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
신두리해안사구의 해넘이 풍경이 참 곱다. 바다와 모래언덕과 억새군락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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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아시아투데이 글·사진 김성환 기자 = 충남 태안으로 가서 해넘이를 본다. 돌이켜보면 고단했다. 사는 것은 퍽퍽했고 살림살이는 또 궁색했다. 그래도 악착같이 잘 버텼다. 지는 해는 묵은 시간들을 함께 안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후련하면서도 뭍을 때리는 파도처럼 알 수 없는 아쉬움이 밀려든다.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 세밑의 해넘이는 가슴을 이토록 먹먹하게 만들고 또 설레게 한다.
신두리해안사구는 서울 여의도보다 조금 더 넓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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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리해안사구 외곽의 소나무 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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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과 시간이 빚은 예술작품…신두리해안사구
지도를 놓고 보면 태안은 뭍에서 서해로 툭 튀어나와 위 아래로 길게 뻗었다. 태안읍을 중심으로 아래쪽에는 그 유명한 안면도와 천수만이 자리잡았다. 위쪽엔 이원반도가 있다. 신두리해변을 비롯해 학암포와 가로림만 등이 유명하다. 사람들은 태안하면 남쪽인 안면도를 떠 올린다. 눈 돌리는 곳마다 멋진 해변이 펼쳐지고 펜션도 많아서다. 태안의 북쪽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한여름에나 북적인다. 이러니 호젓한 분위기는 북쪽이 오히려 낫다. 세밑에 마음 살피며 한 해 계획 세우기에 괜찮다는 이야기다.
신두리해안사구(천연기념물 제431호)의 해넘이는 여느 곳의 풍경과 좀 다르다. 붉은 하늘 아래, 넓게 부려진 모래언덕과 겨울의 청명한 바다가 어우러진다. 원북면 신두리해변의 배후가 사구다. 사구는 모래언덕이다. 바람이 해변의 모래를 뭍으로 밀어올렸다. 바람에 실려 날아든 식물의 씨앗들이 척박한 땅에 악착같이 뿌리를 내렸다. 식물들이 자라 덤불을 이루고 모래는 덤불에 막혀 쌓이며 거대한 언덕이 됐다. 1만 5000년의 시간과 바람이 만든 ‘작품’이다. 사구의 길이는 3.4km, 폭이 0.5~1.3km에 달한다. 면적은 약 98만㎡로 서울 여의도보다 조금 더 넓다. 우리나라 최대 사구다. 이러니 맞닥뜨리면 눈이 번쩍 뜨인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나 보던 사막이 이 땅에도 있었다.
모래 땅이라고 황량한 것은 아니다. 해당화·갯메꽃·산조풀·순비기나무 등 다양한 사구식물들이 터를 잡았다. 사구에서 약 1km 떨어진 두웅습지에는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도 산다. 사구와 습지가 함께 있는 것이 신두리해안사구의 특징이다. 힘겹게 기둥을 밀어올린 나무들은 숲을 이루고 사구 끄트머리에는 억새들도 군락을 이룬다. 이러니 여름에는 모래언덕 뒤로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볕 받아 반짝이는 억새들이 은빛융단처럼 깔린다. 숲과 억새군락과 모래언덕을 따라 탐방로가 잘 갖춰져 있다. 호젓한 숲을 지나 여전히 하늘거리는 억새를 끼고 모래언덕에 올라 바다를 구경한다. 사위 한갓진 겨울에 파도 소리는 참 선명하게 들린다. 큰 숨 들이켜면 묵은 앙금이 떨어진다. 바람은 또 몸과 마음을 가뜬하게 만든다.
사목마을 앞 해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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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대포구의 겨울. 너른 개펄과 고깃배들이 정박한 풍경이 마음 참 푸근하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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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리해변을 지나 북쪽으로 내쳐 달려도 가슴이 상쾌해진다. 먼동·구례포·학암포·사목·꾸지나무골 등 작고 소담한 해변들이 차례로 나타나는데 어디든 들어가도 괜찮은 해넘이를 볼 수 있다. 특히 학암포해변은 안면도 꽃지해변과 맞먹는, 태안 북쪽에서 이름난 해넘이 포인트다. 또 꾸지뽕나무가 많았다고 해 이름붙은 꾸지나무골해변은 아늑한 분위기가 압권이다.
