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가진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적기 공급을 보장하는 생산 안정성이다. 기술 격차가 좁혀지는 상황에서도 주요 고객사들이 삼성을 찾는 이유는 대량 공급 능력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젠슨 황의 발언이 상징하는 바 역시 삼성의 기술력과 더불어 이러한 공급망의 견고함을 높게 평가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노조가 예고한 총파업은 이러한 신뢰에 균열을 내고 있다. 반도체 부문이 주도권 탈환을 위해 전영현 부회장을 구원투수로 투입하며 전열을 가다듬는 시점에 터져 나온 내부 리스크는, 향후 고객사와의 수주 협상에서 불확실성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조합이 주장하는 성과급 산정 기준의 투명화 요구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동안 구성원이 느꼈던 보상 체계에 대한 불신은 사측의 불투명한 소통에서 기인한 바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쟁의 방식과 전략은 정교하지 못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이재용 회장 자택 앞 기자회견을 예고했다가 사측의 면담 제안 직후 철회한 행보는 노조 집행부의 전략 부재를 드러냈다. 실질적인 제도 개선안에 대한 논리 구축보다 총수 압박이라는 상징적 행위에 집중했다. 그 결과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보다 대응 일관성에 대한 의문만 남기게 됐다. 치밀한 전략 없는 강경 노선은 내부 구성원들의 결집력을 약화시킨다. 게다가 파업 정당성에 대한 대외적 공감대도 얻기 어렵게 만든다.
노조의 핵심 요구안인 'OPI(초과이익성과급) 상한 폐지'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특징을 간과하고 있다. 반도체는 막대한 이익과 손실을 오가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호황기에 영업이익의 10%를 한도 없이 배분하라는 요구는 불황기를 견디기 위한 유보금과 차세대 공정 투자를 위한 재원을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이익이 날 때는 무제한적인 배분을 요구하면서 실적이 악화될 때는 경영 실패의 책임을 묻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미래 투자 재원을 성과급으로 선지출하게 되면 결국 다음 하강 국면에서 기업의 기초체력은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장기적으로 직원들의 고용 안정성까지 위협할 소지가 있다.
노조의 권리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현재 삼성은 글로벌 수주 경쟁의 한복판에 있다. 고객사가 삼성의 생산 안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 빈자리는 즉각 경쟁사로 대체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한 번 무너진 공급망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기술 격차를 좁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노조에 필요한 것은 생산 라인을 멈추겠다는 위협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보상 모델의 제시다. '삼성'이라는 브랜드 가치와 신뢰는 노사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자산임을 직시해야 한다. 노사 양측의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합의가 시급한 시점이다.
aykim@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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