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환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성폭력처벌특례법 위헌법률심판사건 등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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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성폭력 피해자가 경찰 조사에서 한 진술을 녹화한 영상물을 피해자의 법정 출석 없이도 재판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현행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0조 제6항 중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관한 부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사건에서 재판관 4(합헌) 대 5(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선고했다고 26일 밝혔다. 헌재법상 법률의 위헌 결정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문제가 된 조항은 신체·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을 촬영한 영상물에 대해, 조사 과정에 동석한 신뢰관계인이나 진술 조력인이 그 내용이 실제 진술과 같다고 확인하면 법정 증거로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피고인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더라도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 출석해 반대신문을 받지 않아도, 해당 영상물만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특례 조항이다.
이번 사건은 2020년 13세 미만 지적장애 3급 미성년자를 추행·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A씨 재판에서 비롯됐다. A씨가 피해자 진술 녹화물을 증거로 채택하는 것을 부동의했는데, 1심 법원은 성폭력처벌특례법 해당 조항을 근거로 피해자를 증인으로 부르지 않은 채 영상물을 유죄의 증거로 인정했다.
A씨는 항소했고, 항소심 재판부인 부산고법은 피고인 측 신청을 받아들여 2023년 8월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재판부는 “해당 조항이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않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제청 이유를 밝혔다.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법정에서 다툴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헌법상 방어권 보장에 반한다는 취지다.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 4인(김형두·조한창·정계선·마은혁)은 “성폭력 범죄 피해자는 법정 진술 과정에서 심리적 위축과 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있다”며 “특히 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장애인 피해자는 인지 및 의사소통의 제약으로 더 큰 부담과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어 “반대신문은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하기 위한 절차이지만, 장애인 피해자에게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오히려 기억이 왜곡되거나 극도의 위축 상태가 초래되어 진술의 정확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며 “절차의 공정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피고인의 반대신문권 보장이 공정한 재판의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나, 그 핵심은 물리적 대면이라는 형식 자체가 아니라 진술의 진실성과 신빙성을 검증할 수 있는 실질적 기회가 보장되는지 여부에 있다”면서 “대면 반대신문이 제한된다는 사정만으로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5인(김상환·정정미·정형식·김복형·오영준)은 “성폭력 범죄에서 피해자 진술이 유죄 판단의 핵심 근거가 되는 경우가 많고,장애인 피해자의 경우에도 반대신문에 의한 검증이 필요한 경우가 있음에도 심판 대상 조항은 반대신문의 필요성이나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 장애인 피해자의 진술이라는 사정만으로 전문법칙의 예외를 일률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영상물에 수록된 진술은 수사기관의 질문과 피해자의 일방적 진술로 구성된 증거로서 정확성에 오류가 개입될 가능성이 있다”며 “사후적 검토만으로는 진술의 미묘한 변화나 상호작용을 충분히 포착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대신문권은 단순히 진술의 신빙성 검증을 위한 수단을 넘어, 피고인이 이를 다툴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형사 절차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기능을 가진다”며 “이를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형해화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특히 “심판대상 조항은 신뢰관계인 등에 대한 반대신문 가능성을 전제로 하나, 이들은 원진술자(당사자)가 아니므로 진술에 대한 실질적 검증을 대체할 수 없다”며 “법원이 재량으로 피해자를 증인으로 채택할 가능성 역시 피고인에게 반대신문 기회가 보장된다고 보기에는 불충분하다”고 했다.
한편, 헌재는 2021년 12월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 영상물에 대해 신뢰관계인의 진술만으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후 2023년 7월 법률 개정을 통해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 인정 요건이 강화되었으나, 이번 사건은 개정 이전의 구법 조항 중 ‘장애인 피해자’에 관한 것이다.
[오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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