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자금을 자기자금으로 거짓 공시해 경영권을 취득한 후, 대규모 자금조달과 AI·이차전지 등 허위성 신사업 진출을 재료로 주가 부양 및 보유지분 매각해 차익 실현하는 전형적인 수법이 지속" 혐의통보 98건, 사건당 평균 부당이득 24억원.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가 11일 내놓은 '2025년도 불공정거래 심리실적 및 주요 특징' 보도자료다. 거래소는 이런 수법이 해마다 고도화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경고가 먹힐까?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3형사부가 올 2월 선고한 401쪽짜리 판결문에는 거래소가 '전형적'이라 부른 행위들이 고스란히 한 사건에 담겨 있었다.
징역 15년·벌금 2조6586억원이라는 역대급 검찰 구형에, 징역 4년·벌금 5억원이라는 초라한 판결이 나온 사건이다.
법원이 현장과 얼마나 멀리 떨어진 판단을 하는 지 이번 판결을 통해 알 수 있다.
에디슨EV 2회차 CB·BW 납입에 사용된 190억원은 계열사인 에디슨모터스가 빌려준 돈이었다. 에디슨모터스에서 이준민·신재호 측 법인으로 흘러간 뒤, 투자조합을 거쳐 다시 에디슨EV로 들어왔다. 겉으로는 외부 투자자의 자금, 실질은 계열사 돈의 왕복이다.
거래소의 시선으로 보면 이것은 전형적인 자금순환이다. 보도자료가 지목한 "전환사채를 관계인에 시장가치 대비 저가로 재매각해 손실을 야기하고 계열사에 자금 대여 후 손상처리하는 사례"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재판부의 판단은 정반대였다. 법원이 주목한 것은 돈의 '경로'가 아니라 돈의 '법적 성격'이었다. 계약서가 있고, 이자가 붙고, 담보가 잡혔으니 정상적인 대여 거래라는 것이다. 계열사라는 이유만으로 에디슨모터스의 돈을 에디슨EV의 내부자금으로 재규정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봤다.
이 판단의 법리적인 문제는 따지기 힘들다. 짚고 싶은 것은 다른 질문이다. 이 논리가 시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는 것이다.
디아크의 바이오 신사업 진출에 대해서도 구조는 같았다. 자동차 내외장재 회사가 캐나다 바이오기업에서 면역항암치료제 무형자산을 사 오고, CB를 발행해 자금을 모은다. 거래소가 '허위성 신사업'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패턴이다.
법원은 이 부분도 무죄로 봤다. 실사를 했고, 임상은 진행됐고, 비용 조달 노력이 있었다. 각 단계의 개별적 합리성이 인정되면, 결과가 실패라도 처음부터 사기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결과 편향 오류'라는 개념까지 판결문에 명시적으로 등장시켰다.
문제는 이 논리가 무자본 M&A의 실행자들에게 사실상의 면책 매뉴얼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해외 기업과 계약서를 만들고, 소규모 임상을 실제로 진행하고, 자문 보고서를 몇 건 확보해두면, 법정에서 "사업 의사가 있었다"는 방어가 성립한다.
돈의 경로에는 금전소비대차계약을 끼워넣고, 사업의 외관에는 실사 기록과 임상 데이터를 채워넣으면, 거래소가 적출하는 큰 그림은 법정에서 낱장으로 찢긴다.
거래소가 아무리 '허위성 신사업'이라고 외쳐도, 실사 기록과 임상 데이터가 쌓여 있으면 법원은 그것을 쉽게 부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투자자는 어디에 서는가.
2021년 5월 31일, 에디슨EV의 2회차 CB·BW 발행 공시를 본 투자자는 무엇을 알 수 있었을까. 납입금에 계열사 자금이 섞여 있다는 사실도, 바이오사업이 진정한 것인지 포장인지도 공시만으로는 구별할 수 없었다.
재판부도 이 점을 모르지 않았다.
판결문은 "일반투자자들은 2회차 CB·BW에 에디슨EV의 자금이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인식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쓴 뒤, 곧바로 "에디슨모터스의 자금이 에디슨EV 입장에서 외부자금이라고 인정되는 이상, 일반투자자들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위험이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이어진다.
투자자가 속을 수 있는 구조임을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 외부자금이 맞으니 문제없다는 결론이다. 시장과 법의 언어가 갈라지는 지점이다.
에디슨EV는 2022년 3월 감사의견 거절을 받고 거래가 정지됐다. 1948억원 조달 계획 중 1010억원어치가 철회됐고, 쌍용차 인수도 잔금 미지급으로 해제됐다. 디아크의 바이오사업도 동력을 잃었다. 관련 회사는 상폐 직전이다.
이 결과를 맞이한 투자자에게, "피고인들에게 사전에 부정한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정당하되 체감적으로는 잔인하다.
이 간극을 법원의 의지 부족으로 결론내기는 조심스럽다. 뚜렷한 문제는 증권범죄의 특성과 현행 법적 도구 사이의 구조적 불일치다.
무자본 M&A형 범죄는 '속마음'을 입증해야 하는 구조다. 행위자가 미리 합법적 외관을 쌓아놓을수록, "그때는 진짜 그럴 의사가 있었을 수 있다"는 방어가 먹힌다.
검찰은 개별 공시의 허위성이 아니라 전체 거래 구조의 기만성을 입증하는 전략을 다듬어야 한다. 부당이득 산정 기준의 입법 정비도 더는 미룰 수 없다.
거래소 보도자료는 투자자에게 "기업가치와 무관한 주가 급등 종목에 유의하라"고 당부한다. 범죄의 대가가 범죄의 이익보다 작은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그 당부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이 판결문을 가장 꼼꼼히 읽을 사람은 다음 주가조작의 설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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