미국과의 거리두기에 나섰지만 중국·러시아 등 패권 경쟁국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긴장감이 커진 곳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다. 그러지 않아도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컸던 한반도는 자칫 후폭풍에 휩싸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이란 공격이 “4~5주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더 오래 지속할 능력을 갖고 있다”며 확전과 장기전 가능성을 에둘러 인정했다.
문제는 이란이 이스라엘 등에 반격하고 미국이 추가 대규모 공격에 나서면 주한미군의 첨단 장비는 물론 주요 부대의 차출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NSS)에 담겼던 주한미군 무기와 병력의 수시 이동이라는 ‘전략적 유연성’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국방 전략 변화에 따라 국군은 대북 억제력의 중요 축을 담당해야 하지만 우리 군의 대비 태세는 그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가는 모습이다. 9일부터 시작하는 한미연합 자유의방패 훈련 규모는 지난해보다 크게 축소됐다.
트럼프의 대이란 전쟁은 한반도의 미래에 큰 불확실성을 가져올 수 있다. 북한의 핵 도발 위협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의 공고화는 한반도 위기를 막는 안전장치다. 자칫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장기화 소용돌이 속에서 약한 고리의 틈바구니로 전쟁의 화염이 새어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홍병문 논설위원 hbm@sedaily.com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