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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7 (금)

    [논현광장_임미화의 부동산, 가격 너머] 서울 정비사업, ‘모성(母性)도시’가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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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대 부동산국토정보학과 교수

    속도보다 비용 예측 가능성 높이고
    광장과 골목 공존하는 복합성 살려
    시민들 삶의 연속성·포용 담아내야


    이투데이

    서울의 정비사업은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고 주택공급을 확대하겠다는 방향 자체는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 서울의 정비사업은 단순히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짓느냐의 문제를 넘어, 그러한 변화가 서울이라는 도시의 질적 미래와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를 함께 물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정비사업 현장에서 조합원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사업의 속도 그 자체가 아니라 비용의 예측 가능성이다. 공사비 상승, 추가분담금 증가 가능성, 이주비와 금융비용 부담, 반복되는 설계 변경과 각종 심의 보완 요구는 사업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그 부담은 결국 개인의 생활과 자산에 직접적인 압박으로 돌아온다. 행정절차가 단축되더라도 조합원이 감당해야 할 위험이 줄지 않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의미의 신속화라고 보기 어렵다.

    문제는 정비사업의 부담이 단지 비용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업이 장기화될수록 주민 간 갈등은 깊어지고, 고령 조합원이나 장기 거주자는 이주와 재정착 과정에서 더 큰 불안을 겪는다. 세입자와 영세상인은 더욱 취약하다. 정책은 공급 확대를 말하지만, 현장에서는 “누가 끝까지 이 동네에 남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 절실하다. 정비사업이 주택을 새로 짓는 일에 그치지 않고, 삶의 연속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함께 다루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시 차원에서 보더라도 물량 중심 정비사업은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공급 실적을 빠르게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도시공간은 쉽게 획일화된다. 골목의 기억, 생활권의 리듬, 지역 상권의 결, 보행의 흐름, 돌봄의 동선 같은 요소들은 사업성의 언어 앞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기 쉽다. 그 결과 서울은 더 많은 주택을 가진 도시가 될 수는 있어도, 더 풍부한 생활세계를 가진 도시가 되기는 어려워진다. 도시의 가치는 건물의 높이나 세대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다양한 삶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적 여백과 관계의 밀도에서 비롯된다.

    서울이 지금 세계적 관심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은 단지 개발 가능한 대도시이기 때문에 주목받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현대가 교차하고, 광장과 골목이 공존하며, 일상과 문화가 살아 움직이는 복합성 덕분에 서울은 기억되는 도시가 된다. 만약 정비사업이 이러한 도시적 개성과 체류의 매력을 지우고 표준화된 주거상품을 반복 생산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간다면, 서울은 공급도시가 될 수는 있어도 매력적인 도시로 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비사업의 평가기준을 바꾸는 일이다. 얼마나 빨리 추진됐는가, 얼마나 많은 물량을 확보했는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조합원이 감당할 수 있는 사업인지, 원주민과 세입자의 재정착 가능성을 높이는 구조인지, 지역 상권과 보행환경, 돌봄과 생활서비스의 연속성을 지키는지까지 함께 따져야 한다. 정비사업은 건축계획이 아니라 생활권 재설계이며, 공급정책이면서 동시에 도시관리정책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미래는 몇 가구를 더 짓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사람의 삶을 견디게 하는 도시, 다양한 주민을 포용하는 도시, 그리고 서울다운 개성을 잃지 않는 도시를 만드는 데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서울은 단순한 공급도시를 넘어, 시민을 품는 ‘모성도시’의 원리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모성도시’는 특정 성별만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가족, 고령자, 세입자, 돌봄 제공자, 이동약자 등 가장 취약한 존재의 일상과 필요를 기준으로 도시를 설계하는 포용의 원리다. 이제 서울의 정비사업은 속도와 물량의 경쟁을 넘어, 삶과 돌봄, 관계에 기반한 시민들 거주의 연속성을 함께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투데이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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