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5 (수)

    [강준만의 화이부동]증오의 연대감으로 포박된 사람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윤어게인’ 선동가들은 이렇게 지지자들을 ‘증오의 연대감’으로 포박하기 위한 경쟁을 치열하게 벌였으며
    이런 배틀이 국민의힘의 정치를 먹어 치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군’에 대한 증오의 힘은 강하기 때문이다
    여권엔 증오의 연대감으로 포박된 사람들을 조롱과 멸시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일망정 그러면 안 된다

    지난 3월9일 국민의힘은 긴급 의원총회에서 의원 107명 전원 명의로 계엄 사과와 ‘윤어게인’ 반대 등의 내용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간 장동혁 체제가 무리하게 밀어붙인 ‘윤어게인’ 일변도의 노선과 결정은 어떻게 다시 바꾸겠다는 것인지 알맹이는 빠진 결의문이었다. 하지만 ‘윤어게인’에 매달려온 유튜버 전한길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기엔 충분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이런 저주의 비난을 퍼부었다.

    “그래 잘 가라. 이재명한테 가라고! 국민의힘 106명은 이재명한테 가라고! 더불어민주당에 가라고! 너희들이 보수야? 너희들이 우파야? 너희들은 이재명 이중대야! 국민의힘 106명 의원들은 이재명 이중대고, 더불어민주당 이중대고, 그들은 민주당이나 이재명으로부터 돈을 먹었거나 중국으로부터 돈 먹은 새X들입니다.”

    미안하게도, 슬그머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논점을 이탈한 엉뚱한 반격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른바 ‘절윤’과 이재명·민주당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걸까?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말이 있듯이, 전한길의 지지자들은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하면서 전한길의 분노와 증오에 동참했겠지만 정색을 하고 따져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전체 의원은 107명인데 왜 106명이라고 했을까? 실수인가? 그렇진 않다. 자신이 아끼는 장동혁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고 싶었을 게다. 전한길은 장동혁에게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면서 국민의힘 탈당을 예고했지만, 2시간여 만에 돌연 탈당 계획을 번복했다. 윤석열 쪽 변호인단의 ‘탈당 극구 만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입장문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속마음은 ‘윤어게인’일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하이에나같이 물어뜯기만 하는 친한동훈파들과 중진이랍시고 무게 잡는 대다수의 의원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106명 결의문에 동의한 것일 것이고, 속마음은 그래도 초심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고, 윤어게인과 부정선거 척결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계실 것이다.”

    선동가들의 이분법 너무 단순

    재미있는 주장이다. 이건 전한길의 의도와는 달리 장동혁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 장동혁은 57세의 나이에 냉정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판사 생활을 16년간이나 했던 사람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변신으로 당대표에 당선돼 “죽기를 각오하고 나가 싸우자”는 슬로건을 내걸면서 “전쟁이다”라고 외쳤던 열혈 투사다. 그런 사람을 겁이 나서 자기 생각조차 밝힐 수 없는 연약한 어린아이 취급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뜻밖에도 우리는 여기서 ‘윤어게인’의 본질을 읽어낼 수 있다. ‘윤어게인’파는 이재명·민주당에 대한 증오의 연대감으로 포박된 부족주의 전사들이다. 이들의 세계에서 ‘아군’은 선과 정의의 화신이지만, ‘적군’은 악과 불의의 화신이다. 적군은 강하고 사납지만, 아군은 약하고 소심하다. 일국의 대통령일지라도 아군이면 아홉 살 먹은 아이로 간주한다. 아무리 미련하고 어리석고 무책임하고 사악한 짓을 저질러도 그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아홉 살 먹은 아이를 괴롭힌 적군에 대한 증오심만 불태우면 된다.

    전한길만 그러는 게 아니다. 전한길 못지않게 장동혁을 아끼는 고성국을 보라. 그는 장동혁이 ‘절윤 결의문’을 읽지 않고 원내대표 송언석이 읽게끔 한 것에 감동해 이런 찬사를 보냈다.

    “장동혁이 판은 깨지 않으면서, 자신의 소신은 지켜가면서 무한 인내 전략을 구사했다. 안쓰럽고 마음이 아프다. 집단 자살하는 레밍 떼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 홀로 빛난 장 대표의 리더십을 다시 한번 평가했다.”

    행여 웃으면 안 된다. ‘윤어게인’ 선동가들은 나름 진지하고 심각하다. 그들이 자신들의 유튜브 사업을 위해 그러는 거 아니냐고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가치·이익 이분법은 너무 단순하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들을 따르거나 끌고 가는 열성 지지자들이 나름의 순수한 애국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다. 너무 순수해서 큰 문제가 될 정도로 말이다. 순수가 지나치면 외골수가 되기 쉬우니 이를 어찌하랴.

