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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만추 남녘여행] 섬진강에서 늦가을 배웅을…남해 보리암에서 올 한 해 정리 소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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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사 14명과 함께하는 이야기 테마여행

이제 막 겨울이 들이닥칠 참이다. 계절은 왜 이리도 빨리 오고 가는지 헛헛한 마음 부여잡고 경남 하동과 남해로 떠났다. 흥미를 끄는 테마가 있었다. 바로 '지역 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전국 14개 지역에서 각각 명사 14명을 발굴해 직접 이야기와 역사를 들려주는 여행상품을 개발 중이다. 볼거리와 먹거리만 찾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속살을 보고 깊은 이야기를 듣는 테마여행이다. 가을은 왠지 사람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니까 기왕이면 사람 냄새 물씬 나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넉넉한 섬진강과 광활한 남해의 한결같은 모습을 보니 계절이 변한다고 유난을 떠는 것은 인간뿐인 듯했다. 허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은 자연뿐만이아니었다. 그 속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람 역시 감동이었다. 하동의 최영욱 시인과 남해의 석숙자 씨.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연을 지니고 각각 섬진강과 남해를 품에 안은 그 고장에 살고 있다. 스산하다고 느껴지는 막바지 가을 여행, 그들이 그곳에 있어 참 다행이었다.

◆ 가을의 끝, 겨울의 시작 그리고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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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만봐도 뭉클한 경남 하동 섬진강. [사진제공 = 한국관광공사]


유난히 짧은 가을, 눈 깜짝할 새 작별을 고할까 마음이 급해진다. 나무에 붙어 있는 잎사귀가 반, 바닥에 뒹구는 것이 절반 정도. 하동의 가을은 그렇게 막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한발 늦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밀려들었지만 섬진강을 보고 있자니 금방 위로가 된다. 굽이굽이 늘어선 산줄기와 그 새를 파고드는 섬진강은 바라만 봐도 뭉클하다.

봄마다 열병을 앓는 섬진강변 19번 국도를 따라 악양면 쪽으로 길을 틀었다. 봄날의 부산스러움은 온데간데없고 차분한 계절이 내려앉은 섬진강이 되레 낯설었다. 붉은빛 수초가 은모래와 대조적으로 보인다.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가 늘어선 이 길은 왠지 어릴 적 외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목과 닮았다. 반가운 얼굴을 만나러 가는 길은 어디든 비슷한 기운을 내뿜는다.

최영욱 시인을 찾아가는 길도 그랬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 평사리에 소설 속 주인공의 집(최참판댁)을 꾸미고 평사리 문학관의 관장으로 지내는 최영욱 시인. 평사리 들판과 멀리 섬진강 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최참판댁 앞마당에서 그를 만났다. 행랑채와 안채·사랑채와 별당을 차례차례 거닐며 그 안에서 벌어진 소설 속 이야기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고 공간의 의미를 설명했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 소회였다. 사위 김지하 시인을 '원수'라고 불렀다는 박경리 선생, 생전 손자 사랑이 살뜰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한국 문학사의 두 거장 박경리·박완서 선생의 일화 등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평사리 문학관이 생기고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박경리 선생을 초청하면 박완서 선생이 동행을 했다. 둘은 밤새워 서로를 붙잡고 이야기를 나눴다. 여섯 살 터울인 두 여인은 지기(知己)라기보다는 모녀지간 같았다. 모진 일을 당한 박완서 선생이 여섯 살 위의 박경리 선생을 찾아가자 박경리 선생은 그를 보듬고 배추속댓국을 끓여 밥을 먹였다. 박완서 선생이 술이라도 한잔하는 날이면 그 자리는 필히 눈물로 마무리가 됐단다. 그 모습을 지켜본 최영욱 시인은 그 둘을 보고 "문학으로 맺어진 축복"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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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리문학관 관장 최영욱 시인 "박경리·박완서는 문학으로 맺어진 축복"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읽고 늦깎이 문학도가 된 최영욱 시인은 이곳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고인을 떠올린다. 훌륭한 문학가이자 따뜻했던 인간에 대한 추억을 곱씹으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최영욱 시인은 가을과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온 김에 쌍계사까지 갔다. 어릴 적 가족과 함께 벚꽃놀이를 떠났었다. 뭣도 모르고…. 길에서 씨름을 하고 차 안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난 그날 이후로 봄철 쌍계사는 상상도 못했다. 안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다 문득 쌍계사의 가을 모습이 궁금해졌다. 최치원이 남긴 쌍계(雙磎) 석문(石門)이라는 글자를 지나 일주문을 향해 걸었다. 행락객으로 들끓던 임도는 한산했다. 사찰의 첫 번째 출입구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문과 천왕문이 줄줄이 이어진다. 문을 하나 지날 때마다 계단을 오르고 다시 문을 통과하는 구조다. 단지 문 하나 계단 몇 개 올랐을 뿐인데, 마음은 마치 미지의 곳으로 가는 것처럼 묘하다. 지는 해가 일주문 왼쪽으로 내리면서 따스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일주문 네모 프레임 밖으로 낙엽 뒹구는 길이 보인다. 저 문으로 계절도 오가겠지. 담도 없고 소담한 일주문을 앞에 두고 한참을 서 있었다. 가는 가을이 아쉬워 발걸음을 한참 붙잡아두었나 보다.