길이 끝나는 곳이 만대포구다. 태안 북쪽의 ‘땅끝마을’로 통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태안읍에서 이곳까지 오는 길이 험했다. 그래서 ‘가다 만다(만 데)’고 해 ‘만대’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만대포구 사람들도 읍내보다 바닷길을 이용해 인천을 오가는 것이 훨씬 편했단다. 가로림만의 질펀한 개펄이 펼쳐지고 출어를 기다리는 고깃배들이 포구에 정박해있다. 소담한 포구의 정취가 겨울 한기를 누그러뜨린다. 끝은 언제나 시작과 통한다. 돌아서면 끝은 다시 시작이 된다.
백화산 정상에서는 태안읍내와 서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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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 중앙에 작은 보살을 배치한 형식이 독특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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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 최고의 비경 백화산...마애삼존불 알현하며 새해 다짐
태안읍에 솟은 백화산(284m)은 꼭 올라본다. 지역 주민들이 운동 삼아 오르는 산인데 전망이 참 훌륭하다. 높지 않지만 정상에 오르면 태안 일대와 서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멀리 안면도까지 보인다. 완만한 능선들이 뭍에서 바다로 흘러드니 풍경은 심심하지 않고 역동적이다. 이 풍경 딱 5분만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뻥 뚫린다. 백화산은 특히 바다로 튀어나온 지형 덕에 해돋이도 볼 수 있다. 매년 새해맞이 행사도 열린다. 이러니 태안에서 해돋이까지 보겠다면 잊지말고 기억한다. 정상부에 남아있는 산성도 찾아본다. 백화산성은 태안에서 가장 먼저 쌓은 산성이다. 조선시대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는데 지금은 약 100m 길이의 성벽이 남아있다. 정상까지 여러개의 등산코스가 있다. 어디서 오르든 1~2시간이면 정상에 닿는다. 특히 태을암으로 오르는 코스 옆으로 임도가 나 있다. 차로 8부 능선까지 갈 수 있다. 태을암에서 약 15분만 걸으면 정상이다.
태을암 옆에는 태안의 유일한 국보가 있으니 메모해 둔다. 백제시대에 새긴 것으로 전해지는 마애삼존불(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국보 제307호)이다.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충남 서산의 마애여래삼존불보다 약 70년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돼 2004년 국보로 지정됐다. 가장 오래된 백제시대 삼존불인 셈이다.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다. 삼존불은 중앙에 본존불을 배치하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가운데 위치한 본존불의 크기가 가장 크다. 그러나 이곳 삼존불은 중앙에 보살(1.3m)을, 좌우에 불상(2m)을 배치했다. 가운데에 있는 보살의 크기가 가장 작다. 이런 형태는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이다. 불상 아래 그려진 홑겹 연화무늬와 독특한 수인(手印·불상이나 보살의 손 모양) 등도 눈길을 끈다. 큰 바위를 석굴 형태로 파내 불상을 새긴 것도 흥미롭다. “훗날 통일신라가 태안의 마애삼존불을 보고 석굴암을 만들었을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고 이곳 문화해설사는 설명했다. 백화산 정상에서 자연의 큰 기운을 받은 후 불상을 알현하고 새해 안녕과 무사를 기원하면 마음가짐은 벌써부터 새로워진다.
박속밀국낙지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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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메모] 겨울 태안여행은 별미가 있어 더욱 즐겁다. 우선 11월초부터 이듬해 3월까지 태안 어느 곳에서나 싱싱한 굴을 즐길 수 있다. 또 갓 잡은 간자미를 즉석에서 잘게 썰어 미나리·오이 등과 함께 고추장에 무쳐 먹는 간자미 회무침도 겨울별미다. 박속밀국낙지탕을 비롯해 물텀벙이(물메기)탕, 우럭젓국 등 뜨끈한 국물요리는 속을 풀어주고 겨울 한기를 누그러뜨리는데 제격이다. 특히 박속을 앏게 썰어 낙지와 함께 끓이는 박속밀국낙지탕은 시원하고 개운한 맛이 일품, 자연산 우럭을 꾸덕꾸덕하게 말려 쌀뜨물에 푹 끓인 우럭젓국은 담백한 맛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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