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환 김앤장 지속가능성 소셜ㆍ공시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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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가 2021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의무화 계획을 처음 밝힌 이후 구체적인 로드맵이 지난달 발표됐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그만큼 산고와 기다림이 길었다. 이는 기업과 시장이 안고 있던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2028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 자산 3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단계적 의무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은 기업 부담 완화와 제도 연착륙을 고려한 현실적 판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단맛을 온전히 느끼려면 몇 가지 짚어볼 지점들이 남아 있다.
우선 제도 도입 방식이다. 기업 수용성을 고려해 높은 자산 기준에서 출발한 점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우리 기업 구조는 상당수가 연결 종속회사 형태로 이미 그룹 차원의 공시 체계와 연결돼 있다. 자산 규모가 작은 기업이라도 사실상 동일한 공시 체계에 포함된 셈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현재 자산 기준이 실제로 부담 완화로 이어질지는 실효성 검토가 필요하다. 높은 기준에서 출발할수록 이후 기준을 낮출 때마다 대상 기업이 급격히 늘어나 도입 충격이 커질 수 있다. 초기부터 일정 수준의 대표성을 확보하는 것이 국제 정합성을 높이면서 도입 충격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로드맵 기간도 중요한 쟁점이다. 주요국은 대체로 3년 내외에 제도 도입을 마무리하고 있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선행 기업은 역량을 축적하는 반면 후발 기업은 의무화 시점에 공시 체계를 한꺼번에 구축해야 한다. 특히 지속가능성 공시는 과거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처럼 ‘빅뱅 방식’이 아닌 새로운 기준이 계속 추가되는 구조여서 후발 기업이 누적된 규제 요구를 한꺼번에 맞닥뜨릴 가능성도 있다. 자산 기준과 로드맵 기간은 도입 충격과 기업 간 대응 격차를 함께 고려해 설계할 필요가 있다.
공시 채널도 팽팽한 논점이다. 거래소 공시에서 법정 공시로의 전환이 제시됐지만, 기업이 부담을 느끼는 지점은 공시 위치보다 지속가능성 정보의 특성에 있다. 데이터 부족과 미래 추정 정보가 많아 법적 책임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면책 구조가 명확히 설계된다면 처음부터 법정 공시 체계에서 다루는 것이 책임 부담과 이중 비용을 줄이고 국제 정합성에도 부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공시 시점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재무보고와 지속가능성 공시를 3월 말에 동시 제출하도록 한 것은 국제 정합성과 적시성 측면에서 의미 있는 결정이다. 다만 국내 공시 일정이 관행상 6월 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첫해 반기까지 허용된 전환 규정을 로드맵에 명시적으로 반영하고, 추가 전환 기간의 필요성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온실가스 배출량(스코프3 )공시 3년 유예 역시 논쟁이 발생할 수 있다. 유예 자체는 불가피하지만, 의무 공시에서 빠진 정보가 자발적 보고서에 계속 포함될 경우 투자자의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두 보고서 간 관계에 대한 정책적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지속가능성 공시는 우리 자본시장이 어떤 수준의 정보를 요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다음 달 최종 확정까지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논의가 길어질수록 불확실성이 되살아난다. 치열하되 신속한 논의를 통해 로드맵을 확정하고 기업과 시장이 준비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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