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최근 미국 의회와 국방 당국 보고서들은 공통된 문제를 제기한다. 미 해군 전력 공백이 확대되는 가운데, 자국 조선소의 생산성 저하와 숙련 인력 부족, 공급망 병목이 해군력 재건을 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의 조선 역량을 활용해 함정 건조와 유지·정비를 가속화해야 한다는 정책 제언이 힘을 얻고 있다.
보고서들은 상업·군용 선박 건조 능력, 납기 준수 실적, 디지털 설계 및 모듈화 체계를 갖춘 한국과 일본을 주요 협력 대상으로 거론한다. 공동 설계·건조, 부품 공급망 연계, 기술 표준 정합성, 상호 인증 체계 구축이 핵심 과제다. 요지는 분명하다. 미국 단독 산업 기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해군력 증강을 동맹 산업 역량과 결합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이는 단순한 조선 협력을 넘어 한·미·일 방산 협력의 구조적 전환을 시사한다. 한국과 일본은 그동안 미국 무기체계의 구매국이나 부품 공급 파트너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공동 설계·공동 생산 단계로 이동할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하청 구조’에서 ‘공동 개발 파트너’로의 진화다.
그러나 현실은 복잡하다. 한·일 군사 협력은 역사 문제와 국내 정치의 영향을 받는다. 안보 차원에서는 협력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산업·기술 분야에서는 경쟁 인식이 강하다. 잠수함, 수상 전투함, 미사일 방어체계, 레이더 분야에서 양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경쟁해 왔다. 호주 차기 호위함 사업과 동남아 함정 사업 등에서 치열한 수주전을 벌인 바 있다.
그렇다면 한·미·일 방산 협력은 경쟁인가, 공존인가. 답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전략적 공존 속 산업 경쟁’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협력 파트너로 검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나라의 산업 역량을 병렬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미 해군 전력 증강에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어디서 경쟁하고, 어디서 협력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구분이다. 미국과의 협력 분야는 비교적 분명하다.
첫째, 전투체계 통합과 네트워크 중심전 역량이다. 미 해군은 이지스 전투체계와 미사일 방어 네트워크, C4ISR 기반 통합 운용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체계 통합 역량을 보유한다. 한국은 모듈식 건조 기술과 고도화된 생산관리, 납기 준수 능력에서 강점을 갖는다. 양국이 결합할 경우 차세대 유·무인 복합 전투함 설계, AI 기반 예지정비(PHM), 개방형 아키텍처 표준화 등에서 공동 프로젝트 추진이 가능하다.
둘째, 미 해군 MRO 시장 진출이다. 함정 가동률 회복이 시급한 상황에서 한국 조선소의 정비·성능개량 참여는 상호 보완적이다.
셋째, 고출력 레이저 무기, 통합 전기추진 체계, 차세대 함정용 원자로 기술 등 미래 전력 분야는 한·미 동맹 틀 안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반면 일본과의 협력은 산업·기술 세부 영역 중심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해상자위대의 수중 운용 경험과 일본 기업의 정밀 센서·소재 기술은 강점이다. 잠수함 저소음 설계, 특수강, 고내식 소재, 정밀 전자부품, 수중음향 기술 등에서 독자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
잠수함용 저소음 추진 기술, 리튬이온 배터리 적용 확대, 고감도 소나 어레이, 저피탐 코팅 소재, 고내구 복합소재 마스트 기술 등은 공동 연구 여지가 있는 분야다. 한·일 공동 표준과 상호 인증 체계를 구축한다면 공급망 안정성과 기술 신뢰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특정 국가 수출 통제에 따른 리스크 분산 효과도 기대된다.
결국 구조는 이중적이다. 플랫폼 설계와 전략 체계 통합은 한·미 동맹 축에서 추진하고, 정밀 기술·소재·부품 협력은 한·일 산업 축에서 병행하는 방식이다. 감정이 아니라 기능에 기반한 분업 구조다.
한·미·일 방산 협력의 본질은 ‘경쟁을 전제로 한 공존’이다. 한국과 일본은 글로벌 시장에서 계속 경쟁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공동 프로그램과 공급망 연계, 기술 표준 정합의 틀 안에서는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관건은 균형 관리 능력이다. 단기 정치 일정이나 감정이 아니라, 장기 산업 전략과 기술 주권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한·미·일 방산 협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구조적 변화다.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공존의 틀을 정교하게 설계한다면, 경쟁은 산업 역량을 고도화하는 촉매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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