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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5 (수)

    이슈 하마스·이스라엘 무력충돌

    중동전쟁은 위기? 韓 ‘디지털금융 허브’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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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강형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

    [강형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 톨스토이는 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우리의 삶이 궤도에서 벗어났다고 절망할 때, 실은 새롭고 경이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라고 썼다. 역설적이게도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이 한 지역의 일상을 파괴할 때, 글로벌 자본은 피난처를 찾아 세계 경제의 새로운 지형을 그리기 시작한다.

    국익의 관점에서 우리는 이 비극 앞에서도 냉정해야 한다. 최근 중동전쟁이 한국에 던지는 시급한 질문은 유가가 얼마나 오를 지에만 있지 않다. 중요한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중동의 안전판이 흔들릴 때, 그곳에 모여 있던 막대한 국제 금융자본과 디지털자산 자본은 어디로 이동하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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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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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외신 보도를 보면, 두바이에 자산을 두었던 일부 아시아 부유층과 기업가들이 싱가포르와 홍콩 등 다른 허브로 자산 이전을 문의하기 시작했다. 두바이가 지난 몇 년간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유연한 규제, 화려한 생활 환경을 무기로 아시아 부유층의 독보적 선호 자산허브였음을 감안하면, 이 변화는 결코 가볍지 않다. 더구나 현지 자문가들조차 이제는 “세금보다 확고한 안전과 안정성이 우선”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아직은 ‘대탈출’이라기보다 ‘분산 배치’와 ‘백업 거점 찾기’가 시작된 단계에 가깝다. S&P 글로벌은 아직 걸프 지역 은행권에서 대규모 자금 유출의 증거는 없다고 보면서도, 전쟁이 더 깊어질 경우 걸프 은행권에서 최대 3070억달러 규모의 예금 이탈 위험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중앙은행이 유동성 지원 패키지를 내놓은 것도 바로 이런 불안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즉, 자본은 아직 공황적으로 도망치는 것은 아니지만, ‘한 곳에만 두기에는 불안하다’는 생각을 분명히 키우고 있다. 바로 이런 순간에 새로운 금융허브의 기회가 열린다.

    역사는 지정학적 위기가 곧 글로벌 자본 지형의 재편으로 이어졌음을 잘 보여준다. 1970년대 ‘중동의 스위스’라 불리던 레바논 베이루트가 내전으로 흔들렸을 때 짐을 싼 자본은 바레인과 두바이로 향하며 아랍의 새로운 금융 거점을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유럽의 금융 자본이 안전판을 찾아 대서양을 건너 뉴욕으로 향하며 월스트리트 글로벌 패권의 토대를 닦았고, 가깝게는 홍콩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자 아시아 지역본부와 글로벌 자금들이 싱가포르로 대거 이전하며 현 지형을 굳혔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기회를 놓친 건 아쉽다. 이처럼 자본은 위기를 겪을 때 현금을 들고 대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대체지를 찾아 금융 생태계 자체를 이식하는 속성이 있다. 지금 중동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자산가들의 문의 역시 단순한 불안감이 아닌 이러한 역사적 자본 이동의 초기 신호일 수 있다.

    전통 금융만 흔들리는 것도 아니다. 세계적인 가상자산 행사인 TOKEN2049 두바이 행사도 지역 불확실성을 이유로 연기됐다. 그렇다고 디지털자산 업계가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로이터는 UAE의 크립토 업계가 클라우드 기반, 원격 운영 중심의 구조 덕분에 비교적 탄력적으로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이 점이 중요하다. 디지털자산 관련 자본은 공장처럼 한 번에 이전하는 방식이 아니라, 법인·수탁·결제·트레이딩 기능을 여러 관할로 나누는 방식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이 노려야 할 것은 ‘두바이의 완전한 대체’가 아니라, 이런 자본이 가장 먼저 택하는 ‘신뢰할 수 있는 제2 거점’의 지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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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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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속도와 설계다. 싱가포르와 홍콩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도 세금 때문이 아니다. 영문 문서, 빠른 인허가, 예측 가능한 법체계, 국제학교와 주거, 분쟁 해결, 글로벌 은행 계좌 개설까지 한 묶음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 경쟁에서 이기려면 더이상 금융허브를 도시 홍보 문구로 다뤄서는 안 된다. 금융허브는 국가 인프라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인프라는 ‘포용적 허브’다.

