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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박수찬의 軍] 난무하는 UAE 논란, 쟁점은 '절차적 정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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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달 10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수도 아부다비의 대통령궁에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UAE 왕세제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으로 촉발된 UAE와의 군사협력 논란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UAE 현지에 요격미사일 시험장을 건설하려 했으나 무산됐다는 주장, 박근혜정부 당시 UAE와 비밀리에 상호군수지원협정을 체결했다는 주장 등이 계속 제기되면서 정치적 공방으로 확대됐다. 야권은 국정조사 등 국회 차원의 진상 규명을 실시하겠다고 벼르고 있고, 여권은 “국익을 무시한 정치공세”라며 강력히 반발하면서 전임 정부와 현 정부의 책임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논란이 잦아들지 않는데도 정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청와대는 사안이 불거질때마다 “자세한 것은 국방부에서 설명할 것”이라고 하고, 국방부는 “양국간 신의를 고려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한 야권 의원은 “정부가 일체 사실 확인을 안하니까 이 논란이 있는 거다”라며 “수습을 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UAE 논란을 풀기 위한 퍼즐조각들은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이 퍼즐들을 맞춰보면 일정한 수준의 그림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그림은 문재인정부의 정책 기조인 ‘절차적 정당성’과 관련이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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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와의 관계는 원래부터 안좋았나

UAE와의 관계를 구성하는 핵심은 군사협력이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6년 11월16일 체결된 국방협력협정이 시초로 2005년부터 우리 정부가 추진했던 UAE T-50 고등훈련기 수출을 뒷받침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정부는 T-50 수출을 위해 UAE에서 거론되던 공군 비행훈련센터 운영에 필요한 현역 및 예비역 인력 파견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국 방문 군사 요원의 법률준수, 비용, 의료지원 등 병력파견과 관련이 있는 조항이 협정에 포함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9년 2월 UAE가 M-346 도입을 결정하면서 이 협정은 유명무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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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달 10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주둔 아크부대를 방문해 장비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09년 12월27일(현지시간) UAE 원전 수주는 양국 군사협력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왔다.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은 2009년 11월17∼20일, 11월23∼26일 두 차례 현지를 방문했다. 2010년 4∼10월 양국은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약정, 정보보안분야 교류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 군사교육 및 훈련분야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 방산 및 군수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후 2011년 1월 특전사 요원이 중심이 된 아크부대가 현지에 파병됐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3년 12월 상호군수지원협정이 체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간 군사협력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 시점은 박근혜정부나 현 정부 시기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시절 국방부에서 국제군사협력 등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UAE 관련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람이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다. 김 전 실장은 이명박, 박근혜정부 시절 국방부 장관(2010.12~2014.06)과 국가안보실장(2014.06~2017.05)을 역임했다. 아크부대를 주축으로 한 UAE와의 군사협력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주한 UAE 대사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UAE측은 지난해 4월 27일 국방분야를 포함한 양국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김 전 실장에게 1급 훈장을 수여했다. 양국 관계가 소원했다면 김 전 실장이 1급 훈장을 받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에도 한동안 양국 관계에 이상기류는 포착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과 모하메드 왕세제는 전화통화를 갖고 양국 협력과 북핵 문제를 논의했다. 결국 UAE와의 문제가 불거진 시기는 같은해 11월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12월 임 실장의 UAE 방문으로 좁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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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3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주둔 아크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절차적 정당성, 文 정부에 부메랑 됐나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송 장관은 지난해 11월 2일 UAE를 방문해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맺은 군사협력 약정과 양해각서 등은 국내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이행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뜻을 전달하면서 일부 수정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UAE측이 강하게 반발하자 임 실장이 급히 UAE로 날아가 수습했다는 것이다.

