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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9 (월)

    [윤비의 위험한 국가 길들이기]대한민국은 스스로 생각할 준비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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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탐사선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우주에 들어섰다고 알렸다. 태양풍이 미치는 경계를 벗어나 성간물질로 채워진 공간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인류가 이 공간에 대해 아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여행을 마칠 수 있을지조차 매우 불확실하다. 지금 대한민국이 서 있는 자리도 어쩌면 이와 비슷하다.

    대한민국은 빈국에서 출발해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앞서간 나라들의 궤적을 잘 더듬고 잰걸음으로 추격한 데 있었다. 잘 모방·적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창조적 아이디어와 판단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거기서 필요한 창조성이란 아예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앞서 달려간 주자들이 만들어 놓은 선례를 잘 이해하고 우리 실정에 맞게 변형해 실행에 옮기는 것이었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니다. 저출생, 청년 실업, 급속한 고령화 같은 문제는 한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그리고 이를 명쾌하게 해결한 나라도 없다. 따라갈 모델이 사라졌다. 마치 성간우주에 들어선 보이저와 같은 상황이다.

    더 이상 따라갈 모델이 없는 한국
    성장 중심 기술우선주의 부상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새로운 길 만들어갈
    성숙한 시민성과 시민사회가 절실

    여기서는 기존 모델을 선택해 밀어붙이는 능력과는 다른 역량이 필요하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정책 하나를 두고도 사회 내부 의견은 갈리고 갈등은 첨예해진다. 과거처럼 하나의 방향을 정해 밀어붙이는 방식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운 좋게 맞아떨어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대가가 크다. 그래서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사회의 의사소통 능력이다. 성숙한 시민성이 지금 한층 중요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가 겪는 문제를 폭넓게 이해하고 책임 있게 판단하며 소통할 수 있는 시민성을 길러야 한다.

    시민성은 추상적 가치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성이 성장하고 시민사회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전문가와 관료들이 어렵게 찾아낸 좋은 정책도 사회에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않고 효과를 낼 수 있다.

    좋은 시민, 좋은 시민사회에 관심을 기울이고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부쩍 기술우선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는 지금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산업을 일으키는 데 적극적 지원과 투자를 하는 것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술과 산업 발전이라는 대명제 아래에서 다른 명분이나 가치를 내놓고, 혹은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어버리는 것은 문제가 다르다.

    한국전쟁 이후, 특히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 과정에서 기술우선주의는 한국에 널리 퍼졌다. 일단 가난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은 큰 호소력을 지녔다. 경제성장을 주도한 권위주의 지도자들에게 기술우선주의는 민주·민권 등 가치를 내세우는 반대자들을 누르기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그렇게 뿌리를 내린 기술우선주의는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어떤 기술 개발, 기술 도입이나 산업정책에 ‘잠깐! 멈춰서서 생각 좀 해봅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국가의 이익을 무시하는 이기주의자나 이상주의자로 취급하는 것은 지금도 흔하다. 요즘 정치사회 구조와 가치가 판이하게 다른 옆 나라가 새로운 미래 기술과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이유만으로 그 나라의 교육정책과 연구지원정책, 산업정책을 일방적으로 치켜세우고 심지어 배우자는 주장이 눈에 띈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기술우선주의에 편승한 것이다.

    국가 흥망이 기술과 산업의 경쟁력만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단순한 역사 해석이다. 기술을 발전시키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시민성을 기르고, 시민사회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노력은 더 필요하다. 같은 기술이라도 시민사회 역량에 따라 발전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기술은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을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손해를 보는 사람들도 만들어낸다는 이유만으로도 성숙한 시민성, 시민사회는 절실하다. 국가가 기술 발전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국가 자원이 유독 한 곳에 집중투자된다는 상황 자체가 따지고 본다면 불균형이고 미래 불균형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럴수록 그런 불균형을 최소화하고 그 혜택을 어떻게 고르게 나눌 것인가를 현명하게 따지고 의견을 모으는 시민의 역량이 필요하다.

    보이저는 이미 우리가 익숙한 태양계를 떠났다. 대한민국도 이제 그런 지점에 서 있다. 더 이상 따라갈 모델이 없는 시대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서로 토론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를 위한 비전이 있는가?

    경향신문

    윤비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비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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