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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6 (월)

    빌딩 높이보다 중요한 '공간의 온도'[민서홍의 도시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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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적률 중심의 한국 도시

    지역의 역사·보행 흐름 등 '형태기반코드' 적용해

    '사람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민서홍 건축가] 오늘날 한국의 도시가 잃어버린 것은 높이가 아니라 조화다. 용적률과 건폐율, 건물 용도로만 공간을 다루는 도시계획은 효율적이지만 도시의 얼굴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도시의 품격은 숫자가 아니라 형태에서, 건축물의 물리적 배열과 거리의 비례감 그리고 시민이 느끼는 공간의 온도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우리의 도시관리 체계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개발 가능 면적과 경제성 중심의 언어로 도시를 해석하고 있다. 이제는 도시를 ‘수치의 합’이 아닌 ‘형태의 질서’로 다뤄야 하며 그 방법이 바로 형태기반코드(Form-Based Code)다.

    형태기반코드는 도시의 규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기존의 용도지역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지만 형태기반코드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건축물의 기능보다 거리와 건축의 관계, 건물의 높이와 폭, 입면 구성, 공공공간과의 경계, 보행의 흐름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도시를 추상적인 기능 도면이 아니라 구체적인 형태적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이미 이 접근법이 도시 재생의 실효적 도구로 자리 잡았다. 미국 플로리다의 시사이드(Seaside)는 형태기반코드를 통해 해변 마을의 스케일과 미감을 유지하며 시민의 삶과 관광 산업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 모델을 제시했다. 일본 교토는 역사적 거리의 비례와 재료감을 근거로 건축 형태를 세밀히 제어함으로써 전통 도시 구조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도시계획은 여전히 용적률 중심의 개발방식에 갇혀 있다. 서울의 재개발지나 신도시의 풍경을 보면 지역의 맥락과 상관없이 비슷비슷한 스카이라인이 반복된다. 가로 환경은 끊기고 거리의 연속성은 사라진다. 도시가 ‘사람의 공간’이 아니라 ‘면적의 계산’으로 전락한 것이다. 규제는 있으되 질서는 없다. 도시는 행정 서류의 도표 안에서 결정되지만 그 결과를 살아내는 것은 시민이다. 결국 지금의 계획 방식으로는 쾌적한 거리, 의미 있는 도시 경관,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실현하기 어렵다. 이런 악순환을 끊고 도시의 질적 회복을 이끌 수 있는 대안이 형태기반코드다.

    형태기반코드의 특장은 ‘규제를 디자인 언어로 바꾼다’는 점이다. 그것은 용도 제한이 아니라 형태의 제시이며 차단이 아니라 방향 제시다. 다시 말해 도시 행정을 설계 중심으로 전환한다. 건축가, 도시계획가, 시민이 함께 도시의 형태를 논의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생기는 것이다. 예컨대 특정 거리의 입면 고도나 창비율, 1층 공개 공지의 형태와 경계 처리 방식 등을 세부적으로 설정하면 도시의 이미지가 통합되고 공적 공간의 품질이 향상된다. 이런 접근은 특히 최근 확산하는 재생형 개발, 소규모 정비, 생활권 재설계 과정에서 유용하다. 계획가의 도면뿐 아니라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거리의 미학’을 행정이 제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형태기반코드의 도입은 단순한 법령 변경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역별 맥락을 바탕으로 한 형태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지역의 역사, 건축 재료, 거리의 폭과 보행 경험 같은 구체적 요소를 논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방정부는 도시디자인센터, 건축위원회 또는 민관 협의체를 통해 주민과 전문가의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 행정은 계획의 틀을 제시하되 그 세부 내용은 도시의 사용자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코드’란 결국 살아 있는 약속이어야지 관료적 규율이 돼서는 안 된다.

    형태기반코드는 도시를 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도시를 더 잘 짓게 하는 언어다. 수치와 데이터로는 담지 못하는 거리의 감각, 빛의 각도, 사람의 속도를 코드화함으로써 도시는 비로소 ‘살아 있는 디자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도시의 경쟁력은 더 이상 높이와 속도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질, 공간의 질서 그리고 지역 정체성의 복원에서 나온다. 한국 도시가 세계 속에서 질적으로 우뚝 서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용적률 중심의 시대를 넘어 형태의 시대를 설계하라. 지금 이 순간 형태기반코드를 적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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