UAE와의 군사협력을 규정하고 있는 법적 장치 중 이명박정부 당시 체결된 4개의 약정과 양해각서, 아크부대 파병은 2010년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국회 비준 동의 여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의원(現 바른정당 대표)은 2010년 11월11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국가와 국가 간에 권리와 의무를 발생시키고 나중에 구속력이 있는 합의가 들어 있으면 명칭에 관계없이 조약이다”며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크부대 파병도 레바논 동명부대처럼 유엔 평화유지군(PKO) 파병 근거가 되는 ‘대한민국은 국제평화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 제5조 제1항을 적용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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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부대 장병들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현지 훈련장에서 전술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야당이었던 현 더불어민주당은 2010년 UAE 파병동의안은 물론 2012년과 2014년 파병연장동의안 심사에서 “법적 절차와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충분한 토론이 필요하다”며 반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회의원 시절이었던 2014년 12월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파병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해 일정한 제한 같은 것이 법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며 아크부대 파병도 법적 근거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UAE 논란의 전개 양상은 지난해 안보분야의 뜨거운 감자였던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매우 유사하다. 사드 배치가 본격화된 2016년 야당이었던 현 더불어민주당은 “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므로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드 배치 국회 동의를 당론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도 지난해 5월 30일 사드 발사대 4기 추가반입 보고가 누락됐다며 조사를 지시하고, 공개되지 않았던 2단계 부지 공여 계획을 공개하는 한편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지시하는 등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면서 사드 배치를 늦추고 중국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도발로 같은해 9월초 사드 발사대 4기 등 관련 장비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반입해 사드 포대를 완전 가동했고, 지난달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사드 문제를 봉인했다. UAE 논란도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다가 역풍을 맞고 봉인해버린 것과 비교하면 사드에 이어 또다시 논란을 자초한 셈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차적 정당성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과 위안부 합의 검증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4대강 사업이나 탈원전처럼 국내 이슈에서는 절차적 정당성 검증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외교안보분야에서는 역풍을 자초할 위험이 있다. 외교안보정책은 항상 상대국이 존재한다. “과거 정부 외교안보정책이 국내법이나 절차를 위반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당신네 국가 당국자들이 우리나라의 과거 정부와 함께 위법 행위를 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특히 UAE나 중국처럼 왕정국가나 일당 독재체제 국가와의 외교안보 관계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거론하는 것은 ‘최고존엄’인 국가 통수권자의 통치행위에 흠집을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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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일 오전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인천 영흥도 낚시배 전복사고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등 외교안보 사안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검증했다. 그 결과 국내적으로 지지를 이끌어냈지만 외교적으로는 내상이 쌓이고 있다. 사드 배치에 반대했던 중국과 야기됐던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봉인했고, 위안부 합의 과정을 검증했지만 일본의 강한 반발에 대처할 방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UAE와도 갈등을 자초했다가 급하게 봉인해버린 모양새다.

무능과 비리로 얼룩진 박근혜정부의 뒤를 이었다는 측면에서 현 정부는 절차적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의식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도덕주의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역풍을 초래할 위험이 높다. 이상주의적 도덕주의를 내세웠던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우방국들과 잦은 외교적 마찰을 빚었다. 인권문제로 박정희정권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그는 주한미군을 일부 철수했다. 또한 해군 함정을 대폭 줄이는 등 군비 축소도 감행했다. 이같은 정책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과 이란 주재 대사관 인질사건 등 국제정치적 문제가 빈발하면서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추락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로널드 레이건에게 정권을 내주는 빌미가 됐다.

손목을 다쳐 수술을 받은 사람은 그 경과가 좋더라도 무거운 물건을 들 때 인대를 다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내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교안보정책도 마찬가지다. 한 번 갈등을 겪으면 상호 신뢰관계는 회복불가능의 상처를 입는다. 갈등을 봉합한다고 해도 그 이면에 남은 불신의 상처는 드러나지 않은 채 남아있어 예전 수준으로는 회복이 어렵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어렵고도 세심한 외교전략을 구사한다 해도 위기관리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 남북 고위급 회담으로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상호 신뢰와 국익을 고려한 외교안보전략이 어느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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