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노태악 전 대법관이 6년 임기를 마친 후 퇴임사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을 사법부로 가져오는 현상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게 저만의 생각일까"라며 "누군가는 '정치의 사법화는 지금처럼 양극화된 사회에서 결국은 사법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고 했다.
'조희대 코트' 대법관의 인식이란 게 참으로 한가롭다. 지금 대법원은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 '사법의 정치화(Politicalization of Judiciary)'를 통해 스스로 신뢰를 깎아먹은 걸 반성해야 할 때다.
헌정을 파괴한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켰을 때 입을 닫았던 조희대 대법원장이 사법개혁3법 국회 처리에 대해 연일 입을 열고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사법개혁 법안 처리는 국회의 일이고 입법 과정에 관련된 일이다. 당사자로서 입장을 표명할 수 있다고 치자. 윤석열의 비상계엄에서 법원은 당사자가 아니었던가? 조희대 원장의 이런 '이중성'은 그가 선택적으로 입을 열면 열수록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조희대 원장의 계엄에 대한 입장이 공식적으로 나온 건 윤석열의 비상계엄 6개월만이다. 천대엽 당시 법원행정처장은 지난해 5월 2일 국회에 출석해 "비상계엄 당일 저희들 간부회의에서 제일 먼저 (비상계엄이) '위헌적'이라는 발언을 꺼낸 분이 바로 대법원장"이라고 밝혔다. 계엄 이후 6개월동안 이 발언이 왜 안 알려졌고 윤석열 탄핵이 확정된 후에야 '위헌을 제일 먼저 지적했다'는 조희대의 말이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리고 6개월만에 알려진 이 발언이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판결(2025년 5월 1일) 다음 날 나온 것도 참으로 공교롭다. 이재명의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판결을 내긴 했으나, '나는 내란 세력은 아니다'라는 어필하고 싶었던 것인가?
조희대 원장은 윤석열의 쿠데타 다음날인 2024년 12월 4일 아침 출근길에서도 말을 극도로 아낀 바 있다. 기자들이 '계엄이 법적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고 '탄핵 사유까지 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질문하자 "뭐,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다"고 하면서 입을 꾹 닫았다.
그런 조희대 원장이 별안간 출근길에 기자들을 상대로 장황하게 대한민국 법원의 국제 신뢰도를 운운하며 훈계를 하는 수다스러운 사람이 됐다.
노태악 전 대법관이 말한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로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법원의 결정을 끌어들이는 걸 말한다. 이 용어는 2004년도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이는데(국회 입법조사처 <정치의 사법화의 유형과 개선 방향> 2025.12.30)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법원 판결에 의해 결정된 후 인용 사례가 급증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책 결정 과정 뿐 아니라 정치인들간 갈등이 고소·고발전으로 비화하는 현상들도 대표적 사례들이다.
정치의 사법화 자체가 나쁘다고 볼 수 없으나, 최근 문제되는 것은 '정치의 과잉 사법화'다. 그리고 그에 대한 비판은 주로 정치 현안을 법원으로 들고 달려가는 정치인들에게 집중된다. 노태악 전 대법관은 '정치의 사법화'를 언급하면서 마치 법원은 가만히 있는데 정치권이 법원을 흔들고 있다는 투로 말하고 있는데,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의 내란 이후 대법원이 보여준 건 정확히 그 반대, '사법의 정치화'였다.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은, '법원이 내란을 수습하기는커녕 직접 정치에 개입함으로써 사태를 악화시키는데 일조했다'고 '누군가'가 말하는 소릴 들어보지 못했나보다.
특히 조희대 원장이 주도해 지난해 5월 1일 내린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이 정치에 개입한 최악의 사례로 남게 됐다. 6만 쪽에 달하는 방대한 사건 기록을 단 며칠만에 검토하고 내린 결론은 대선을 한달여 남긴 시점에서 유력 대선주자의 출마 자격을 취소하는 내용이었다. 대법원은 파기환송 하루만에 소송기록을 서울고법으로 이송했고 사건은 즉시 형사7부에 배당됐으며 집행관 송달을 촉탁하고 이재명에 소환장을 발송했다. 대선 전까지 이재명의 유죄 판결을 끌어내겠다는 속도전이었다.
더욱 고약한 것은 대법원이 '파기자판'으로 후보 자격을 즉각 박탈한 게 아니라, 파기환송을 통해 절차를 지연시키면서 민주당의 후보 교체 시간 사실상 빼앗으려 했다는 점이다. 만약 파기자판 결정을 내렸다면 민주당은 1달간 후보를 교체할 수 있었을 텐데도, 사건을 굳이 2심 재판부에 돌려보냄으로써 대선 기간 내내 후보 자격 시비를 일으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조희대 원장의 의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재명은 선거에 출마해선 안 된다'는 것 외에 달리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재판 절차가 대법원의 의도대로 진행됐다면 지금 우린 한덕수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며, 우리 사회는 내전에 준하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을 지 모를 일이다. 윤석열은 지금 벌건 대낮에 대로를 활보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끔찍한 멀티버스에 존재하는 가능성이다.
이재명의 후보 자격을 박탈하며 대법원이 인용한 미국의 '부시 대 고어 판결'은 미 연방 대법원의 최악의 정치 개입 사례로 평가받는다. 결과적으로 대법원이 '아들 부시'의 당선을 확정지은 이 사례는 심지어 '선거 유효성'을 따진 것이기 때문에, '조희대 코트'가 추진한 후보 자격 박탈과 연관도 없다. 아귀가 맞지도 않은 미국 대법원의 정치 개입 사례를 한국에 가져온 것 자체가 대법원이 '사법의 정치화'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에서도 대법원이 선거 판도를 바꾼 것처럼, 한국에서도 바꿀 수 있다는 논리와 뭐가 다른가.
'사법의 정치화'는 법관이 진영 논리에 흡수돼 정치적 결정을 내려 혼란을 일으키는 걸 말한다. 노태악 전 대법관이 말한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는 사실 이란성 쌍생아다. '사법의 정치화'는 '정치의 사법화'를 낳고, '정치의 사법화'는 '사법의 정치화'를 낳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하지만 엘리트 법관들은 '사법의 정치화'만 언급면서 정치권을 질타하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자신을 '피해자'로 둔갑시키고 있다. 그들 스스로가 '사법의 정치화'로 윤석열의 내란 사태 수습에 극심한 혼란을 줬으면서 말이다.
'조희대 코트'는 '정치의 사법화'를 한탄하기 전에 '사법의 정치화'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게 먼저다. 대한민국이 오랜 기간 희생으로 일궈낸 '사법 시스템'의 국제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게 바로 조희대 원장 본인임을 본인만 모르고 있다. 윤석열의 내란이 실패로 돌아간 걸 '시민의 저항' 덕이 아니라 '윤석열이 자제한 결과'로 보는 지귀연 재판부처럼, 대한민국 사법 신뢰도를 내란을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뤄낸 '시민들의 덕'이 아니라 '훌륭한 법관들' 덕으로 보는 대법원장의 이 오만함을 참아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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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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