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시 관세 유지하려는 초당적 무역조사에
불이익 불만, 무작정 고위층 면담 시도 등
지극히 한국식 원인 진단과 해법 안 통해
일본은 SMR 정확히 집어 자국 이익 도모
조선 등 우리만 앞선 산업에선 수지 안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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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과도 한번 얘기해보세요. 그들도 자신이 무역법 301조의 표적이 됐다고 한국처럼 똑같이 느낍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새 관세 부과를 위해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한 이달 11일(현지 시간). 뉴욕 맨해튼 코리아소사이어티 사무실에서 만난 미국 법무법인 윌머헤일의 로런 맨델 국제무역 부문 파트너 변호사는 ‘당신은 글로벌 문제라고 했지만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 우리나라를 표적으로 삼는다고 의심한다’는 기자의 지적에 답답하다는 듯 이렇게 받아쳤다. 맨델 변호사는 ‘미국 의원들이 쿠팡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친중 전략을 거론하기도 했고 실제로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만 김민석 총리가 지금 미국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추가 질문에도 “‘관세는 계속된다’는 메시지로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반박했다. 맨델 변호사는 버락 오바마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근무하며 무역법 301조 부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동석한 트로이 스탠거론 카네기멜런전략기술연구소 연구원 역시 ‘김 총리가 JD 밴스 부통령과 또 누구를 만나야 사태 해결에 좀 도움이 되겠느냐’는 지극히 한국적인 사고방식의 물음에 “소형모듈원전(SMR) 등 한국 기업 경쟁력에 장기적으로 보탬이 되는 차세대 기술 프로젝트를 대미 투자처로 선택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로 대답을 갈음했다. 스탠거론 연구원은 상원의원·주지사 보좌관과 한미경제연구소(KEI) 무역 부문 선임 국장을 지냈던 인도태평양 지역 통상 전문가다.
현지 전문가들은 쿠팡 사태로 한국이 무역 불이익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는 한국의 시각과 미국 최고위 정치인 한두 명을 만나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시도에 모두 동의하지 않았다. 이들은 301조 조사는 지난달 20일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무효 판결에도 관세율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현 행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원칙에서 비롯됐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후 상황은 기자 스스로 부끄러울 정도로 인터뷰 문답 구도대로 흘러갔다. 그 직후 워싱턴DC에 도착한 김 총리는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 밴스 부통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연달아 만나며 인맥을 과시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한국을 특별히 표적으로 삼고 있지 않다고 분명히 얘기했다”는 점을 크게 부각했다. 미국에서는 크게 의미 부여를 할 이유가 없는 내용인데도 ‘쿠팡 때문에 우리만 차별당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한국인들에게만 ‘뉴스’가 될 얘기였다.
그러더니 19일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미국 전문가들의 말대로 SMR을 콕 집어 ‘선물 보따리’를 구성했다. 우리가 한국 국민의 입맛에 맞춰 대응하는 사이 다카이치 총리는 양국 이해관계가 가장 들어맞을 분야가 무엇인지부터 치열하게 고민한 셈이다. 일본이 미국 정재계의 목소리를 얼마나 두루 경청했는지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미국 내에서는 이제 각국에 대한 차등 관세를 사실상 상수(常數)로 보는 관점이 만연하다. 미국 민주당이 관세와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막기 위해서는 올 11월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의석을 모두 3분의 2 이상씩 휩쓸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중론이다. 자국 우선주의의 초당적 흐름, 강력한 무역 협상 카드로서 효용성, 재정적자 타개 수단으로서 매력 등을 감안하면 트럼프 다음 대통령이 관세를 곧바로 폐기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이제 갓 대미투자특별법을 통과시킨 한국 입장에서는 우리도 미국에서 장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차세대 기술 투자처를 찾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선제적인 물밑 제안으로 미국 정계까지 그럴듯하게 설득하면서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를 맞춘다는 이유로 조선업·메모리반도체 등처럼 우리가 이미 한참 앞선 업종만 선별했다가 결국 돌아오는 것은 산업 경쟁력 약화와 불균형한 수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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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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