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 국민대 석좌교수(전 산림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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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굽이치는 능선마다 우리 민족의 기개와 닮은 나무가 서 있다. 비바람 속에서도 독야청청(獨也靑靑)하며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는 소나무는 단순한 식생을 넘어 한국인의 삶과 역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최근 기후위기와 산불, 병해충이라는 거센 도전 앞에 소나무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과연 우리는 소나무와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까.
우리나라 국민의 소나무 사랑은 데이터로 증명된다. 1991년부터 2023년까지 32년간 수행된 여덟 차례의 선호도 조사에서 소나무는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다.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소나무를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꼽아왔고 여전히 국민 10명 중 4명은 소나무를 변함없이 지지하고 있다. 국민이 소나무를 사랑하는 이유는 다층적이다. 가장 큰 매력은 굽이진 수형과 사계절 푸른 자태가 주는 경관적 가치(29%)다. 이어 수원함양, 온실가스 흡수 등 생태계 서비스에 대한 환경적 가치(24.8%)와 목재, 송이 생산 등의 경제적 가치(18%), 그리고 애국가와 예술 작품에 투영된 인문학적 가치(12.1%)가 그 뒤를 잇는다. 그러나 2023년 조사에서는 변화의 기류가 감지됐다. 선호도는 여전히 1위였으나 응답률이 40%대로 하락한 것이다. 이는 최근 대형 산불의 주요 원인으로 소나무 숲의 가연성이 지목되고, 소나무재선충병 확산으로 인한 부정적 인식이 노출된 결과로 풀이된다.
오늘날 소나무의 영토는 기후 변화와 산불, 병해충 등으로 인해 급격히 위축됐다. 현재 소나무는 국내 산림 면적의 약 25%를 차지하며, 개체 수는 약 16억 그루로 추정된다. 주목할 점은 이 중 93%가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소나무가 우리 토양과 기후에 최적화된 향토 수종임을 입증한다. 최근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소나무가 산불과 병해충에 취약하므로 인공적인 관리를 중단하고 자연 천이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산림과학 연구 결과와는 거리감이 있다. 방치된 숲은 하층 식생이 밀집되어 오히려 지표화(地表火)가 수관화(樹冠火)로 번지는 땔감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숲 가꾸기(간벌 및 가지치기)’와 과학적인 임도 개설은 소나무의 생육 환경을 개선하고 재해 저항력을 높이는 필수적인 공정이다.
소나무와의 공존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제 감성적 접근을 넘어선 ‘과학적 처방’이 필요하다. 첫째, 전략적 식재와 혼합림(混合林) 조성이다. 모든 산을 소나무로 채우기보다, 입지 조건에 맞춰 산불에 강한 활엽수와의 내화수림대(耐火樹林帶)를 조성하거나 혼합림으로의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 이는 산불 확산을 차단하고 생물 다양성을 확보해 소나무 숲을 더 건강하게 지키는 방법이다. 둘째, 산림과학 기술의 적극적 도입이다. 재선충병에 강한 저항성 품종을 육성하고, 유전공학적 기법으로 기후 스트레스에 강한 개체를 선발하는 연구는 소나무 숲의 미래를 담보하는 핵심 동력이다. 셋째, 차별화된 관리 전략 수립이다. 보존이 필요한 지역과 경제적·문화적 가치가 높은 숲을 구분해야 한다. 특히 송이버섯 채취 등 임업인의 생계와 지역 경제의 축으로서 소나무가 가진 임업적 가치를 고려한 관리 모델이 유지되어야 한다.
소나무는 우리 과거의 기록이며 현재의 경관이고, 동시에 미래 세대에 전달해야 할 유산이다. 최근의 선호도 하락은 소나무 자체에 대한 실망이라기보다 위기에 처한 산림 환경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반영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소나무의 인문학적 상징성을 과학 기술이라는 토대 위에 다시 세워야 한다. 소나무는 우리가 버려야 할 취약한 수종이 아니라, 수천 년간 한반도와 함께 진화해 온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산림과학의 정밀한 관리와 국민의 변함없는 애정이 만날 때, 소나무는 다시금 한반도의 산야에서 꿋꿋하게 푸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진정한 ‘공존의 길’이다.
대전=박희윤 기자 h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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