    한 번쯤 계엄령에 공포를 느낀 동료 시민들의 생각을 할 법도 하건만, ‘윤어게인’ 외골수에겐 그런 배려가 없다. 윤석열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무능력자인 데다 걸핏하면 욱하면서 격노하는 폭군이었다는 증거와 증언들이 뒤늦게나마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면 이재명·민주당을 이기기 위해 윤석열을 넘어서려고 했던 보수 정치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만도 하건만, 어찌 된 게 이들을 ‘배신자’라고 욕하면서 이재명·민주당보다 더 증오한다.

    ‘윤어게인’ 선동가들은 순수한 지지자들에게 ‘증오’를 계속 공급해주는 ‘증오 마케팅’의 선수들이다. 고성국은 자신이 한동훈을 증오를 넘어 아예 인간으로 보지 않게 된 결정적 장면이 있었다고 말한다. 계엄 다음날인 12월4일 새벽 계엄 해제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동훈이 이재명을 만나 악수한 장면이란다. 그는 12월9일엔 “지금 종북 주사파들이 윤 대통령에게 내란 수괴라는 누명을 덮어씌워서 우리 자유우파를 완전히 궤멸시키겠다고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종북 주사파’는 지지자들의 증오의 피를 끓게 만들기 위해 동원한 표현이겠지만, 해방정국과 1950년대 한국 사회의 정신상태로 돌아가라니 너무 심한 게 아닌가?

    공허한 삶에 목적을 주려 더 기승

    그러나 그런 정신상태를 적극 긍정한 장동혁은 2025년 3월22일 탄핵 반대 집회에서 “12·3 계엄은 반국가세력에 맞서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라는 시대적 명령”이라며 계엄을 옹호했다. 이런 일련의 활동으로 ‘윤어게인’ 지지자들을 감동시킨 장동혁은 당대표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이재명·민주당 공격에 앞장섰다. “계엄 유발한 정청래, 내란교사범·내란주범”(8월4일), “이재명 정권, 삼류 조폭 정치… 끌어내리겠다”(8월17일),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고 정권을 다시 탈환하겠다”(8월23일) 등등.

    금배지를 단 지 겨우 3년2개월 만인 8월26일, 장동혁은 전한길의 지원을 받아 대선 후보였던 김문수를 제치고 제1야당의 대표로 선출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건 한국 정치를 위해서건 그 자신을 위해서건 참담한 비극이었다. 그에겐 ‘윤어게인’ 세력의 요구에 따르면서 이재명·민주당에 대한 증오를 증폭시키는 것 이외엔 이렇다 할 비전과 콘텐츠가 없었기 때문이다.

    장동혁은 “이재명 정권과 전쟁 출정식, 죽기로 싸우겠다”(8월28일)고 했고, 전한길은 “사악한 괴물 정권, 이재명 정권이 탄생했다”(9월14일)고 했다. 장동혁은 “전쟁이다. 우리가 황교안이다. 뭉쳐서 싸우자. 이재명을 끝내야 한다. 이 정권을 끝내야 한다”(11월12일), 고성국은 “당사에 전두환·윤석열 사진 걸자”(2026년 1월29일)고 했고, 전한길은 “이 대통령이 중국으로 피신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에서 160조원과 군사기밀을 중국에 넘겼다”(3월18일)는 괴담을 팔았다.

    이렇듯 지지자들을 ‘증오의 연대감’으로 포박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으며, 이런 배틀이 국민의힘의 정치를 먹어 치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군’에 대한 증오의 힘은 강하다. 한 집단 내의 갈가리 찢긴 분열을 치유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혹 그런 경험이 없으신가? 친하지 않은 사람일망정 누군가를 같이 증오할 때 느끼는 묘한 연대감 말이다.

    미국 사회운동가 에릭 호퍼는 “우리는 증오를 통해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과 결합해 하나의 불길로 끓어오르려는 갈망에 전율하는 익명의 분자가 된다”며 “공동의 증오는 아무리 이질적인 구성원들이라도 하나로 결합시킨다”고 했다. 어디 그뿐인가. 호퍼가 지적했듯이,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 증오의 발산에 돈과 시간과 열정을 아낌없이 바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여권엔 증오의 연대감으로 포박된 사람들을 조롱과 멸시로 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좋은 자극을 주기 위해 그러는 것일망정 그러면 안 된다. 증오에 포박된 사람들이 자신의 증오를 의심하게 만들 감동적인 일을 해도 모자랄 판에 증오해야 할 추가적인 이유를 제공해서 뭘 어쩌자는 건가. 그렇게 해서 야당을 몰락의 수렁에 더 빠져들게 만드는 정략적 이익을 얻을 수는 있을망정 그건 정말 나라를 망치는 짓이다.

    경향신문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