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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성추행 ‘모르쇠’ 안태근의 신앙고백 “깨끗하게 살았다”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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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안태근, 우병우 사단으로 승승장구하다 ‘돈봉투 만찬’으로 옷 벗어

종교 귀의해 신앙고백하며 “깨끗하게 살았다” 억울함 토로

서지현 검사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 입장 밝혀


한겨레

성추행 사건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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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현직 검사가 8년 전 당시 법무부 핵심 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공개적으로 폭로했습니다. 서지현(사법연수원 33기)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검찰 내부 통신망에 “2010년 10월30일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 안태근 검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 모욕감과 수치심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과를 받기로 하는 선에서 정리됐지만, 그후 어떤 사과나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글을 올린 겁니다.

<한겨레> 보도로 이 사실이 알려진 이날 저녁 서지현 검사는 <제이티비시>(JTBC) ‘뉴스룸’에 출연해 ‘성폭력 피해는 결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걸 깨닫는데 8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습니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은 혹시나 피해가 자신 탓은 아닌지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리곤 합니다. ‘자신이 근무했던 조직, 그럴 것 같지 않았던 가해자’에게 피해를 입었을 경우 더욱 그러하죠. 서 검사 역시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가”하는 자책감에 휩싸였다고 했습니다.



“성추행 사실을 문제 삼은 여검사에게 잘나가는 남 검사의 발목을 잡는 꽃뱀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자주 보았다. 우리는 언제까지 그 썩어빠진 것들 그냥 살라고 내버려두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걸까”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나는 소망합니다> 글 중 발췌

특히 검찰과 같이 위계가 엄격하고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가 만연한 곳은 더욱 피해자가 입을 열기 힘이 듭니다. 정당한 문제제기임에도 ‘여자라서 또는 예민해서, 적당히 넘어갈 일에 까다롭게 굴어 조직에 누를 끼친다’는 평가를 받진 않을까 자기검열을 하게 되죠. 서지현 검사도 그랬다고 합니다. 게다가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는 당시 검찰 안에서 실세 중 실세였습니다. 부당함에 대한 폭로가 서 검사에게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컸던 겁니다. 검찰의 실세였던 안태근의 면면을 ‘더(The) 친절한 기자들’이 정리했습니다.

■ 노회찬 의원이 혀를 찬 안태근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안태근 전 검사(사법연수원 20기)는 검찰 내에서 ‘잘 나가는 남자 검사’ 였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처음 법조계에 발을 들인 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2부장·법무부 정책기획단장·대검 정책기획단당·서울서부지검 차장·법무부 인권국장 등 법무부와 대검, 서울중앙지검 등 요직만을 두루 거친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꼽힙니다. 안 전 검사는 퇴임 전 법무부 검찰국장까지 올라갔는데요. 이 자리는 고검장 승진 1순위인 자리일 뿐 아니라, 장차 법무부 차관을 바라 볼 수 있는 요직입니다.

안 전 검사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법무부 검찰국장 시절 국회 법사위 답변을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2016년 법무부 검찰국장 시절 안 전 검사는 법무부 장관과 함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나왔습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당시 ‘부산 엘시티 비리 관련 의혹 사건’과 관련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에게 보고한 적이 있느냐고 질문했습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농단 수사에 몰리는 시선을 돌리기 위해 부산 엘시티 비리의혹 사건 엄정 수사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관련 기사: 법사위 ‘막장 드라마’ 연출한 우병우 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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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에게 질문을 받은 안 전 검사는 “기억에 없습니다”, “보고를 안 했을 수도 있고요”, “모르겠습니다”라고 불성실하게 답했습니다. 어이없어 하던 노회찬 의원은 “막장입니다. 막장이에요”라고 말하며 질의를 마쳤죠.