    여기서 포용적이라는 말은 첫째, 자본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전통적인 자산운용사와 프라이빗뱅킹 자금만이 아니라, 패밀리오피스, 헤지펀드, 기업 재무센터, 수탁업자, 디지털자산 마켓메이커, 토큰화 기술기업까지 함께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최근의 자본 이동은 전통 금융과 디지털 금융이 따로 움직이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부유층 자산, 달러 유동성, 스테이블코인, 토큰화한 채권과 펀드는 점점 더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움직인다. 한국이 여전히 “전통 금융은 오되 디지털자산은 안 된다”는 식의 이분법에 머문다면,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자본을 놓치게 된다.

    둘째, 포용적이라는 말은 무차별 개방이 아니라 ‘높은 기준의 개방’을 뜻한다.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조세회피처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반대다. 자금 출처 검증, 제재 대상 심사, 자금세탁방지, 실질 소유주 확인을 국제 최고 수준으로 강화하면서도, 그 기준을 통과한 자본에게는 가장 빠르고 명확한 진입 경로를 제공해야 한다.

    “아무 자본이나 받는 나라”가 아니라 “깨끗한 자본이 안심하고 들어올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 금융허브의 경쟁력은 느슨한 규제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규제에서 나온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과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제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자산 전략은 더이상 주변부 의제가 아니다. 디지털자산이라고 해서 모두 투기성 코인만 떠올릴 필요는 없다. 앞으로 더 중요한 것은 기관투자자가 활용하는 스테이블코인, 토큰화한 국채와 머니마켓펀드 그리고 이를 안전하게 보관·결제하는 수탁 인프라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부가 주장하는 은행 중심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구조는 경계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금융안정을 이유로 은행권 중심의 점진적 도입을 선호하지만, 이는 기존 전통 금융권의 기득권을 연장할 뿐 새로운 기술 기업의 진입을 막아 전혀 포용적이지 않다. 나아가 은행 특유의 보수적인 시스템에 갇혀 글로벌 시장이 요구하는 블록체인 생태계의 혁신성을 제대로 담아내기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진정한 포용적 디지털금융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소매 투기를 차단하되, 역량 있는 비은행 혁신 기업들에게도 디지털자산 수탁·결제·토큰화 시장을 과감히 개방해야 한다. 그래야 두바이에서 분산을 고민하는 디지털자산 자본이 한국을 “기존 은행권의 좁은 울타리”가 아니라 “역동적인 혁신이 가능한 법적 안정 거점”으로 인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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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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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함께 정부는 가칭 ‘코리아 리로케이션 패스트트랙’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일정 기준을 충족한 해외 금융회사와 패밀리오피스, 디지털자산 관련 기관에 대해 영문 인허가 문서, 원스톱 세무·비자 상담, 신속한 법인 설립, 은행 계좌 개설 지원, 국제학교·주거 연계, 분쟁 해결 지원을 한 번에 묶어 제공해야 한다.

    특히 과거 규제 불확실성을 피해 두바이 등 해외로 떠나야만 했던 국내 크립토 및 블록체인 업계가 이번 기회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른바 ‘크립토 리쇼어링(Reshoring)’을 지원하는 방안도 이 패스트트랙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많은 이가 금융허브를 세율의 문제로만 생각하지만, 실제 이동하는 자본이 사는 것은 운영 가능성이다. “오늘 들어와서 내일 일할 수 있는가”, “해외 본사와 같은 언어로 계약하고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가”, “자녀 교육과 거주가 가능한가”가 훨씬 중요하다. 한국이 이 현실적 마찰비용을 줄이지 못하면 자본은 결국 더 익숙한 곳으로 간다.

    중동전쟁은 우리에게 냉정한 교훈을 준다. 금융허브의 본질은 화려한 빌딩이나 낮은 세율이 아니라 위기 때 더욱 선명해지는 신뢰의 체계라는 점이다. 두바이가 그 시험대에 오른 지금, 한국은 방관자가 아니라 후보지가 돼야 한다. 불확실하고 이해할 수 없고 설명도 해주지 않는 규제 탓에 글로벌 자금 유치에 실패하고, “전쟁도 없는데” 귀중한 국내 혁신 자본마저 해외로 도망가게 만드는 어리석은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전통 금융과 디지털자산을 함께 담고, 서울과 부산을 하나의 국가전략으로 묶고, 개방과 안정성을 동시에 제공하는 포용적 금융허브 전략. 그것이야말로 이번 위기를 대한민국의 국익으로 전환하는 현실적인 길이다. 한국 같은 나라가 있는 한 글로벌 금융자본은 언제라도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는 비전을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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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형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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