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인공지능(AI)이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하면 몸을 움직이지 않고 책만 읽는 것만으로 고액연봉은 차치하고 도대체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AI는 방대한 언어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대형언어모델(LLM)을 넘어 이제는 객관세계 속에서의 물리적 움직임을 학습하는 '피지컬' AI로 발전하고 있다. 언어로 축적된 기성 지식을 넘어 객관세계에 대해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인들을 시킬 일이지 왜 직접 하는가"라며 아직도 책상에 앉아 기성 지식을 수집하며 '소형' 언어모델이 되려 한다. 이걸로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가지고 첨단 GPU로 구동되는 '대형' 언어모델과 경쟁해낼 수 있을까?
피지컬 AI가 움직임을 통해 객관을 학습하듯 인간 지능 역시 움직임을 통해 객관세계를 학습한다. 장 자크 루소는 "산책할 때만 사유한다"고 했다는데, 세상이 움직이든 내가 움직이든 움직임이 생각을 자극한다. 하얀 벽에 앉아 있는 파리는 움직여야 비로소 내 의식을 자극한다. 또, 나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의식이 희미하다가도 팔다리를 움직이면 다시 의식이 살아난다. 인간은 객관 세계를 만지면서 객관 세계의 원리들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이것을 우리 자신의 뜻(意)를 실현하는데 활용한다. 이렇게 인간은 자동차를 만들었고 핸드폰을 만들었다.
세상에는 뜻(意)을 실현하는, 즉 '창의(創意)'하는 사람과 이 '창의'의 결과를 배워 모방하는 사람이 있다. '창의'는 객관 세계를 손으로 만져보고 상상력을 움직여봐야 가능한 일이지만, 결과를 배우는 것은 책상에 앉아 교재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교재를 잘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밥벌이가 가능했지만, AI 시대에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런 능력은 값싸고 성능 좋은 AI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젠 창의가 아닌 한 무용한 노동이 될 것이다. 창의는 동적(動的)이고, 교재를 읽고 외우는 것은 정적(靜的)이다. 정적인 '공부'를 금과옥조로 여겨왔던 우리는 몸을 움직이는 체육과 정서를 움직이는 예술을 그렇게도 싫어해왔지만, 이제는 몸과 정서를 포함한 우리가 가진 전체, 즉 전인(全人)을 움직여가며 창의하는 동적 교육 및 문화로 대전환을 이뤄야 할 것이다. 이젠 AI든 인간이든 '피지컬' 없인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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