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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이슈 무병장수 꿈꾸는 백세시대 건강 관리법

"건강 좋아질수록 죄책감 커져" 악보집으로 돌아온 구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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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곡 30곡 담은『구혜선 악보집』출간

시나리오집ㆍ안구네집 등 '집 시리즈'

아나필락시스로 입원해 시나리오 쓰기도

"행복하면 못 쓰는 체질, 배운 것 나누고파"

중앙일보

틈틈이 작사, 작곡한 30곡을 모아 구혜선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몸이 아프거나 하는 힘들 때만 곡이 써지고 글이 써지는 게 문제"라며 "덕분에 병원에서 글은 실컷 썼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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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좋아해요. 모든 만물이 공평해지는 시간이잖아요.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수확을 하지만 겨울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이니까요. 왜 시골 어르신들도 겨울엔 다같이 모여 고스톱 치고 음식 나눠 드시고 하잖아요. 농사 일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구혜선 악보집』발간을 앞두고 서울 서소문에서 만난 배우 구혜선(33)의 표현을 빌자면 그에게 2017년은 쭉 겨울이었다. 지난 3월 알레르기성 쇼크(아나필락시스)로 MBC 드라마 ‘당신은 너무합니다’에서 6회 만에 하차하면서 병원 신세를 지는 동안 제대로 먹지도, 편히 자지도 못하는 시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특정 물질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증상이지만 그 대상을 파악하지 못하니 어떤 걸 먹어도 불안한 탓이다.

“아직도 원인은 못 찾았어요. 같은 달걀을 먹어도 프라이로 먹느냐, 삶아서 먹느냐에 따라서도 몸의 반응이 다 다르게 나오는데 미치겠더라고요. 식욕이 없어지니 모든 욕구가 사라지고 글만 써지더라고요. 사실 건강하고 행복할 땐 잘 못쓰는 체질이거든요.” 드라마 ‘블러드’를 통해 만난 배우 안재현(30)과 지난해 5월 결혼 이후 한동안 멈춰있던 창작을 위한 시곗바늘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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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출간된 구혜선 악보집. [더디퍼런스]


악보집은 그동안 발표한 3장의 정규 앨범과 틈틈이 내놓았던 싱글 중 피아노곡 21곡, 기타곡 9곡 등 총 30곡이 실려있다. ‘신혼일기’ OST로 삽입된 ‘겨울일기’와 ‘좋은 날’을 비롯 직접 만든 곡을 최인영 프로듀서가 악보로 옮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원래는 피아노 악보를 잘 못봤어요. 진도를 못 따라가니까 선생님이 기타 코드를 알려주셨는데 덕분에 기타를 잘 못쳐도 곡은 쓸 수 있게 됐죠. 그때만 해도 문구점에서 1장에 500원 짜리 악보를 많이 팔아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악보가 나올 때마다 사고 했었는데 요즘은 연주를 하고 싶어도 악보가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엔 보고 듣는 것 외에 직접 연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말이죠.”

팬들의 꾸준한 악보 제작 요청에 용기를 냈지만 선뜻 나서는 출판사가 없었다. “시장성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되려 다른 도서 추천사를 통해 인연을 맺은 더디퍼런스가 『구혜선 시나리오집』, 『안구네집』을 시리즈로 내기로 했다. 구혜선은 “제가 제일 하고 싶은 건 그림집인데 아무래도 대중성이 없는지 아직도 진척이 없다”며 웃었다. “디지털 시대가 될수록 기기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지지만 남는 게 없다는 점도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부추겼던 것 같아요. 다모임이며, 싸이월드며, 버디버디 같은 SNS도 한때 열심히 했는데 다 사라져 버렸잖아요. 그때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도 다 잊고.”

여러 앨범에서 선별한 만큼 별다른 타이틀곡은 없지만 악보집을 지배하는 정서는 이별과 죽음이다. 멘토로 따르던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가 2009년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 구혜선의 삶에 불쑥 다가온 죽음은 이번 투병을 통해 한층 가까이 느껴졌다. 그는 “사람들이 다 내가 엄청 아픈줄 알고 있는데 조금씩 건강이 회복될수록 죄책감이 커졌다”며 “건강해지면 안된다는 생각과 하나라도 더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맞섰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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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촬영한 단편 &#39;미스터리 핑크&#39;. 연출작 &#39;유쾌한 도우미&#39;(2008)와 &#39;요술&#39;(2010)을 함께한 배우 서현진이 주인공으로 함께 했다. 구혜선은 &#34;제가 발견한 배우&#34;라며 뿌듯해했다.[사진 YG엔터테인먼트]


그 결과 단편영화 ‘미스터리 핑크’가 탄생하기도 했다. 양동근ㆍ서현진 주연의 호러ㆍ멜로ㆍ스릴러가 섞인 작품이다. “사랑하는 감정이 커질수록 집착하고 파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는데, 보는 사람마다 다 자기 얘기냐고 묻더라고요. 내년 1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제작과정을 담은 전시와 함께 준비 중인데 10분 짜리니까 부담없이 들러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지난 1월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미술전 ‘다크 옐로우’를 잇는 컬러 프로젝트의 일환이기도 하다.

당시 전시했던 작품은 많이 팔렸느냐고 묻자 “전부 감사한 분들에게 선물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기존 감정을 전부 비워내야 새로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탓에 눈앞에 보이는 대로 다 내다버리려고 하기 때문에 그 편이 더 안전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동미술사 자격증을 따는 등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주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조카가 태어나니 이제 제가 배운 걸 누군가를 위해 가르쳐줘야 할 시간이 왔구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저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믿고 배울테니 자격증 공부를 했죠. 첫 자격증이라 기대가 컸는데 바로 취업이 되고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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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안재현과 함께 출연한 &#39;신혼일기&#39;에서 털털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무렇게나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법 맛있다는 &#39;구혜선 토스트&#39; 등 레시피도 인터넷에서 공유되고 있다. [사진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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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배우ㆍ감독ㆍ작곡가ㆍ화가ㆍ작가 중 그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은 뭘까. “저한텐 연기가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제가 아닌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저를 계속 날 서 있게 만들거든요. 반면 그림은 저를 평온하게 만들어주고, 음악은 감정적으로 힘들어도 제 안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그래서 제 인생작이 ‘신혼일기’인가봐요. ‘꽃보다 남자’ 이후 8년 만에 나온 대표작이 예능이라 여전히 스스로 의심하게 되지만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좋게 봐주신 만큼 또 힘을 내봐야죠.”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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