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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도시를 읽다] (20) 전남 구례 - 구례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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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 그레잇’ 따뜻한 사람들에 반해 전국 각지서 귀농인 몰려

‘젊음 그레잇’ 영화관 등 복합문화공간 조성해 시골 이미지 탈피

‘풍광 그레잇’ 지리산·섬진강 절경에 고즈넉한 아름다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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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소박한 도시다. 해발 1000m 이상의 20여개 산봉우리가 넉넉하게 펼쳐지고, 섬진강이 마을 앞으로 흐른다. 자연을 품은 구례에 살고 싶어 외지인들이 찾고 있다. 구례에 정착한 귀농인들이 한두 집이 아니다.

■ 구례에 외지인이 몰려든다

전남 구례군 광의면에 있는 ‘예술인 마을’은 전국 각지에서 온 서양화가·동양화가·조각가 등 31명이 터를 잡고 사는 ‘외지인들의 마을’이다. 예술가들의 작품이 저마다 다르듯 집집의 모양도 제각각이다. 투박한 회색 담벼락을 한 집, 흙으로 쌓은 친환경집, 지중해풍 이층집도 보인다.

“구례 사람들이 순박하고 인심 좋다고 하잖아요. 연고도 없는 지리산자락에 보금자리를 틀었는데 쑥부쟁이 밥상을 개발하면서 정부와 여러 기관에서 농업기술과 관련한 상까지 받고 있어요.”

요리예술가인 이명엽씨(66)는 남편 김동환 전 청주대 교수(68)와 함께 6년여 전 이 마을로 이사 왔다. 구례군과 함께 특화작물인 ‘쑥부쟁이’로 개발한 요리만도 30~40가지. 비빔밥과 너비아니구이 등 그의 레시피대로 쑥부쟁이 밥상을 내놓는 전문식당이 구례에 3호점이나 있다.

전남 구례는 한때 인구가 7만8000여 명이 넘었지만 1970년대 들면서 마을 사람들이 한해 1000명씩 도시로 떠났다. 인구 감소가 멈춘 것은 2000년대 들면서다. 2016년 5월 말 현재 2만700여 명. 귀촌·귀농인들은 매년 100명씩 늘고 있다. 2012년 102명에 불과하던 구례 귀농·귀촌 인구는 2016년 5월 말 현재 2088명으로 4년 사이 20배나 증가했다.

일본 도쿄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딴 김서곤(55)·노정애씨(53) 부부는 15년 전 토지면 오미마을로 이사 왔다. 부부는 발효차와 커피를 파는 북카페 ‘산에 사네’와 한옥집 방 4개를 게스트하우스로 운영 중이다.

노씨는 “산과 강도 좋지만 마을사람들과 격의 없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구례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다”며 “지리산을 찾아온 여행객과 등산객들도 행복 에너지를 듬뿍 얻고 간다”고 말했다.

■ 구례가 젊어지고 있다

“극장이 2개나 생겼어요. 서울에서 하는 개봉영화도 보고, 수제맥주도 마시고….” 구례군청 김인호 팀장은 “공부하러 큰 도시로 나갔던 청년들이 다시 돌아오는 농촌이 바로 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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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방면 죽정마을에 있는 ‘자연드림파크’는 유럽의 소도시처럼 세련돼 보였다. 2014년 생쿱이 4만5000여평 허허벌판에 문화산업단지를 조성했는데 뾰족하고 붉은 지붕을 가진 건물들이 마치 독일에 온 듯 착각을 불러왔다. 이곳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평균 연령은 38세. 최첨단 공장 11곳은 500여 명의 젊은이들이 쌀 도정과 제분, 과자와 라면, 빵과 만두 등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작업장이었다. 또 다른 8개 건물은 영화관과 북카페, 수제맥주점, 커피전문점, 한식당,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 등이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었다.

“옛날에는 문화생활을 하려면 남원이나 순천까지 가야 했어요. 이젠 하동이나 남원서도 영화 보러 여기로 온다니까요.” 구례읍에 사는 박종운씨(60)는 “극장이 20년 만에 생겼는데 요즘은 1년에 10편 이상도 본다”며 “모임이 있으면 다들 영화 보자고 해서 같은 영화를 두세 번씩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돈가스집도 화엄사 앞에 딱 하나 있는데 여기는 무항생제 친환경 고기로 만들어 맛나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70석 2개관을 가진 영화관은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와 외화를 하루 7회씩 14회 상영 중이었다. 수제맥주집 ‘비어락’에서 애일과 바이젠 맥주 등 400㎖ 4900원짜리 맥주를 마셔봤다. 서울 강남에 뒤지지 않을 만큼 멋과 맛을 누리고 있는 구례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넘쳐났다.

