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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2 (일)

    70대 약사의 마지막 약국, 情을 처방합니다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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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첩첩섬중’ 백령도 지키는 종로약국 최영덕 약사

    인천항에서 서해의 품속으로 4시간을 밀고 들어 마주하는 섬, 백령도. 동쪽 포구부터 사곶 해변으로 이어지는 해안가에서 바닷물이 육지로 밀려와 길을 끊는다. 섬을 탐낸 서해가 육지 깊숙이 파고들다 멈춘 자리, 그 끝에 백령호가 누워 있다. 둑에 막혀 더는 나아가지 못하지만, 물은 그곳에서 제 쓸모를 다한다. 염기를 내려놓은 물은 담수가 되고, 그 담수는 다시 논으로 흘러 농업용수로 요긴하게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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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덕 약사가 11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종로약국에서 약을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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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종로약국 조제실 벽면에 한 주민이 선물한 개업 축하 글귀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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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종로약국에서 한 주민이 약을 복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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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종로약국에서 한 주민이 피로회복제를 구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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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덕 약사가 11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종로약국 조제실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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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종로약국 조제실에 진열된 피로회복약, 술 깨는 약, 멀미약. 최영덕 약사는 이날 주민과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약을 손이 닿기 편한 곳에 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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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덕(77) 약사의 삶도 그 물길을 닮았다. 1976년 서울 종로구 한 약국에서 약사 생활을 시작헀다. 이후 안산에서 약국을 개업해 35년을 운영했다. 약국은 좁았고, 세상은 넓어 보였다. 2018년 며느리에게 약국을 넘긴 뒤 그는 길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랜 시간 약국 안에서만 보낸 삶을 잠시 내려놓고 세상을 둘러보고 싶었다. 그러다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의 마지막 약국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요즘 세상에 약국 없는 곳이 있을까 싶어서 대한약사회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습니다. 백령도 상황을 듣고 나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군요.”

    연고도 없는 섬이었다. 인천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소청도와 대청도를 지나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첩첩 섬 중’이다. 바람이 거세거나 파도가 높으면 배가 뜨지 않아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그는 “젊은 약사가 들어와 뿌리를 내리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면서도 “막상 와보니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교육과 문화 인프라가 부족해 가족 단위로 정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공백이 길어지자 결국 자신이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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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덕 약사가 11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사곶해변에서 백령 담수호로 흘러가는 바닷물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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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덕 약사가 11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진촌리 하늬해안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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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덕 약사가 11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종로약국에서 한 주민과 전화 통화를 나누며 약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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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덕 약사가 11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종로약국 조제실에서 약을 조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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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덕 약사가 11일 저녁 인천 옹진군 백령도 종로약국 앞에서 영업을 종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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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덕 약사가 11일 저녁 인천 옹진군 백령도 종로약국에서 영업을 마치고 2층 자택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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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약국이 치열한 생업의 현장이었다면, 섬 약국은 초심을 되찾는 기회였다. 주민들이 약을 받고 고맙다며 웃어줄 때 그는 섬에 들어온 이유를 다시 확인한다. 누군가는 직접 깐 굴 한 통을, 누군가는 직접 재배한 고구마와 콩을 건네준다. 약국 소파에서는 서로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간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온기다.

    섬 주민들에게도 약국은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다. 백령도는 의약분업 예외 지역으로, 약사가 환자의 증상을 듣고 직접 약을 조제할 수 있다. 고령 인구가 많은 섬에서는 이 역할이 더욱 절실하다. 약국 2층에 거처를 두고 생활하는 최 약사는 주민들의 가장 가까운 의료 창구다. 주민 조모(65)씨는 약국이 없던 시절을 떠올리며 “편의점 상비약은 효과가 약해 감기에 걸리면 꽤 고생했다”며 “지금은 약국이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웃었다.

    섬과 달리 도시의 약국 풍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대형마트처럼 소비자가 약을 직접 골라담는 ‘창고형 약국’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반세기 넘게 약사로 살아온 최 약사는 이런 변화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는 “처음 약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반려동물 약품 진열대를 약국에 두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창고형 약국도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백령도 같은 곳에는 골목 약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이제 큰 약국과 작은 약국이 서로 공존할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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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종로약국에 놓인 반려동물 전용 약품 진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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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종로약국에서 한 주민이 피로회복제를 구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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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종로약국에서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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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덕 약사가 12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종로약국 옥상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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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덕 약사가 12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끝섬 전망대에서 섬을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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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세상을 돌던 약사는 결국 섬으로 들어와 뿌리를 내렸다. 바다를 막아 세운 물이 농민을 살리듯, 그의 자리도 섬 사람들의 건강과 일상을 지탱하고 있다. 약국 문을 열고 주민을 맞이하는 일도 그를 일으켜 세우는 소중한 일상이 됐다. 올해로 일흔일곱. 앞으로 얼마나 더 약국을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바람은 간명하다.

    “가능하다면 90살까지는 해보고 싶습니다. 힘 닿는 데까지 이 섬을 지키고 싶어요.”

    종로약국의 불빛은 오늘도 조용히 백령도의 하루를 밝히고 있다.

    백령도=글·사진 유희태 기자 joyk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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