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 사회자가 내게 아들이 무엇을 잡았으면 좋겠냐고 물었고, 나는 가급적 기타만 안 잡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사회자의 외침에 맞추어 작은 손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결국 아들은 하나를 골라 손에 쥐었다. 아들의 손에 기타 모형이 들려있는 것을 확인한 순간 온 가족이 일제히 '아!’ 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당시의 영상을 보니 '안돼!’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아무도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지 않았다. 나는 마이크를 붙잡고 가족들에게 다들 그러는 거 아니라고, 나는 여러분들이 나를 응원해 주시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러실 수가 있냐며 장난 섞인 투정을 부렸다.
아이는 돌잡이 때 뜻밖에도 기타 모형을 잡았다. ⓒ강백수 |
아들을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아들이었으면 좋겠어? 딸이었으면 좋겠어?"라는 질문을 지겹게 받았다. 아들이 태어나고 나니 또 지겨우리만큼 듣게 되는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들이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어?"다. 모든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면 이 아이가 무엇 하는 사람이 될는지 궁금해 한다. 나도 사촌동생들이나 조카들에게 "너 나중에 뭐 하고 싶어?" 같은 질문들을 건네곤 했고, 나 역시 어려서 그런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돌잡이가 돌잔치의 하이라이트가 된 것에는 그런 궁금증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아무런 신빙성도 없는 미신이라 할지라도.
아들이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은 사실 뱃속의 아기가 아들이 되었으면 좋겠냐 딸이었으면 좋겠냐 하는 질문만큼 무의미하다. 엄마 아빠가 아들이기를, 혹은 딸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아기의 성별이 결정되는 데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당장 아들이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다고 한들 그것이 아들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 같다. 어머니는 내가 판검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셨고, 아버지도 내가 자라는 내내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법조인이나 고위공직자, 교수, 대기업 임원, 메이저 언론사 기자처럼 사회를 이끌고 있다고 여겨지는 직업을 가졌다면 더 기뻐하셨을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바람들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는 '딴따라’가 되어버렸지 않은가. 자식들은 절대로 부모의 뜻대로 자라주지 않는다는 걸 나는 나의 사례를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자식의 진로가 부모의 희망에 부합하는 것은 그냥 운이 좋아서 자식과 부모의 마음이 같았다거나, 자식이 부모를 위해 희생을 했거나, 아니면 스스로 별다르게 하고 싶은 일이 없었을 때만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무의미한 질문입니다"라고 말하며 상대로 하여금 무안한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다. 그냥 적당한 대답을 하나 정해두고 영혼 없이 툭 던지는 게 여러모로 편리한 방법이다.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뭐 될 거냐고 물어보면 외교관이나 PD, 카피라이터 중에 아무거나 말했다. 외교관은 누가 봐도 그럴싸하고, PD는 너무 광범위하고, 카피라이터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직업이어서 이야기가 길어지는 일이 없었다. 나는 요즘 아들이 공학박사가 되어 테슬라 같은 데 연구원으로 취직해서 우주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진심은 아니고 그냥 그럴싸하게 만들어낸 말이다.
아들이 무엇이 될 것인가에 관심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될 수 있으면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다. 무의미한 바람을 갖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만 될 뿐이고, 무엇보다 두 돌도 안 된 아기에게는 너무나도 먼 미래의 일이니까. 그보다 나는 아들이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자기가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한지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타인의 감정을 헤아려가며 살았으면 좋겠다. 공부를 열심히 할지 운동을 열심히 할지 게임을 열심히 할지는 모르지만 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친구들에게 상처 주지 않았으면 좋겠고 상처 주는 친구들 곁에서 힘들어하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부족한 점에 대해 살피고 고민하는 한편 좋은 점에 대해서도 잘 알아서, 어디서 기죽은 채로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크게 기여하지는 않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굴 줄은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염원하는 것이 '무엇이’되는가를 간절히 바라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몇 해 전 봤던 어느 예능프로의 한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강호동 씨가 길거리에서 만난 어린 아이에게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될 거에요?"라고 물었고 옆에 있던 이경규 씨가 "훌륭한 사람이 돼야지"라고 말했다. 그때 이효리 씨는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고 말했다. 참 좋은 대화였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될 거냐고 묻지 않았고 어떤 사람이 될 거냐고 물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도 좋고 아무나 되어도 좋다. 아빠는 옆에서 지켜보고 응원할 뿐이다.
*칼럼니스트 강백수(인스타그램 baeksoo_kang)는 2008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2010년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일상의 시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6시에 잠들던 예술가로 살다가 이제는 6시에 일어나는 아빠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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