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최근 우리 사회는 기이한 풍경을 목격하고 있다.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대기업의 30대 연구원들이 사표를 던지고 강남의 의대 입시 학원으로 몰려든다. 다른 한편에서는 억대 연봉을 벌 수 있다는 광고를 믿고 뛰어든 플랫폼 노동자가 비 오는 밤, 인공지능(AI)이 지시하는 ‘최적 경로’를 따르다 목숨을 잃는다. 한쪽은 유일하게 공정하다고 믿는 시험이라는 문으로 다시 숨어들고, 다른 한쪽은 공정한 보상을 약속하는 알고리즘의 채찍 아래 스러진다. 이 두 장면은 한국 사회가 처한 거대한 유리 미로의 입구와 출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신봉하는 공정은 흔히 시험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는 기계적 절차에 매몰되어 있다. 이러한 협소한 인식은 우리 사회를 거대한 유리 미로로 만들고 있다. 유리 미로는 단순히 성장을 가로막는 유리 천장과 다르다. 그것은 입구는 활짝 열려 있는 듯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특정 지도를 가진 자들만이 출구를 찾도록 설계된 기만적 구조를 의미한다.
영(Young, 2017)은 일찍이 능력주의가 지능과 노력이 결합된 이상적 시스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새로운 형태의 계급 세습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늘날 한국의 능력주의는 샌델(Sandel, 2020)이 지적한 대로 성공한 자에게는 오만을, 실패한 자에게는 굴욕을 선사하는 폭정으로 변질되었다. 이 폭정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현장에서 우리를 미로 속에 가두고 있다.
첫 번째 현장인 입시 미로는 이제 대를 이어 대물림되는 구조가 되었다. 의대 열풍은 단순한 직업 선호가 아니라, 그 이외의 모든 사다리가 무너졌다는 절망의 표현이다. 수능 점수라는 공정한 잣대 이면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는 고액 컨설팅과 부모의 정보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유리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이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지도를 손에 쥔 이들은 보이지 않는 지름길을 타고 목적지에 도달한다. 결국 미로는 모두에게 열려 있으나, 탈출구는 이미 정해진 이들의 몫이다.
두 번째 현장은 디지털 노역이라 불리는 플랫폼 노동의 현장이다. 여기서 알고리즘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은 보이지 않는 관리자로 군림한다. 알고리즘은 라이더들에게 더 많이 일하면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능력주의의 환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그 실체는 노동자의 이동 경로와 속도를 1초 단위로 감시하며, 평점을 유지하기 위해 더 위험한 주행을 하도록 몰아붙이는 정교한 통제 장치이다. 라이더가 아무리 속도를 높여도 알고리즘이라는 벽은 교묘하게 수익의 한계선을 긋고, 결국 노동자는 미로의 벽에 부딪혀 소진된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 속에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이 바로 부정의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정의란 단순히 몫을 적게 나누어 갖는 경제적 불평등만을 뜻하지 않는다. 맥글린(McGlynn, 2020)이 강조한 인식론적 부정의는 사회적 약자가 겪는 고통을 사회가 아예 이해해주지 않거나, 그들의 주장을 믿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즉,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에게 사회가 ‘네 실력이 없어서 그래’ 혹은 ‘네가 노력을 덜 해서 그래’라고 단정 짓는 순간, 그 개인의 진실된 목소리는 소음으로 전락한다. 이는 사람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가장 잔인한 형태의 지적인 폭력이다.
결국 우리는 유리 미로 안에서 누가 더 빨리 달리는가를 겨루는 경주를 멈춰야 한다. 이제는 미로의 투명한 벽을 직시하고, 그 벽을 허무는 사회적 담론을 시작해야 한다. 공정이 강자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아닌,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존엄한 생존을 보장하는 실질적 정의로 거듭나야 한다. 유리 미로를 걷어낸 자리에 연대와 공존의 광장을 세우는 것, 그것이 실질적 정의를 향한 비판적 지성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시대정신이다.
서경IN skin@sedaily.com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