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드라마 플랫폼 레진스낵(왼쪽)과 비글루의 앱 첫화면. 레진스낵·비글루 앱 캡처 |
숏드라마 앱의 첫 화면은 기존 OTT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 편을 누르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진다. 1분 남짓한 회차 속에서 인물 소개는 자막으로 처리되고, 발단 전개가 생략된 채 곧바로 갈등과 위기가 이어진다. 급한 전개에 묘한 위화감이 들다가도 금세 빠져들어 화면을 넘기게 된다.
최근 국내에서 ‘숏드라마’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자극적인 소재와 전통적인 드라마 문법에서 벗어난 듯한 B급 전개방식 등으로 한때 ‘불량식품’ 콘텐츠로 여겨졌던 숏드라마가 유튜브 ‘숏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등 숏폼 콘텐츠에 익숙해진 이용자들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숏드라마는 한 편당 1분~1분30초의 길이로 제작되는 드라마로, 스마트폰 화면에 맞춰 세로가 긴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각본가·연출·배우가 참여하는 드라마 형식을 갖췄음에도 한 회당 위기 절정 결말이 1분 안에 반복되며, 한 시리즈를 전부 보는데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숏드라마 <내 남자친구는 600살> <폭풍같은 결혼생활> <애 아빠는 남사친> 포스터. 숏차·드라마박스·레진엔터테인먼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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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숏드라마의 성장세는 두드러진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5 콘텐츠 이용 행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6%가 숏폼 콘텐츠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장조사업체 미디어 파트너스 아시아에 따르면 글로벌 숏드라마 시장 매출은 2023년 50억 달러(약 7조2000억 원)에서 지난해 120억달러(약 17조4000억원)로 증가했다. 카카오벤처스 자체 분석에 따르면 국내 쇼트폼 드라마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6500억원대로 추산된다.
국내 유명 영화감독과 배우들도 숏드라마 시장에 뛰어들었다. 영화 <왕의 남자> <박열> <동주> 등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레진스낵에서 공개되는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의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 <극한직업> 등을 만든 이병헌 감독은 지난 2월 같은 플랫폼에서 숏드라마 <애 아빠는 남사친>을 선보였다. 이상엽 주연의 <폭풍 같은 결혼생활>, 박한별이 주연한 <청소부의 두번째 결혼> 등 이름이 알려진 배우들의 숏드라마 출연도 늘고있는 추세다.
업계에선 숏드라마의 높은 수익성에 주목한다. 총 100분 내외의 숏드라마 한편을 제작하는 데에는 1억5000만~2억원 가량의 제작비가 든다. 기존 드라마 편당 15억 가량이 사용되는 것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다. 제작기간도 2개월 내외로 짧아 빠르게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수익성은 높다. 숏드라마 가격은 편당 300~500원 수준으로 한 시리즈를 정주행한다면 2~3만원 내외의 비용이 든다. 넷플릭스 베이식 요금제가 9500원인 것을 감안하면, 구독형 OTT 보다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AI 기술의 도입으로 숏드라마 제작비는 더 낮춰지게 됐다. 스푼랩스의 플랫폼인 ‘비글루’의 첫 영어 오리지널 작품인 <블러드바운드 루나>는 AI를 전면도입해 기존 숏드라마 대비 1/10로 제작비를 낮췄다. 비글루의 한 관계자는 16일 통화에서 “AI 기술은 특수효과나 배경합성에 쓰이거나, 아예 AI 기술로 처음부터 끝까지 제작되는 콘텐츠도 있다”고 말했다.
숏 드라마 <자만추 클럽하우스> <청소부의 두번째 결혼> 포스터. 케이티 스튜디오지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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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단위에서 본다면 한국은 숏드라마 콘텐츠 시장의 70~80%를 차지하는 중국에 뒤져있다. 다만 국내 제작사가 중국 등 해외 플랫폼에 작품을 판매하면서 시장을 넓히려 하고 있다. KT스튜디오 지니가 올해 초 공개한 <청소부의 두 번째 결혼>과 <자만추 클럽하우스>는 중국계 숏드라마 플랫폼인 ‘드라마박스’와 ‘릴숏’에서 각각 인기 1위를 기록했다. 영화 제작사이자 배급사인 쇼박스도 국내외 숏폼 드라마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올 상반기 <브라이덜 샤워: 사라진 신부>, <망돌이 된 최애가 귀신 붙어 찾아왔다!>를 선보일 예정이다.
숏드라마 컨텐츠 시장의 성장을 마냥 낙관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유명 감독이나 배우들이 숏드라마에 출연한 것은 기존 컨텐츠들 시장이 약화된데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란 것이다. 드라마 제작사 풀림의 안소회 대표는 16일 통화에서 “일종의 ‘낙수 효과’”라고 했다. 출연료와 제작비를 충분히 지급할 수 없는 숏드라마 시장에 이름이 알려진 배우와 감독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겠느냐는 관측도 있다.
스푼랩스가 운영하는 숏드라마 플랫폼 비글루가 AI 기술을 도입한 첫 오리지널 드라마 <이창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캐릭터 포스터. 스푼랩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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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숏드라마 컨텐츠의 후발주자인 만큼 제작 규모를 키우기보다 많은 작품을 제작해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을 더 중요하다”며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미국 등 지역성을 갖춘 콘텐츠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소희 대표는 “현재의 한국은 숏드라마 제작사도 플랫폼도 많지 않은 실험적 단계로 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현희 기자 h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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