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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2 (일)

    트럼프의 전쟁… 이성으로 포장된 광기와 독단 [영화로 읽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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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회 정치학 박사]

    영화 '장미의 이름'은 '광적인 믿음의 질서'에 대항하는 '합리적 실증주의'의 도전을 담아낸다. 한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당연히 모두가 공포에 질린다. 믿음에 충실한 수도원 수도사들은 성경 요한묵시록이 예언한 종말이 다가왔다며 패닉 상태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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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주인공은 실증주의자이지만 결코 실증적이지 않다.[사진|더스쿠프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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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청은 이 두려움을 잠재워야만 한다. 교황청은 '바커스빌의 윌리엄(William of Bakersville)'이라는 이름의 수사修士를 '특별수사관'으로 임명해 문제의 수도원으로 파견한다. 윌리엄 수사는 교황청에서도 인정하는 최고의 '합리적인 추론'을 하는 인재다.


    가끔은 성경도 합리적으로 해석해서 이단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던 인물이지만 상황이 워낙 급박하다보니 교황청에서도 교회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명석함'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원작자 움베르토 에코의 '작명 유희'가 흥미롭다. '바커스빌'이라는 이름은 명탐정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의 탐정소설 「바커스빌의 개(The Hound of Bakersvilles)」에서 따오고 윌리엄이라는 이름은 13세기(영화의 배경과 동시대) 유럽에서 가장 유명했던 실증주의자 '윌리엄 오캄(William Okham)'에서 따왔다. 결국 윌리엄 수사는 '셜록 홈스와 같은 실증주의적 해결사'라는 의미가 된다.


    윌리엄은 애초에 제사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있는 인물이다.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이 연쇄적으로 죽어나가든 말든 별 관심 없지만, 그 수도원에 자신이 그토록 갈망해왔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 2권이 감춰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던 터라 내심 가슴이 뛴다.


    「시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년)가 남긴 시에 관한 메모 형식의 소론이며, 서양문학이론의 바이블과도 같이 여겨지는 문헌이다. 그런데 「시학」은 1부와 2부가 있다는데, 1권만 전해져 모든 고전애호가들을 안타깝게 여긴다.


    그만큼 2권은 전설의 책이다. 1권에서 주로 비극론을 다뤘으니 2권에서는 희극론을 다루지 않았을까 막연히 짐작하면서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는 책이다. '희대의 지식마'라 할 수 있는 움베르토 에코 역시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시학」 2권에 쌓인 아쉬움이 컸던 모양이다.


    에코는 그 수도원 도서관을 그리스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고전을 수집한 지식의 요람으로 설정하고, 그 도서관에 그 전설의 「시학」 2권이 숨어 있다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중세판 셜록 홈스라 할 만한 윌리엄 수사는 그 수도원에서 누군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이 세상에 공개되지 못하도록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수도원 조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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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란 전쟁은 이성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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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은 자신의 '촉'대로 수도원 원장 호르헤 신부가 도서관 가장 깊은 비밀수장고에 감춰둔 「시학」 2권에 독을 발라놓아 그 책을 몰래 읽은 수도사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호르헤 신부가 「시학」 2권 희극론을 그토록 세상으로부터 격리하려 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비극이 아닌 희극을 읽고 실실대고 웃으면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잃고, 사람들이 신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교회도 무너진다'는 광신적인 신앙수호의 의지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밝혀낸다.


    현대지성의 최고고봉이라 할 수 있는 움베르토 에코라면 '합리적 실증주의자' 윌리엄과 '광신적 믿음의 수호자' 호르헤의 대결에서 당연히 합리적 실증주의자 윌리엄의 손을 들어주고 광신도 호르헤의 처절한 패배를 안겨주리라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뜻밖에도 에코는 그 최후의 승부를 불분명하게 처리해버린다.


    윌리엄의 수사망이 마침내 자신에게 좁혀오자 호르헤 신부는 불타는 도서관에서 감춰뒀던 「시학」 2권을 꺼내 품에 안고 그것을 한 장 한 장 찢어서 씹어삼키면서 '행복하게'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다. 그렇게 「시학」 2권을 영원히 인간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데 성공한다.


    반면, 합리적 실증주의자 윌리엄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토록 갈망했던 「시학」 2권도 손에 넣지 못하고 인류사의 보물과 같은 모든 고전문헌들이 불타버린 도서관에서 망연자실한다.


    윌리엄은 그제야 합리적 실증주의로 호르헤 신부의 신념을 바꾸거나 항복선언을 받아낼 수도, 자신이 원하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패배자들만 있는 전쟁이었다.


    호르헤 신부의 종교적 믿음이 광기였다면 윌리엄의 합리적 실증주의도 '이성'이라는 또 다른 독선의 광기였을 뿐이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조악하기 짝이 없는 이성으로 어찌 인간들의 '믿음'을 바꿀 수 있겠는가.


    윌리엄과 호르헤 신부의 충돌과도 같은 이란전쟁으로 세상이 또 한번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미국은 윌리엄처럼 온갖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데이터에 기반해서 호르헤 신부처럼 자신의 믿음을 수호하기 위해 못할 짓이 없는 이란의 신정神政체제를 몰아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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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들이 만들어낸 조악하기 짝이 없는 이성으로 어찌 인간들의 믿음을 바꿀 수 있을까.[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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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지도자를 척살하고 무시무시한 최첨단 무기들의 위력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면 이란 지도자들은 합리적으로 항복하고 이란 국민들도 합리적으로 반정부 봉기를 일으키리라고 기대했던 모양이지만 이란 지도부도 국민들도 합리적이지도 않고 실증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호르헤 신부처럼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 죽어가면서도 미국의 합리적 실증주의를 조롱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도널드 케이건(Donald Kagan)은 「전쟁의 기원과 평화의 보전(On the Origin of War and Preservation of Peaceㆍ1995년)」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부터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주요 전쟁들을 분석한 결과, 모든 전쟁은 '오산誤算(계산 착오ㆍmiscalculation)'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계산 착오란 결국 합리적 이성의 한계다. 국제정치심리학자 로버트 저비스(Robert Jervis)는 「국제정치에서의 인식認識과 오인誤認(Perception and Misperception in International Politicsㆍ1976년)」에서 전쟁의 비극을 지도자들이 상대방의 인식을 잘못 해석하는 '인식과 오인(Perception and Misperception)'의 산물로 설명한다. 모두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이성'의 한계다.


    윌리엄이 호르헤 신부의 계획을 오산하고 그의 '깊은 뜻'을 오인해서 인류문화의 보물인 수도원 도서관을 모두 태워먹고, 타다 남은 책 쪼가리 몇 장 들고 망연자실했던 것처럼, 미국도 혹시 현대문명의 보물인 중동의 석유를 모두 태워먹고 망연자실해지는 어이없는 전쟁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성의 과신은 이성의 독단과 광기가 된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더스쿠프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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