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은 흥미 위주의 전개에 치중하는 소위 ‘장르 소설’이 많다. 무협지는 물론이고 현대판타지, 대체 역사물까지 폭이 넓다. 그중에서 눈에 띄었던 건 중국에서 넘어온 선협(仙俠) 소설의 한국식 변용이었다. 무술을 익힌 무림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게 무협이라면, 선협은 신선이 되기 위해 수련하는 이들을 다룬 일종의 환상 소설이다. 서양에 ‘반지의 제왕’으로 대표되는 판타지가 있다면, 중국엔 요괴와 신선이 나오는 선협이 있는 식이다.
흥미로운 건 중국 선협과 한국 선협이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는 점이다. 중국 선협소설은 극도의 이기심을 보이는 인물이 흔하다. 신선이라고 덕(德)을 쌓는 게 아니라, 마치 ‘수호지’의 양산박 같은 행동이 적극 권장되는 세계관이다. 다른 신선을 죽이는 건 예사고, 약한 신선을 잡아 약으로 고아 먹기도 한다. 도덕적 고뇌 없이 오직 생존과 성취만을 향해 돌진하는 서사가 중국 인민에게 해방감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 재해석된 선협은 주인공이 극단적 수단으로 막대한 성취를 이루기보단, 바른 세계관을 신선 세계에 정립하는 형태가 많다. 중국식 선협이 각자의 바람직함을 다투는 양명학(陽明學)적 세계관이라면, 한국식 선협은 교토대 오구라 기조 교수가 지적했듯, 주자학(朱子學)적 세계관에서 보편적 리(理)의 주도권을 두고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한국 사회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중국에선 제도가 정의를 보장하지 못하니 이기심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 되지만, 한국은 민주화 성공의 기억 위에서 정의의 공적 실현을 여전히 믿는다. 문제는 그 믿음이 타인의 도덕성을 끊임없이 심문하는 형태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정의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한 개인을 용납하지 않는다. 숨 막히는 도덕 검증이 문단이라고 예외가 되질 못하니, 남자 소설가의 설 자리도 자연스레 줄어든다. 게다가 익명으로 웹소설을 쓰는 게 가능하니, 차라리 그쪽 세계에 자리를 잡는 게 낫다. 선협소설 속 신선조차 도덕적이어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남자 소설가들이 현실적 선택을 내리는 걸 대체 누굴 탓해야 할까. 타인의 도덕성을 제물 삼아 유지되는 평단보단, 욕망에 충실한 장르소설의 야생성이 차라리 더 문학적일지도 모르겠다.
[박한슬 약사·'숫자한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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