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D는 중국, OLED는 한국.” 이 짧은 문장은 지난 20여 년 동안 디스플레이 산업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LCD 시대의 승자는 중국이었다. 막대한 정부 지원과 초대형 생산 능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들은 가격 경쟁에서 한국과 일본 기업들을 밀어냈다. 한때 세계 시장을 주도하던 LCD 산업의 중심이 그렇게 중국으로 이동했다.
LG디스플레이가 선보인 대형 OLED 신제품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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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OLED에서는 아직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최근 업계에서 눈길을 끈 장면 하나가 있었다. 중국 전자기업 TCL이 처음으로 OLED 모니터를 출시하면서 패널을 LG디스플레이에서 공급받기 시작한 것이다. TCL이 내놓은 ‘32X3A OLED 모니터’에는 LG디스플레이가 생산한 OLED 패널이 탑재됐다. 중국 기업이 OLED 제품을 만들면서 한국 패널을 선택한 사례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부품 거래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산업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기술 패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TCL은 세계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와 경쟁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TCL이 패널 자회사인 차이나스타(CSOT)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패널을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회사 패널 대신 LG디스플레이 OLED를 선택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답은 간단하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프리미엄 OLED 기술에서는 아직 한국 기업들이 앞서 있다는 현실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디스플레이 산업의 판도는 극적으로 바뀌었다. 한때 세계 LCD 시장은 한국과 일본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일본의 샤프와 파나소닉 같은 기업들이 시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중국이 막대한 국가 지원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중국의 BOE와 차이나스타 같은 기업들이 대규모 LCD 공장을 잇달아 건설했고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가격은 빠르게 떨어졌다. 수익성이 무너지자 한국 기업들은 결국 LCD 사업에서 철수하거나 생산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LCD 시장의 주도권은 사실상 중국이 쥐고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한 시대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OLED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OLED는 LCD보다 훨씬 높은 기술 장벽을 요구한다. 패널 구조 자체가 복잡하고 수율 관리도 까다롭다. 특히 고해상도와 고주사율을 동시에 구현해야 하는 프리미엄 제품에서는 기술 격차가 더욱 크게 드러난다. 이번 TCL 모니터가 바로 그런 사례다. 이 제품은 4K 해상도에 240Hz 주사율, 최대 밝기 1300니트, 99% 색 재현율을 구현한다. 또 1080p 해상도에서는 480Hz 주사율을 지원하는 듀얼 모드를 갖췄다. 고성능 게이밍 시장을 겨냥한 사양이다.
결국 중국 기업이 프리미엄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한국 패널을 선택한 셈이다. 산업의 권력 관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더 흥미로운 변화는 OLED 시장의 중심이 TV에서 모니터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OLED는 이미 삼성디스플레이가 강한 경쟁력을 확보했고, TV용 대형 OLED 패널은 LG디스플레이가 시장을 주도해 왔다. 이제 새롭게 열리고 있는 시장이 바로 게이밍 모니터다.
e스포츠와 고성능 PC 시장이 커지면서 게이밍 모니터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다. 높은 주사율과 빠른 응답 속도, 깊은 명암비를 동시에 구현해야 하는 이 시장에서 OLED는 LCD보다 유리한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 성장 속도도 빠르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중국 OLED 모니터 판매량은 2023년 3만 대에서 2024년 57만 대로 급증했다. 매출 규모 역시 같은 기간 2900만 달러에서 3억2800만 달러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아직 초기 시장이지만 성장 잠재력은 매우 크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LG디스플레이는 전략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과거처럼 완제품 시장에서 경쟁하기보다 패널 공급업체로서 OLED 생태계를 확대하는 전략이다.
이미 LG디스플레이 OLED 패널을 사용하는 기업은 LG전자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소니와 파나소닉, 유럽의 필립스 등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들이 LG디스플레이 OLED 패널을 채택해 왔다. 여기에 TCL까지 합류한 것이다. 이는 OLED 시장 자체를 키우는 전략이기도 하다. 패널 공급이 확대될수록 OLED 제품의 종류가 늘어나고 시장 규모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픽=노트북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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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디스플레이 실적도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약 517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4년 만에 연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LCD 중심 구조에서 OLED 중심 구조로 전환한 결과다. 앞으로 자동차용 디스플레이와 게이밍 모니터 시장이 커질수록 OLED 사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중국 기업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BOE와 차이나스타 역시 OLED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고 정부 지원도 계속되고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역사에서 기술 격차가 영원히 유지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은 분명하다.
LCD 시대에는 중국이 승자가 되었지만 OLED 시대에서는 아직 한국이 앞서 있다. TCL 모니터에 들어간 LG디스플레이 패널은 단순한 부품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 디스플레이 산업의 권력 지도를 보여주는 작은 단면이다.
그리고 그 지도에서 아직 중심에 서 있는 국가는 한국이다. 다만 그 자리가 영원히 보장된 것은 아니다. 기술 산업의 역사에서 패권은 언제나 이동해 왔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한국에서 중국으로 산업의 중심이 이동했던 것처럼 말이다.
OLED 이후의 시대가 무엇이 될지, 그리고 그때 중심에 설 나라가 어디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분명하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가장 높은 기술의 능선 위에는 여전히 한국 기업들이 서 있다.
앙트레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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