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사립 미술관인 간송미술관 전인건 관장이 "전시 자금을 은행에서 빌려 대환 대출에 썼다"고 말하는 녹음 파일을 뉴스타파가 입수했다. 전시를 명분으로 거액의 사업자 대출을 받은 뒤, 정작 그 돈을 개인의 부채 갈아타기 용도로 썼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녹음 파일이다.
녹취에 언급된 '전시'는 간송이 지난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진행한 미디어아트 전시다. 현재 이 전시에 참여한 제작사들은 대금을 받지 못해 전 관장과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제작사들에게 지급됐어야 할 자금이 전 관장의 사적 채무 갈아타기에 쓰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뉴스타파가 새로 확보한 녹취와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전 관장이 은행에 전시 자금 명목으로 대출을 실행한 건 최소 두 차례다. 앞서 보도한 29억 원(간송미술관장, 29억 횡령 의혹… 제작사엔 "돈 없다")의 유출 외에, 또 다른 대출이 이번 녹취 언급되는 대환 대출에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전 관장이 전시를 명분으로 받은 대출금만 80억 원 이상이다.
두 차례에 걸쳐 대출해준 하나은행은 "대출 목적 외로 자금을 사용한 경우 대출금을 조기 혹은 즉각 회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인건 녹취 "애초에 전시에 쓸 돈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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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전인건 간송미술관장
뉴스타파가 입수한 이 대화 녹취 파일에 따르면, 전 관장은 A씨에게 제작사들의 현황을 묻고 준비 상황을 논의하던 중 '전시 자금이 부족하다'는 말을 했다. 전 관장은 "내가 지금 가용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얼마 없다"고 말했다.
의아했던 A씨는 전 관장에게 "사실은 그게 좀 이해가 안 간다. 대출을 받아서 나온 비용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지금 관장님은 돈이 없냐"고 반문했다. 당시 A씨는 전 관장의 요구를 받아 대출용 사업 제안서와 견적서 등을 작성해준 상태였다.
이어진 전 관장의 말은 뜻밖이었다. 전 관장은 '대출을 받은 것은 맞는데, 애초에 전시에 투입될 자금이 아니었다'는 말을 했다. 그는 "은행권에서 얘기를 했던 (자금의) 목적이 이 전시이긴 했으나 원래부터 이 전시에 투입될 수 있는 금액들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전 관장은 "그것들(대출 자금)은 사실은 이 전시하고 상관이 없이 원래 대환이 돼야 됐던 것들이었다. 원래 다른 용도"라며 "2금융권에서 1금융권으로 대출을 옮기는 금융 작업이었다"고도 덧붙였다. "하나은행도 OOO를 통해서 작업이 돼서 상당히 좋은 조건으로 옮겨진 건 맞다. 용도가 대환 작업이었다"는 등의 말이 이어지자 A씨는 "전시에 들어가는 자금 마련을 위해서 대출을 받는 걸로 생각했다"며 황당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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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뉴스타파가 입수한 녹취에서, 전 관장은 "해당 자금은 원래부터 이 전시에 투입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 성북동 전 관장 일가의 부동산 등기부 등본은 이 같은 전 관장의 말을 뒷받침한다. 전 관장은 지난 2023년 9월 하나은행에 해당 부동산을 담보로 거액의 돈을 빌렸다. 채권최고액은 67억 2000만 원으로, 통상의 담보 설정 수준(120%)을 고려하면 실제 대출 금액은 약 56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문제는 하나은행 대출이 실행된 당일 기록이다. 대출이 이뤄진 날, 기존에 해당 부동산에 걸려있던 신탁 등기가 말소된 사실이 확인된다. 해당 신탁 등기는 지난 2022년 전 관장이 자신의 개인 회사 KMM아트컨설팅을 통해 성남동부새마을금고에 돈을 빌리면서 설정된 등기였다. 신탁원부에는 성남동부새마을금고가 우선수익자로, 우선수익권금액은 55억 2000만 원으로 적혀있다.
이 신탁 등기가 말소됐다는 것은 성남동부새마을금고의 채권이나 신탁회사의 소유권 등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하나은행 대출과 같은 날 등기가 말소된 것으로 보아 전 관장이 하나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성남동부새마을금고에 빌린 돈을 갚은 것으로 보인다. '2금융권에서 1금융권으로 대출을 옮기는 작업이었다'는 전 관장의 발언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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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성북동 부동산을 담보로 기존에 걸려있던 신탁원부. 전인건 관장이 자신의 개인 회사 KMM아트컨설팅을 통해 성남동부새마을금고에 돈을 빌리면서 설정된 등기다. 2023년 9월, 하나은행 대출이 실행된 날 이 신탁등기가 말소됐다.
현재까지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전 관장은 2023년 9월과 2024년 4월에 두 차례에 걸쳐 하나은행에서 전시 자금을 대출받았다. 대출금은 각각 56억 원, 34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중 1차 대출금(2023년 9월)은 전 관장 앞으로 되어있던 기존 대출 갈아타기에 쓰인 것으로 보이고, 2차 대출금(2024년 4월) 중 29억 원은 전시와 무관한 한 페이퍼컴퍼니를 거쳐 전 관장 개인 계좌로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대출을 실행한 뒤, 자금을 전시 기획사 관계자 A씨에게 보냈다가 다시 개인 계좌로 되돌려받는 일종의 자금 세탁 방식이 동원된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80억 원에 달하는 대출금 중 실제 전시에 쓰인 돈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전 관장과 소송 중인 제작사 4곳의 미지급금은 약 13억 원인데, 전 관장은 전시가 끝난 지 약 10개월이 되어가는 현재까지 미지급금을 갚지 않고 있다.
대환 대출·29억 횡령 의혹 소명 필요
간송미술관은 문화예술계에서는 상징적인 존재다. 설립자인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강점기 사재를 털어 우리 문화재를 수집, 보존해온 인물이다. 전통 문화재 쪽에서는 상징성과 영향력을 두루 갖춘 미술관이다. 그러나 간송이 보유한 유물로 진행한 미디어아트 전시는 거액의 소송에 휘말리는 오명을 썼다.
해당 전시에 대규모 대금 미지급 사태와 더불어 전 관장 개인의 비위 의혹이 불거진 만큼, 전시 자금 유용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타파는 공익법인인 간송미술문화재단 측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등을 질의서를 통해 물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전 관장 역시 "사실이 다르다. 악의적인 취재원의 말만 들은 것 같다"는 말 외에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전시에 참여했던 제작사 쓰리헤드하트핸드 대표 이상훈 씨는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간송으로 인해 경영 위기를 겪었다.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지만, 미수금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를 총괄했던 A씨는 전 관장의 횡령 등 의혹을 경찰, 국세청, 금감원, 은행에 고발했다.
하나은행은 뉴스타파의 질의에 "대출 외 목적으로 자금을 사용한 경우 은행여신거래기본약관에 의거해 해당 여신을 기한이익 상실(만기 전 회수) 및 해당 여신을 즉시 회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뉴스타파 강혜인 ccbb@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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