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NA, SBS Plus '나는 SOLO' 방송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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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로' 30기 영숙을 보는 이들의 반응은 선명하다.
"숨막히네."
영숙의 서사를 지켜보던 MC 데프콘의 말이다.
시작은 지난달 25일 방송에서였다. 영숙은 영호가 자신이 아닌 현숙을 데이트 상대로 선택한 뒤 "미안할 일을 왜 하냐", "연애할 때도 미안한 일을 많이 하냐"며 영호를 몰아붙였다.
지난 18일 방송분에서는 영숙과 영호의 설전 끝 영호가 "지금 지옥이다"라는 말을 쏟아냈다. 데프콘은 "왜 자꾸 날카롭게 싸우려 하는 건지"라며 둘의 대화를 '기괴하다'고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그간의 방송이 보여준 영숙의 연애사는 단순한 말다툼 상황이 아니다. '관계 안에서 누가 심문하고 누가 해명하는가'의 문제로 굳는 관계 패턴을 다룬다.
[사진=ENA, SBS Plus '나는 SOLO' 방송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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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숙의 문제를 "성격이 세다"로 정리하면 핵심을 놓친다. 방송에서 비친 영숙은 사람 좋아하고, 사교적이고, 리더십 있는 인물이다. 타인에게는 친절하고 분위기도 잘 이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까워진 상대 앞에서는 말의 결이 달라진다. 애정을 표현해야 할 자리에서 검열이 시작되고, 이해를 구해야 할 순간에 추궁이 나온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단순한 예민함이 아니라, 친밀감이 생길수록 통제 욕구가 올라오는 관계 방식의 문제로 읽힌다.
이런 사람들의 대화는 대개 내용보다 단어를 심문한다. 영호가 자신의 태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책임감'이라는 표현을 쓰자 영숙은 단어의 사용을 문제 삼고, 대화는 곧 상대가 내놓는 답변의 꼬투리 잡기로 번진다. 발화 의도보다 표현의 흠집을 먼저 찾는다. 이쯤 되면 대화는 소통이 아니라 감식이 된다. 상대는 연인이 아니라 피의자가 되고, 말은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채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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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법이 불편한 이유는 공격적이어서만이 아니다. 관계가 불균형하기 때문이다. 영숙의 말 안에는 은근한 전제가 깔려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더 배려해야 하고, 내게는 그 사람의 말과 태도를 교정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다. 겉으로는 "대화를 하자", "확인하고 싶다"는 형식을 취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납득할 답을 내놔라"에 가깝다. 자율권을 존중하는 듯 보이면서도, 상대의 말투와 사고방식, 표현 방식까지 관리하려 드는 태도다. 그래서 관계는 대등함을 잃는다. 한쪽은 계속 말조심을 해야 하고, 다른 한쪽은 계속 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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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잡도리가 상대를 좋아할수록 심해진다는 점이다. 별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굳이 그렇게까지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반대로 많이 좋아할수록, 많이 기대할수록, 많이 실망할까 봐 더 통제하려 든다. 상대의 말 한마디, 단어 하나, 어조 하나에 예민해지는 이유도 거기 있다. "혹시 나를 가볍게 보는 건 아닐까", "혹시 나를 우습게 여기는 건 아닐까", "혹시 진심이 아닌데 적당히 넘어가려는 건 아닐까" 같은 불안이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으니, 선의보다 결함을 먼저 찾는다. 그래서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곱게 안 들린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관계가 편안해지는 게 아니라, 감사실처럼 변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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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으로는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자신처럼 똑같이 맞받아치는 사람을 만나면 매일 부딪힌다. 반대로 다 져주는 사람을 만나면 끌리지 않거나, 권태가 온다. 연애는 누가 더 논리적으로 이기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누가 상대를 더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잡도리형 화법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사회인들의 세계에서 이런 화법은 더 치명적이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피드백도 주고, 책임도 지고, 사람도 관리하며 산다. 그런 사람에게 단어 하나를 꼬투리 잡으며 훈육하듯 말하면, 그걸 피드백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다. "나를 위해 하는 말"이라는 포장도 오래 못 간다. 상대 입장에서는 사랑받는 느낌보다 혼나는 느낌을 먼저 받기 때문이다. 연애에서 가장 빨리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건 무관심만이 아니다. 지속적인 교정 욕구도 그에 못지않다.
물론 방송 몇 장면으로 한 사람 전체를 단정할 수는 없다. 예능은 편집되고, 감정은 압축되며, 시청자는 부분만 본다. 그럼에도 이번 장면들이 유독 크게 이슈화된 이유는 따로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서도 이런 화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꼬리를 잡는 사람, 내 의도보다 표현을 문제 삼는 사람, 계속 나를 가르치려 드는 사람, 가까워질수록 더 피곤해지는 사람. 영숙이 불편했던 건 그가 특별히 낯선 캐릭터라서가 아니라, 너무 익숙한 관계의 피로를 정확히 건드렸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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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숙에게 필요한 변화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피드백을 줄 의무가 없다는 걸 먼저 인정하는 일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을 교정할 권리가 내게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왜 그런 단어를 써?"라고 묻기 전에 "그 말이 나는 서운했어"라고 말하는 것. 상대를 평가하기 전에, 내 감정을 먼저 설명하는 것. 상대를 의심하는 습관보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 장기적인 관계는 옳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를 덜 지치게 하는 사람이 이긴다.
영숙의 잡도리가 이슈화된 이유도 결국 거기에 있다. 영숙은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계속 상대를 다루고 있었다. 사랑은 관리가 아니다. 연애는 감사가 아니다. 내 사람일수록 더 포용해야지, 내 사람일수록 더 혼내도 된다고 믿는 순간 관계는 비틀어진다. 그 비틀림은 "나는 원래 솔직한 사람"이라는 말로 포장되지만, 결국 상대에게는 한 문장으로 남는다.
"지금 지옥이다."
[사진=ENA, SBS Plus '나는 SOLO' 방송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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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이동건 기자 ldg920210@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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