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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0 (화)

    [시선]여성의날, 국격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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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년 3월8일 수많은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더 나은 노동환경과 정치참여를 요구했다. 당시 그들은 밀폐된 공장에서 남자 동료들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으로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했다. 이들의 구호는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였는데, 빵은 평등한 임금을 통한 생존권을, 장미는 투표를 통한 참정권을 뜻했다. 이미 1898년 한반도에도 익명 ‘김소사’·‘이소사’가 발표한, 지금 시각으로도 여성교육과 노동에 관한 매우 진보적인 선언문 ‘여권통문’이 있었다. 또한 일제 착취가 극에 달한 1930년대 높은 지붕에 올라 ‘체공녀’(滯空女·공중에 머무는 여성)라 불리며 임금 인상과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한, 독립투사이자 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도 있다.

    당시 여성은 일본 남성노동자의 25%, 한국 남성노동자의 60%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았다. 그러므로 여성의 생존권 투쟁이, 그 투쟁의 방향을 제시한 사상 페미니즘이 서구의 것이고, 한국은 이를 전수(傳受)한 것으로 왜곡한다면 그건 큰 잘못이다.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여성운동과 여성주의 사상의 발흥은 세계사적으로 동시대적이었으나, 사회마다 그 수용 의지와 능력이 달라 발전 정도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유엔은 1975년에, 한국은 훨씬 늦은 2018년에 3월8일을 ‘세계여성의날’로 기념하기로 했다.

    2026년 3·8 세계여성의날에 한국 여성의 노동권을 생각한다. 엄혹한 일제강점기에 남성의 60%를 밑돌던 여성 임금은 100년이나 지난 오늘도 여전히 70%를 밑돌며, 대문자 K로 군사, 의료, 문화 등 많은 분야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고픈 한국 사회의 감출 수 없는 ‘후진성’을 들춘다. 여성의 높아진 교육률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권익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이만하면 됐지, 뭘 더 바라느냐!”고도 한다.

    이들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일원인 것은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그들 중 ‘성별임금격차 부동의 1위’는 창피해하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의 내란이라는 예외적 사건으로 ‘국격 하락’을 우려하는 이들도 남성이 100원의 임금을 받을 때, 여성은 70원도 못 버는, 그래서 대다수 한국 여성의 생존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을 두고는 ‘국격’을 논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적’ 일탈로 빚어진 친위 쿠데타보다 한국 사회의 낮은 성평등 인식이 만들고 지속시키는 ‘구조적’ 성별임금격차 1위야말로 대한민국의 볼품없는 국격에 대한 객관적 실체가 아닌가.

    다른 나라에 갈 때면, 노동하는 노인, 아이 돌보는 여성, 장애인이 길이나 카페, 버스 등에 얼마나 있는지로 그 사회의 ‘수준’을 재보곤 한다. 노인, 여성, 장애인은 삶의 여러 측면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자주 제약당하는 존재이기에 사회과학의 분석 범주 ‘소수자’로 명명된다. 이들이 노인임에도 폐휴지를 모으거나, 육아로 경제활동을 멈추거나, 이동 수단이 적어 학교, 직장, 병원에 안전하게 갈 수 없다면, 그래서 버티다시피 겨우 살아간다면 그 나라의 국격이란 매우 초라한 것이 아닐까.

    3·8 세계여성의날은 국가의 소수자 생존권 보장 여부에 따라 국격을 가늠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런 날이다.

    경향신문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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