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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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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AI(인공지능) 인재 전쟁은 배관공과 전기 기술자를 확보하는 것이다.”
메타, 구글 등 빅테크를 중심으로 거액을 들여 AI 엔지니어를 확보하기 위한 인재 영입 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미국 IT 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지난해 12월 이같이 보도했다. AI를 멈추지 않고 구동하려면 더 많은 데이터센터가 필요한데, 이를 구축할 전기 기술자, 배관공, 냉난방 기술자 등 ‘블루칼라’(생산직 노동자) 인재가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같은 달 블룸버그는 오러클이 건설 인력 수급 문제로 특정 데이터센터 완공 시기를 연기할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블루칼라가 부족해지면서 생산·건설 현장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맨파워그룹이 지난해 전 세계 42국 고용주 4만213명을 대상으로 인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지 조사한 결과, 에너지·공공서비스 부문 기업 고용주의 76%, 교통·물류 기업의 74%, 제조·소재 기업 73%가 ‘어렵다’고 응답했다.
◇블루칼라 부족한 주요국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제조업 부흥을 목표로 리쇼어링과 해외 투자를 공격적으로 유치하고 있지만, 정작 숙련된 전기 기술자, 건설 노동자 및 기타 생산직 종사자가 부족해 이를 실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종합건설협회는 작년에 기업의 92%가 인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었고, 45%는 인력 부족으로 최소 한 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연기했다고 밝혔다. 건설업계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올해까지 약 50만명의 인력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 노동부는 2034년까지 자국에서 전기 기사 고용이 9%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한편 매년 평균 약 8만1000명의 전기 기사가 부족할 것으로 추산한다. 맥킨지 역시 2030년까지 미국에서 전기 기사 13만명과 건설 노동자 24만명, 건설 현장 감독관 15만명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전기 기술자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의 고층 오피스 빌딩에서 새로운 발전기 시스템을 설치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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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해 유럽 상황도 마찬가지다. 유로존에서 2025년 3분기 건설업 공석률은 3%로, 주택·인프라 투자 속도를 인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건설 산업은 2022년 6월 이후 40개월 넘게 위축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6년 1월 프랑스 건설업 구매자관리지수(PMI)는 43.5를 기록하며 심각한 침체를 나타냈는데, 이는 수요 부족과 함께 구인난에 따른 생산성 저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마켓은 “공공 프로젝트의 대금 지급 지연과 기술 인력 부족이 맞물리면서, 중소 건설업체들의 파산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며 “이같은 상황은 프랑스 전체 경제 성장률을 2025년 기준 1.3% 하락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의 경우 2030년까지 국가 전체 전력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정부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약 15만7000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며, 인력 부족 문제 때문에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고 독일 고용연구소(IAB)가 전망했다.
일본에서는 최근 제4 도시 나고야에서 나고야역을 확장하면서, 노후화한 메이테츠 백화점 등을 고층 빌딩으로 재건축하는 2000억엔(약 2조원) 대형 프로젝트가 착수를 앞두고 좌절됐다. 공사, 시공 관리 등 건설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인구 구조 변화를 연구하는 민간 싱크탱크 리크루트웍스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의 2024년 구인배율(구직자 1명당 일자리 수)은 목수·비계공 9.38배, 옥외 서비스직 3.31배, 운전직 2.74배로 전체 평균(1.22배)보다 훨씬 큰 상황이다.
◇블루칼라 부족해진 이유는
세계적으로 블루칼라 구인난이 벌어지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급격한 인구 구조의 변화에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은 현재 숙련된 블루칼라 노동력을 공급해온 베이비부머 세대의 본격 은퇴기를 맞고 있다. 반면 저출산 여파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 인구는 급감했다. 건설연구훈련센터(CPWR)에 따르면, 미국 건설업 종사자 중 55~64세 고령층 비율은 2011년 13.8%에서 2024년 16.4%로 늘었다. 일본의 경우, 건설 노동자 중 55세 이상이 약 35%인 반면, 29세 이하는 10% 미만에 그친다. 독일도 전체 취업자 중 24%가 55~64세다. 국제도로운송연맹(IRU)은 전 세계적으로 360만개의 트럭 운전사 자리가 비어 있다고 집계한다. 25세 미만 운전사는 6.5%에 불과한 반면, 55세 초과는 31.6%에 이른다. 2029년까지 340만명이 은퇴할 것으로 내다본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나타난 변화도 노동 시장 패러다임에 영향을 미쳤다. 봉쇄 기간 많은 현장 노동자가 조기 은퇴를 선택했다. 또한 팬데믹 기간 유연한 근로 형태의 직무가 늘어나고 부각되면서 워라밸을 더 따지는 풍조 속에 블루칼라 선호도는 떨어졌다. 생산직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야간·교대·장거리 등 생활 리듬이 깨지는 근무가 많고, 안전·노동 강도·근골격계 부담도 큰 데 반해 유연 근무의 여지는 적기 때문이다. 짐 팔리 포드 CEO는 “전형적인 미국 가정에선 자녀가 냉난방 공조 전문가보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길 원할 것”이라며, “이런 사회적 인식의 불균형이 국가적 인프라 마비를 초래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에 노동자가 현장을 기피하거나 오래 버티지 못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주요국뿐 아니라 노동 인구가 넘쳐나는 개발도상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의 ’2025년 블루칼라 인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의 블루칼라 시장은 최근 이직률이 5~7%에 달하고 결근율이 치솟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 주요국들이 이민 정책을 이전보다 까다롭게 재조정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개발 국가의 인력이 선진국으로 이동해 역할을 맡아왔던 건설·물류 업종 등은 이민 규제와 비자 정책 변화에 더 민감하다. 미국은 트럼프 집권 이후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물가 상승 부추기는 인력난
인력난은 노동 비용을 밀어올리는 중이다. 미국 제조업 고용비용지수(ECI)는 2024년 1분기 158에서 2025년 4분기 167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노동력 확보를 위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으며, 현장의 인력 부족 현상이 임금 인상을 압박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산업계에서는 연봉 1000만엔(약 1억원)을 내걸고 숙련공을 선점하려는 인재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생산직 인력 부족이 개별 기업의 경영난 차원을 넘어 경제 전반의 시스템 위기로 전이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노동력 부족이 공사 지연과 사업비 증가를 초래하고, 이는 결국 제품 및 서비스 가격에 반영되어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을 만들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각국 정부가 추가적인 정책 조치나 구조적 변화 없이 현재의 인구 구조를 방치한다면, 2060년까지 OECD 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지금보다 40%가량 둔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고령화와 기술 미스매치, 이민 유입 둔화 등으로 인한 노동 공급 충격이 성장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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