◆ 사람이 있어 더 좋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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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3대 관음도량으로 꼽히는 경남 남해 보리암. [사진제공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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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맥주축제가 열리는 곳은 머나먼 남쪽 남해군이다. 국내 유일의 교포 정착 마을 남해 독일마을에선 매년 뮌헨 옥토버페스트만큼 신나는 맥주축제가 열린다. 이 핫한 축제를 만든 것은 수십 년 독일에서 청춘을 바쳐 일하다 은퇴해 조국을 찾은 평균 나이 65세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다.

남해 독일마을이 다시 한번 이슈가 된 것은 영화 '국제시장' 덕분. 주인공 부부가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연을 맺었다. 영화를 통해 그들의 노고가 다시 한번 알려졌고 산증인들을 만나러 독일마을을 찾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독일마을에도 문화부가 발굴한 명사가 있다. 파독 간호사였던 석숙자 씨다. 석씨는 옥토버페스트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1973년 독일 레버쿠젠으로 떠나 30년을 독일에서 살았다.

1960년대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76달러.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에게 원조를 거부당하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독일로 갔다. 차관의 담보로 1만8993명의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기로 약속했다.

"당시 말단 공무원 월급이 1만5000원이었고 파독 간호사는 15만원을 받았죠. 첫해 750마르크를 벌어서 20마르크의 생활비를 남기고 730마르크를 한국에 보냈어요."

1963~1977년 광부 7936명, 1966~1976년 간호사 1만1057명을 파견했고 그들이 보낸 돈은 총 1억153만달러로 대한민국 총수출액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파독 간호사들은 고급 인력이었어요.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했으니까. 독일로 가기 전에 1년 동안 독어 실습을 했지만 막상 독일 땅에 내리니 인사 한마디도 못했죠. 고맙게도 그때 쾰른대학 유학생을 독일어 선생님으로 초빙해 주말마다 독어를 배웠어요." 석숙자 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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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간호사 석숙자씨 "옥토버페스트같은 맥주축제 남해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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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든 것은 문화적 차이였다. 한국인이 고사리와 밤을 삶아 먹는 것을 보고 독일 사람들은 "가난해서 말이 먹는 것을 먹는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핀잔을 줬다. 석씨는 지금까지 마늘을 먹지 않는다.

독일마을은 2002년 남해군의 도움과 행정안전부의 예산을 받아 만들어졌다. 마을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2006년 대학생을 대상으로 독일어 캠프를 진행하면서부터다. 2010년에는 십시일반 돈을 모아 옥토버페스트를 시작했다. 3000명분의 음식과 술을 준비했는데, 아침에만 5000명이 몰렸다. 독일어 캠프를 다녀갔던 학생들이 사회인이 돼 마을을 다시 찾아줬던 것이다. 그 학생들이 참 고마웠다고 이야기하는 석숙자 씨. 시간이 짧아 많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다음에 다시 와달라며 두 손을 꼭 잡는 그에게서 따스한 가을볕이 느껴졌다.

하동과 마찬가지로 남해에도 정토가 있다. 국내 3대 관음도량으로 꼽히는 보리암이다. 비단을 두른 듯한 절경을 자랑하는 금산에선 막바지 가을 놀이가 한창이었다. 수분 없이 바싹 마른 마지막 단풍잎이 힘겹게 나뭇가지에 달려 있었다. 바다를 향해 있는 해수관음보살에게 소원을 읊조리고 잠시 주변 풍광을 살펴본다. 벼랑 아래로 숲이 펼쳐지고 해변 가까이 마을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로는 전부 바다다. 모든 것이 움직임 하나 없다. 급할 것도 없고 욕심낼 것도 없다. 소원 성취를 장담할 수 없지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에는 충분했다.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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