■ 비리 덮어주고 요직 끌어주고 ‘우병우 사단’

안태근 전 검사가 국회의원 앞에서 안하무인격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건 그가 ‘우병우 사단’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절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정권 실세였습니다. 2012년과 2013년 검사장 승진에 실패해 검사복을 벗었던 우병우 전 수석은 ‘박근혜 청와대’에서 화려하게 부활했죠. 돌아온 우병우는 검찰·국가정보원에 ‘우병우 라인’을 대거 포진시키며 사정기관을 장악했습니다. 우 수석은 검찰 인사를 총괄하는 자리인 법무부 검찰국장 역시 자기 사람으로 채웠죠. 그 중 한명이 바로 안태근 검사입니다. 안태근 전 검사는 우병우 전 수석의 핵심 측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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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왼쪽)과 안태근 전 검찰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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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주요 요직에 우병우 라인이 포진해 있다보니, 우병우 민정수석을 수사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거듭된 구속영장 기각에 압수수색 등 수사 정보가 새나가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됐죠. 실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던 특검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분석한 결과 우 전 수석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을 때, 우 전 수석과 안태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 4개월 동안 1000여 차례 이상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관련 기사: [단독] 우병우, 수사대상 때 검찰국장과 1000여차례 통화)

당시 검찰은 우 전 수석의 가족회사 ㈜정강 등을 압수수색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안 전 검사가 우 전 수석과 수사와 관련해 통화해 관련 정보를 흘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죠. 안 전 검사는 “우 수석과 업무상 통화를 했다”고 해명했지만, 하루 평균 8통 이상(4개월간 1000여차례)의 통화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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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태근, 우병우 봐주기 수사한 뒤 돈봉투 만찬

우병우 전 수석과 1000여차례 통화한 의혹으로 ‘조사 대상’에 오른 안태근 전 검사는 지난해 4월 우병우 전 수석이 불구속 기소된 뒤 나흘 만에 해당 수사팀 간부 6명을 데리고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이 별다른 반응없이 바로 불구속 기소를 해 ‘부실 수사’ 여론이 일고 있을 때였죠. 이 자리에선 위로·격려의 말과 함께 술잔이 돌았고,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던 안 전 검사가 먼저 수사팀 간부들 개개인에게 50만~100만원이 들어있는 금일봉을 건넸다는 사실이 <한겨레> 보도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관련 기사: [단독] 국정농단 수사팀-조사대상 검찰국장…‘부적절한’ 만찬)

관련 보도가 나간 뒤 문재인 대통령은 안 전 검사 등에 대한 감찰을 법무부와 검찰청에 지시했습니다. 안 전 검사는 곧장 사의를 표명했죠. 하지만 감찰 중이라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고,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됐습니다. 이후 지난해 6월 법무부는 검사징계위원회를 열어 안 전 검사에게 면직 처분을 내렸습니다. 면직이 되면 2년간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습니다.




■ 피해자 대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감사·찬양한 안태근

검사복을 벗은 안태근 전 검사는 최근 종교에 귀의했다고 합니다. 안 전 검사는 지난해 10월29일 온누리교회에서 간증(신앙고백)을 했는데요. 안 전 검사는 세례를 받은 뒤 자신이 종교에 귀의한 배경에 대해 털어놨습니다.

안 전 검사는 “30년 동안 공직자로 살아오며 나름대로 깨끗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순탄하게 공직생활을 해왔다”며 “그러다 뜻하지 않은 본의 아닌 일로 공직을 그만두게 되었고, 주변의 많은 선후배·동료·친지들이 ‘너무 억울하겠다’며 같이 분해하기도 하고 위로해 주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른바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옷을 벗게 된 일을 언급한 겁니다. 이어 그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얼마나 마음 고생 많냐고 묻지만 하나님을 영접할 기회를 주시고, 교만을 회개할 기회를 주신 거라 생각하니 처음 느꼈던 억울함과 분노도 사라졌다. 믿음 없이 교만하게 살아온 죄많은 저에게 이처럼 큰 은혜를 경험하게 해주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양을 올린다”고 덧붙였죠. 안 전 검사는 신앙고백 중 복받침을 참지 못하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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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교회에서 세례받은 안태근 전 검사의 모습. 간증 사진과 함께 인터넷 블로그에 올라왔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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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 전 검사는 지금도 ‘억울하게 검사복을 벗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지현 검사와 같은 성추행 피해자가 버젓이 존재함에도 “깨끗하고 성실하게 공직생활을 했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서 검사의 폭로가 나오자 8년 동안 침묵하고 있던 안 전 검사는 “오래전 일이고 문상 전에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에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이런 태도에 더욱 지옥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안 전 검사가 회개해야하는 대상은 누구인걸까요? 서 검사는 “저는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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