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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6 (월)

    ‘자판기 왕국’ 일본 흔들린다… 인력난·고물가에 수만 대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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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거리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음료 자판기가 사라지고 있다. 고질적인 인력난과 물가 상승이라는 이중고를 견디지 못한 음료 기업들이 자판기 운영 대수를 대대적으로 줄이며 구조조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일본 자판기시스템제조업협회에 따르면 현재 일본의 음료 자판기는 약 220만 대다. 이는 전성기였던 1985년 버블 경제 시기와 비교하면 약 23% 감소한 수치다. 실제로 업계 3위 업체인 다이도(DyDo)는 최근 사상 최대 규모의 연간 손실을 기록한 뒤, 전체 운영 대수의 약 7.5%에 달하는 2만여 대의 자판기를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다카마쓰 토미야 다이도 사장은 “자판기 사업이 예상보다 훨씬 더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면서 “현재 최우선 과제는 출혈을 멈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이오차’로 유명한 일본 최대 녹차 기업 이토엔 역시 운영 환경 악화를 이유로 자판기 사업 구조조정에 돌입한 상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자판기가 외면받는 주요 원인으로 가격 경쟁력 상실을 꼽았다. 과거 일본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도 자판기의 편리함을 선택했지만, 3년째 이어지는 고물가에 소비자들의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자판기 음료 가격은 인근 편의점보다 약 20% 가량 비싸다. 여기에 저가 PB 상품을 앞세운 슈퍼마켓과 편의점의 즉석 원두커피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자판기 수요를 빠르게 흡수했다. 음료 종합 연구소인 인료소켄에 따르면 2024년 자판기 음료 판매량은 4200만 케이스로, 1997년 정점(7200만 케이스)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다.

    심각한 인력난도 운영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자판기는 판매 과정만 자동일 뿐, 상품 보충과 재고 관리는 전적으로 사람이 직접 방문해야 하는 구조다. 특히 2024년 트럭 운전기사 잔업 규제 시행 이후 일본에서는 물류 인력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트럭 운전기사 임금이 7.1%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자판기 산업이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기술 도입에서도 뒤처져 있다고 지적한다. 유통 분석가 나카이 아키히토는 “사람이 직접 가서 확인하기 전까지는 재고 현황을 알 수 없는 아날로그 방식이 문제”라며 “매출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뒤늦게 디지털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려니 투자 비용이 부담되는 악순환에 빠졌다”라고 분석했다.

    위기를 느낀 음료 업체들은 수익성 개선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유동 인구가 적은 외곽 지역의 기기는 과감히 철수하고, 사무용 빌딩 등 고수익 지역에는 대형 기기를 배치해 보충 횟수를 줄이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판매량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도 쉽지 않다”며 “자판기 시장의 축소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김효선 기자(hyos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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