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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경제로 묶인 유럽과 이란... "핵합의 지킨다" 한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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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이란 핵합의를 깨기 위한 첫걸음을 떼자 이란과 나머지 핵합의 주역 국가들은 핵 합의 지키기에 나섰다. 핵합의의 생명줄은 아직 이란과 경제적 이해 관계가 깊은 유럽이 꼭 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향해 험악한 말을 쏟아냈지만 이란으로서는 유럽에 기대 경제 회복과 미사일 개발을 모두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 잃을 실익이 없다. 이란의 중도 온건 하산 로하니 정권에게는 트럼프의 선언을 계기로 거세질 이란 내 강경 보수파의 목소리를 진정시켜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로하니 “트럼프, 국제법 공부 좀 하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트럼프의 연설 직후 TV연설을 통해 “오늘 들은 얘기는 수년간 반복된 그저 근거 없는 비난과 저주에 불과하다”며 “트럼프는 국제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대통령 한 명이 자기 맘대로 다자 국제협약을 무효로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핵합의가 우리나라의 권리와 국익에 맞는 한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핵합의가 허용한 탄도미사일 개발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로하니는 조목조목 트럼프의 연설을 되돌려줬다. 트럼프가 1979년 이란혁명,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 헤즈볼라의 베이루트 미 대사관 테러, 1982년 미국 해병대 테러 사건 등을 거론한 것에 대해 로하니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1953년 이란 쿠데타 배후 조종, 베트남전과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1988년 미 해군 이란 여객기 격추 사건을 거론했다.

또한 이란을 불량 독재 국가로 맹비난한 것과 관련 중동의 ‘숙적’이자 미국의 맹방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겨냥해 “이란이 독재국가인가, 아니면 아직도 부족이 다스리면서 선거라고는 해 본 적도 없는 나라가 독재국가인가”라고 반문했다. 아라비아반도와 이란 사이 바다를 이란이 부르는 ‘페르시아만’이 아닌 아랍국들이 부르는 ‘아라비아만’이라고 칭한 것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지리 공부를 좀 할 필요가 있다”고 쏘아 붙였다.

■‘핵합의 지키기’는 유럽에 달렸다

로하니가 핵합의를 존중하겠다고 강조한 것은 유럽의 든든한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 3국 정상은 13일 발빠르게 공동성명을 내놓고 “핵합의를 지키는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국가안보 및 이익에 부합한다”며 “핵합의를 완전히 이행하겠다”고 못박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바로 로하니 대통령과 통화해 핵합의를 지키겠다고 밝혔다. 엘리제궁은 “대통령이 로하니의 초청에 따라 이란을 방문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크롱의 이란 방문이 성사된다면 프랑스 정상이 이란을 공식 방문하는 건 41년만이다. 러시아 외교부는 성명을 내 트럼프의 연설에 유감을 표시하고 “협박과 공격적인 말은 과거의 유물이지, 국가 간 문명적 관계의 근대적 규범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국도 이란 핵합의 준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1월 국제사회의 이란 제재가 풀린 후 EU기업들의 이란과 거래는 2016년에 전년 대비 55% 포인트, 올 상반기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94% 포인트 늘었다. 프랑스 에어버스는 이란에 항공기 170대를 파는 계약을 성사시켰고 에너지 기업 토탈은 중국 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와 천연가스 최대 매장량을 자랑하는 이란 사우스파 가스전을 개발하는 48억달러 상당의 계약을 맺었다. 지난 8월 독일 폭스바겐은 17년만에 이란 시장에 복귀했다. 지난달에는 오스트리아와 덴마크의 은행이 15년만에 유럽 금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이란의 사업에 투자를 결정했다.

EU는 더불어 미국의 제재로 유럽 기업들의 활동이 불법이 될 경우에 대비해 ‘대항입법’을 고려하고 있다. 유럽은 1990년대에도 빌 클린턴 정부의 이란 제재에 대응해 ‘대항입법’을 도입한 적이 있다. 미국이 이란과 관련된 제 3국의 금융기관이나 기업을 제재하는 세컨더리보이콧에 대비해 지금까지 지지부진하던 역외 금융거래 시설을 설립하는 논의가 진전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란 문제를 두고 미국과 완전히 대척점에 서는 건 유럽으로서도 부담스럽다. 3국 정상이 공동성명에서 이란의 미사일 개발에 우려를 표명하며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여지는 남긴 것도 이 때문이다. EU는 우선 트럼프로부터 공을 넘겨 받은 미국 의회를 상대로 제재 도입을 무산시키기 위한 로비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EU 외교관들은 트럼프의 불인증 발표 전부터 워싱턴 의회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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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두 손에 떡’?

이란은 당분간 핵합의를 근거로 석유 수출과 가스전 개발 등 경제 회복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적정한 때가 오면 미국의 구실로 핵합의는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핵개발을 재개할 수도 있는 패도 쥐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선임연구원은 CNBC에 “미국이 핵합의를 불인증하면 공은 이란에 넘어가고 이란을 두 손에 떡을 쥐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란 경제는 핵합의의 버팀목이면서 동시에 이란의 최대 약점이기도 하다. 이란도 핵개발 재개로 과거의 군사 대치 국면으로 돌아가고 국제사회에서 다시 고립되는 일은 바라지 않는다. 지난 5월 대선에서 57% 득표율로 로하니가 재선된 것도 개혁개방으로 이란 경제를 살려달라는 민심의 주문이다. 유럽을 지지대로 삼되 유럽을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내모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적정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이유다.

포린폴리시는 13일 “트럼프는 자신이 이란에 회초리를 휘두를 때 유럽이야말로 이란에 당근을 줄 최적임자라는 걸 알게 될 것”이라며 “이란 경제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공간이 커질수록 이는 이란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로하니가 핵합의를 지키는 데는 국제사회의 협조보다 국내 정치가 더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개방동력은 확보했지만 보수파의 끊임없는 견제를 받고 있다. 미국 이란 강경파의 압박이 커질수록 이란 내 군부 및 혁명수비대(IRGC)를 위시로 한 강경보수세력의 목소리도 올라간다. 더구나 트럼프는 이번 연설에서 IRGC를 지목했다. 지난 8일 이란 국영방송에 따르면 트럼프가 더 강력한 제재를 공언한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모하마드 알리 자파리 사령관은 “미국이 IRGC를 테러단체로 취급한다면 IRGC는 미군을 전세계, 특히 중동의 이슬람국가(IS)로 취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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