■ 오랜 세월을 지켜온 구례

오산(鼇山)을 마주 보고 사는 상사마을로 향했다. 구례사람들은 오산자락에 살면 평생 고생 없이 산다고 한다. 상사마을에는 오래된 고택과 한옥들이 모여있다. ‘구름 위를 나는 새도 돌아온다’는 운조루는 고풍스러웠다.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간직한 운조루에 가면 ‘타인능해’라는 글자가 붙은 나무쌀독이 보인다. 운조루는 흰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독을 행랑채에 두어 누구나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가져가도록 했다. 300년 전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한 양반집 마당은 고즈넉했다. 오랜 세월 달빛에 젖은 처마, 햇빛이 가득한 장독대, 풀 한포기,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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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암에 가면 구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요. 도선, 원효, 진각, 의상대사가 도를 닦아 사성암이라고 합니다.”

지난달 사성암 입구에 한국야생화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한 정연권 본부장(60)과 함께 사성암에 올랐다. 지리산에서 나고 자란 ‘야생화 박사’ 정 본부장은 생태조경, 압화, 향수, 나물 등 구례 야생화 산업화에 이어 10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야생화 표본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차로 5분쯤 올라 정상으로 향하던 그는 “복주머니란, 처녀치마 등 사라져 가는 지리산 희귀종 야생화 1526종을 외지에서 온 전문가들과 아크릴압화로 만들어 생태관광도시로 키우겠다”며 당차게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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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우뚝 서 있는 사성암은 당당해 보였다. 돌계단을 한참 올라 구례 전경을 사진 한장에 담았다. 지리산자락은 잔잔한 파도 같았고 섬진강은 한겨울에도 눈부셨다. 조선시대 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사람 사는 곳에 경치가 아름답고 물산이 풍부하여 소출이 넘쳐나면 인심 또한 자연스레 넉넉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억겁의 세월을 버틴 지리산은 변함이 없었고 구례는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했다.

▶건강한 입맛엔 쑥부쟁이 한상

‘쑥부쟁이 카페(064-783-7235)’는 쿠키와 머핀은 물론 최근 간편식 비빔밥을 선보였다. 우리밀로 만든 머핀은 3000원, 쿠키는 1500원. 쑥부쟁이 효소차·라떼는 3000~4000원.

‘태양식당(061-783-5587)’은 쑥부쟁이 산채 밥상으로 유명하다. 산채밥상 1만2000원, 비빔밥 1만원.

‘구례정(061-781-6617)’은 쑥부쟁이 월남쌈밥집. 1만6000원.

‘남촌회관(061-782-5888)’은 3대째 손맛을 이어가는 탕과 어죽 전문점이다. 섬진강에서 잡아 올린 민물고기에 우거지, 방아 잎 등 각종 채소를 넣어 끓인다. 매운탕과 어죽 1인분에 1만2000원.

‘어부의 집(061-783-7155)’은 구례 5일시장 안에 있는 생선 구이집으로 토박이들에게 유명하다. 생선구이 1인분 1만원.

‘부부식당(061-782-9113)’은 영양 만점 다슬기요리 전문점이다. 부드럽고 쫀득쫀득한 우리밀 수제비는 국물 맛이 깔끔하고 시원하다. 다슬기수제비 8000원, 다슬기회무침(대) 4만원.

‘동아식당(061-782-5474)’은 푸짐한 밥상으로 소문난 집이다. 돼지족탕은 가마솥에 푹 끓여내 국물이 진하고 구수하다. 족발을 건져 초장에 찍어 먹은 뒤 라면 사리를 넣어 먹는 맛이 일품. 가오리찜은 초장, 부추와 함께 먹는데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가오리찜과 족탕(대) 각 3만원.

예원(061-782-9917)’은 산채정식집. 전국 각종 음식대회에서 다수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는 요리연구가가 직접 밥상을 내놓는다. 직접 제조한 발효엑기스를 쓴다. 산채한정식 1만3000원, 더덕정식 1만8000원.


<구례 | 글·사진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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