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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추억의 기찻길 걸으며 한해의 끝자락을 붙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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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달 3단계 구간 추가 개방한 경춘선 숲길 6㎞

시골 철길과 간이역이 남아 있는 곳

늘푸른나무의 숲이 이어지는 구간

오래전 그날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

한겨레

경춘선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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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기찻길, 끝나지 않은 이야기

옛 경춘선 열차의 추억이 생활의 편린과 함께하는 경춘선숲길을 걷는다. 큰 나무가 있는 시골 철길과 간이역이 남아 있는 곳, 주택가를 지나는 철길, 늘푸른나무 숲과 나란히 이어지는 구간 등 약 6㎞의 경춘선숲길에 오래전 그날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서울시는 2010년 12월 폐선 이후 방치되던 철길을 재생하기 위해 2013년 11월 경춘선숲길 조성 3단계 사업을 시작했다. 2015년 1단계 구간(1.9㎞)을 꾸며 시민들에게 첫선을 보였고, 지난해 11월엔 2단계 구간(1.2㎞)을, 지난달엔 3단계 구간(2.5㎞)을 추가 개방했다.

경춘철교와 기찻길 옆 소나무 숲

속도와 편리를 쫓는 세상, 옛것이 그립다. 간이역 플랫폼에 멈춰 사람을 태우고 내려주던 완행열차가 그렇다. 차량과 차량 사이 열린 문으로 쏟아지던 바람과 맨 뒤 차량 문밖에서 바라보던, 열차를 따라오던 풍경도 그렇다. 한해의 마지막에 경춘선숲길을 걸으며 마음의 구석방 잠긴 문을 열고 잠들었던 그 바람과 풍경을 꺼내본다.

노원구 월계동 녹천중학교 뒤 경춘철교를 건넌다. 경춘철교는 경춘선이 개통되던 1939년 들어섰다. 중랑천을 건너는 철교의 다릿발과 철로를 옛것 그대로 남겼다. 그 위에 사람들이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보행로를 만들었다. 이미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모여 눈이 다져지고 얼었다. 철길을 따라 한겨울에도 푸른 잎 무성한 숲이 나란히 이어진다. 숲 밖은 사람 사는 마을이다.

경춘선숲길 방문자센터로 쓰이는 열차 차량을 지난다. 열차가 지나간 공간을 메우는 바람에 소나무에 쌓였던 눈이 공중에 날리던 추억 속 풍경이 살아난다. 페인트칠 벗겨진 녹슨 열차 벽 눅눅한 쇠비린내가 코끝에서 맴돈다. 기억이 되살리는 냄새다. 행복주택공릉지구 공사 때문에 기찻길이 끊겼다. 기찻길 옆 도로를 따라 걷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기찻길을 만났다.

마을을 지나는 기찻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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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숲길에 있는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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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주택공릉지구 공사 구간을 지나면 주택가와 상가가 밀집한 지역이 시작된다. 식당 문 앞으로 기찻길이 지나고 어깨를 맞댄 빌라 앞 옹벽에 벽화가 보인다. 벽화의 붉은 꽃이 잔설 남은 길가 풍경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휴대전화를 보느라 고개를 들지 못하고 걷는 학생과 마주친다. 유모차를 밀며 천천히 걷는 젊은 부부 옆으로 팔꿈치를 ‘ㄴ’자로 접고 팔을 힘차게 앞뒤로 흔들며 걸어가는 사십대 중후반의 여자는 아마도 다이어트 중일 것이다. 멀찍이 앞에서 자전거를 끌고 오는 중년의 남자가 보이고, 막 식당을 나서는 아저씨들은 이쑤시개를 물고 느긋하게 이야기한다. 장바구니 가득 짐을 들고 가는 아주머니의 집에선 오늘 저녁 맛있는 찌개를 끓여놓고 밥상 앞에 둘러앉아 따듯한 밥을 나눠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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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화랑대역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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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동도깨비시장 아치 앞은 무슨 공사를 하는지 가림벽이 설치됐다. 기찻길 옆 시장에 들러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 국물에 토마토케첩과 설탕 바른 핫도그가 먹고 싶었다. 더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건널목에는 사람과 차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신호등이 깜박거린다.

완만하게 곡선을 그리는 기찻길 마른풀 숲에 누군가 버린 휴지가 갇혔다.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풀 뒤로 보이는 어느 집 담벼락 연통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따뜻하다. 생활의 편린들이 있어 정겨운 기찻길 구간을 지나면 길은 옛 화랑대역이 있는 경춘선숲길 공원으로 이어진다.

추억의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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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궤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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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숲길 공원에는 1951년부터 1973년까지 수원~남인천 구간과 수원~여주 구간을 달렸던 협궤열차가 있다. 어린이대공원에 전시됐던 것을 2017년 5월 이곳으로 옮겨놓았다. 어지럽게 얽힌 기찻길 뒤로 플랫폼과 증기기관차가 보인다. 경부선 서울~부산 구간을 운행했던 미카5-56호 증기기관차다.

플랫폼은 언제나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별의 슬픔과 만남의 기쁨이 수많은 사연과 함께 남아 있는 플랫폼은 시간이 멈춘 섬이다. 플랫폼 옆에 옛 화랑대역 건물이 있다. 옛 화랑대역 건물은 경춘선이 개통되던 1939년에 완공됐다. 처음에는 ‘태릉역’이라 하다가 1958년에 화랑대역이 됐다. 경춘선숲길에 남아 있는 유일한 옛 역사다. 등록문화재 제300호다. 그때 화랑대역은 경춘선 구간 중 서울에 있는 마지막 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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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에 적힌 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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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화랑대역 앞 플랫폼을 지나 춘천 쪽으로 걷는다. 기차 바퀴가 구르던 철로에 글자가 빽빽하게 적혔다. 사랑을 확인하려는 연인들의 흔적,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들, 우정을 나누는 이름들…. 청춘의 이름으로 흔들리며 내달리던 지난날이 생각나는, 언제나 청춘 같은 추억의 기찻길 경춘선숲길은 서울시와 경기도 구리시의 경계 부근에서 끝난다. 길은 끝나지만 그 길 너머에는 덜컹거리고 흔들리며 달렸던, 대성리·청평·가평 그리고 춘천에 이르는 추억 속 기찻길,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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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장태동/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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