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등 빅테크 제외 요구
“국외 사업자 적용은 국제법 위반”
매출추정 방식 등에 민감한 반응
국회선 “내정 간섭” 반발 기류도
비관세장벽에 美정부와 마찰 우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가 국회가 추진 중인 ‘디지털 재난·장애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안’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데이터센터를 해외에 둔 사업자까지 국내법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실상 구글·넷플릭스 등 자국 빅테크를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자칫 비관세장벽 논란으로 번지며 통상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암참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디지털 재난 안전법 제정에 속도를 내자 해당 법이 자국 기업의 투자 위축과 기술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디지털 재난 안전법은 2022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와 카카오톡 먹통 사태 등 데이터센터 사고로 인한 국가·민간 행정망 마비에 대응하기 위해 발의됐다. 주요 사업자에 디지털 장애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전담 기관을 지정해 관리 계획 제출과 이행 점검을 맡기는 것이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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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참은 특히 이 법의 역외 적용 가능성을 문제 삼고 있다. 암참은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단순히 국내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역외 적용 범위를 무리하게 확장하고 있어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주권국가의 독립 원칙, 불간섭 원칙 등과 충돌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암참이 지적한 ‘국외 행위’는 구글 등 미국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 해외 데이터센터를 통해 국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실제로 구글·넷플릭스 등은 싱가포르 등 해외 데이터센터를 활용해 국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어 암참의 요구는 사실상 자국 빅테크를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법안에 따르면 주요 사업자가 안전관리 계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매출의 최대 3%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암참은 최소 침해 원칙에 비해 과도한 규제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암참이 이 조항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에는 매출 추정 방식이 있다. 법안은 해외에 데이터센터를 둔 기업이라도 재무제표와 이용자 수 등을 기반으로 매출을 추정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구글은 해외 데이터센터를 이유로 국내 매출을 축소 신고해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2024년 기준 구글은 3653억 원의 매출을 공시했지만 학계에서는 실제 매출이 12조 원 초반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행 국내 대리인 제도를 강화한 점도 암참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디지털 재난 안전법은 주요 사업자가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진 기업을 국내 대리인으로 지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암참은 “관련 계열사 지정으로도 충분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암참은 최근 미국 정부가 관세를 앞세워 비관세장벽 해소를 압박하는 상황과 맞물려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지난달 19년 만에 고정밀 지도의 해외 빅테크 반출을 조건부로 허용하는 과정에서도 암참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국회 내부에서는 암참의 노골적인 개입에 대한 반발 기류도 감지된다. 일부 의원들은 이달 10일 과방위 법안소위에서 국민의 디지털 주권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과방위원은 “이러한 개입은 내정 간섭”이라고 했고 이정헌 민주당 의원 역시 “고정밀 지도 역외 반출로 구글은 숙원을 풀었지만 우리 기업들은 우려가 크다”며 “이런 상황에서 암참의 입장에 무작정 끌려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부 일각에서는 법 제정이 미국 기업을 자극해 또 다른 통상 마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301조 조사가 시작된 상황에서 쿠팡 사태로 인한 갈등도 진정되는 국면”이라며 “이 법이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는 만큼 정교한 입법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허진 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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