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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세계의 분쟁지역] 전쟁보다 참혹... 중미 난민들, 살기 위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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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율 1위 엘살바도르 등 떠나 미국행... 멕시코에 연간 50만명 북진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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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향한 ‘마지막 관문’ 멕시코에서는 매해 난민 약 50만명이 북상 행렬을 이룬다. 대부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과테말라 등 ‘중앙아메리카 북부 삼각지대’ 지역 출신으로 세계 최대 위험 지역으로 꼽히는 고국을 떠나 삶을 찾는 이들이다. 2013년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전세계 살인율 조사에서 온두라스는 10만명 당 90명 선으로 1위, 엘살바도르(41명)는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브라질 싱크탱크 이가라페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엘살바도르가 약 91명, 온두라스가 약 59명으로 순위가 뒤바뀌었으나 서로 번갈아 가며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지난 10년간 북부 삼각지대에서 살해 당한 사람만 약 15만명에 달한다.

아무리 폭력 위험이 높아도 내전이 일상적인 지역만 하겠냐는 의문도 적잖이 들리지만 실제 통계상 이 지대의 피해는 분쟁 지역보다도 참혹하다. 올해 국제위기그룹(ICG)의 ‘가난한 사람들의 마피아’ 보고서에서 온두라스에서 살해된 민간인 희생자 수는 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ㆍ베네수엘라ㆍ소말리아ㆍ남수단 등 무력 분쟁 지역의 사망자 수보다도 눈에 띄게 높다. 또한 엘살바도르의 경우 폭행치사, 살인 등 폭력으로 인한 사망자가 10만명 당 108명으로, 시리아(151명)를 제외한 모든 분쟁국보다 높았다.

시민들이 이처럼 살해당하지만 사법 기능은 사실상 마비 상태다. 처벌망에서 빠져나간 폭력 세력은 계속해서 불안을 조장하며 일상적인 납치ㆍ갈취에 성폭행 위협도 서슴지 않는다. 온두라스 제2도시인 산페드로술라에서 온 환자 A(30)씨는 “갱단은 ‘보호’를 미끼로 돈을 요구한다”며 “이를 거절하면 나와 가족을 죽이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세 차례 걸쳐 총격을 받아 머리에 남은 흉터를 보여주며 “이후로 얼굴이 마비됐고 말도 잘 못하고 잘 먹지도 못한다”고 토로하면서도 “하지만 가장 아픈 건 조국에서 살 수 없다는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실제 국경없는의사회가 만난 환자 중 약 40%는 자국에서 도망친 이유로 본인 또는 가족이 ▦직접적인 폭행ㆍ위협ㆍ갈취를 경험했거나 ▦갱단 등 범죄 조직에 가담하도록 강요당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폭력과 가난의 굴레에 놓인 이들이 결국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안전을 찾아 북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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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남부 타바스코주 테노시케의 이주민 쉼터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여성 모임에 참석한 한 여성이 곤히 잠든 손녀를 안고 지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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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은 겨우 멕시코에 도착해도 끊임없이 생존을 위해 악전고투하며 횡단을 이어가야 한다. 피난 과정은 이들에게 신체적ㆍ정신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 당국의 단속을 피해 불안정하고 위험한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이들에게 수시간 동안 계속되는 고온의 뙤약볕은 살인적이다. 화물 열차로 이동해도 환기가 되지 않는 열차 칸 속 가득 찬 난민들 사이에서 힘겹게 버텨야 하고 때로는 떨어질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물과 음식이 없는 것은 물론, 제대로 된 식사와 수면을 위한 안전한 공간도 없다.

결국 멕시코에 모인 난민 절반은 폭행 흔적을 몸에 새기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2015~2016년 북부 삼각지대 출신 이주민의 주요 경로인 멕시코에서 진료한 이주민ㆍ난민 1,817명 중 47.3%는 신체 폭력을 경험했다. 부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총상, 발차기와 주먹질 등 둔기에 의한 외상, 납치 도중 신체 부위 절단, 마체테(벌채용 긴 칼) 공격으로 인한 흉터, 야구 방망이에 맞아 생긴 골절, 달리는 열차에서 밖으로 던져지면서 생긴 부상 등이다. 명백한 피해자들이지만 어느 나라에든 정식으로 법적 항의를 하기엔 어려운 현실이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스태프들은 북부 삼각지대 출신 난민 수십만명의 존재 자체가 이들을 보호, 지원해야 할 정부의 실패를 보여준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각국의 정책에는 난민들이 고국을 떠나는 이유와 이동 경로 및 최종 종착지 등에 기반한 조직적인 대응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티에리 코펜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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