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들을 찾아보면 '이란 발전소'를 목적어로 하여 '초토화하겠다' '초토화시키겠다' '공격해 초토화시키겠다'로 번역했다. 트럼프 말을 우리말답게 더 풀면 흔적도 없이 파괴하겠다(없애겠다, 이하 같음), 완전히 파괴하겠다, 싹 다 파괴하겠다쯤 될 것이다. 한 단어로 써야 한다면 '아주 없애버리다'라고 사전이 정의하는 '말살(抹殺)하겠다'쯤이 되겠지만, 말살하다는 사물보다 사실에 대해 주로 쓰이는 것이 걸림돌로 보인다. 문화를 말살하고 창의력을 말살하고 자유를 말살하지 발전소를 말살하고 정부 기관을 말살하고 공공건물을 말살한다고는 잘 않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
기자나 독자나 모두 '초토화하겠다'를 '흔적도 없이 파괴하겠다'로 받아들인다면 이번 풀이는 성공적이라고 보겠다. 전쟁 통에 쓰였기에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기대한다. 다만 '일대일 함수'식 직역을 전제한다면 초토화는 상응하는 영어 낱말(Scorched Earth Policy)이 있는 군사용어란 점을 기억할 필요는 있다. 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농작물이나 건물 등 지상에 있는 것들을 말끔히 없앤다는 청야(淸野)와 비슷하다. 청야는 곧 초토 전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때나 초토화됐다고 표현해선 곤란하다.
「기자들을 위한 신문 언어 길잡이」(국립국어원. 연구 책임자 남영신. 2012년)에 소개된 바로잡기(괄호안) 사례를 알기 쉽게 다시 써 본다. A 개그맨은 깨알 같은 개그로 스튜디오를 초토화시켰다(→웃음바다로 만들었다), B 지역의 값싼 농수산물로 C 지역이 초토화됐다(→큰 피해를 봤다), 폐광마을 D 지역 상인들이 고리 사채의 늪에 빠져 초토화됐다(→황폐해졌다), 수사의 칼날이 정치인 E 주변을 초토화하고(→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초토화는 무시무시한 전쟁 언어이자, 군사작전 용어다. 되도록 멀리 해야 할. 함부로 써선 더더욱 안 될.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초토화'에 대한 사전의 정의 |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국립국어원(연구 책임자 남영신), 「기자를 위한 신문 언어 길잡이」(PDF 파일), 2012 - 과격한 표현 고쳐 쓰기 사례 부분 인용 (참고로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해 이들 사례를 다듬어 썼음)
2. 표준국어대사전
3. 고려대한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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