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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강PD 성희롱 폭로…그 뒤 지옥과도 같았던 1년6개월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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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전남CBS 사례로 본 ‘직장 내 성희롱’ 고발하면 겪게 되는 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등 피해자 탓하는 분위기 만연

강민주 피디 “‘직장 내 성희롱’ 싸움, 좋은 선례 남길”

전문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잘못 아니란 인식이 우선”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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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가까이 지난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전남시비에스>(전남CBS)에서 상사의 성희롱 발언에 항의를 하다가 두 차례나 부당해고를 당한 강민주 피디의 이야기다. 강 피디는 녹취록을 포함, 증거를 촘촘하게 수집해 대응해왔다. 변호사와 노무사의 자문도 여러 번 받았다. 첫 부당해고 때는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서 복직 판결도 받았다. 두 번째 해고 뒤엔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여수지청으로부터 <전남시비에스>에 대한 수시근로감독 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상사 성희롱’ 문제 제기한 피디 두번 해고한 전남CBS)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 피디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그는 말한다. “주변에서 그러더라. 저처럼 준비가 잘 돼 있는 사람도 해결을 못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라고.” 강 피디의 사례는 한국에서 ‘직장 내 성희롱’을 폭로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the)친절한기자들’은 강 피디의 사례를 단계별로 정리해서 직장 내 성희롱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낱낱이 기록해봤다.

■사건이 발생한다

2016년 5월 19일, 강 피디가 <전남시비에스>에 입사했다. 5개월 간의 수습 기간이 끝난 다음날인 10월 19일, 강 피디는 해고됐다. <전남시비에스>는 물론이고, <시비에스> 본사에서도 일어난 적 없는 일이었다. 강 피디는 자신이 반복되는 상사의 성희롱 발언에 항의했기 때문에 해고됐다고 주장했다.

그의 직속 상사인 윤아무개 보도국장은 여성 직원들 앞에서 “내 성기에 뭐가 났다”, “독서실에서 오래 앉아 있는 여자애들은 엉덩이가 안 예쁘다. 피아노 치는 여자들 엉덩이가 크다. (강 피디에게) 조심하라” 등과 같은 성희롱 발언을 반복했다.

사내엔 성희롱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이아무개 전 본부장은 2016년 8월 직원 채팅방에 나체 여성이 물을 끼얹는 영상을 올린 뒤 “친구가 보내준 것을 잘못 올렸다. 아무튼 시원한 여름 보내는 데 보탬이 되시길”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정아무개 경영국장은 이에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술자리에서 소위 ‘중요한 사람’ 옆에는 당연한 것처럼 젊은 여성 직원이 앉아야 했다.

한겨레

<전남시비에스> 이아무개 본부장이 채팅방에 올린 여성 나체 영상. 강민주 피디 제공


강 피디는 “(이런 발언을) 문제 삼으면 (윤 국장은) ‘분위기를 못 맞춘다’, ‘예민하게 군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규직 안 되고 싶냐’며 웃음을 강요하거나 ‘널 언제든 자를 수 있다’고 자주 말했다”고 전했다. 이런 일은 나이가 어린 여성 직원, 특히 수습직원이나 계약직 같은 신분이 불안정한 직원들 앞에서 일어났다고 했다.



저한테 ‘항상 불만이 많다’ , ‘분위기 깨는 말 한다’든지 그랬어요. 자신이 첫사랑과 잔 이야기를 여직원들 셋 앉아있는데서 했죠. 수습인 저 , 계약직인 총무팀 , 프리랜서인 아나운서 앞에서 해요 . 회사 내 약자 중의 약자 앞에서만 하는 거예요 . 빙글빙글 웃으면서 표정을 살펴보고 ‘(강 피디에게) 야, ㅇㅇㅇ 너 표정이 안좋다?’ 이런 식이죠 . ‘너는 회사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야. 넌 내일 아침에도 내가 자를 수 있어’라고 말해요 . 다른 사람들이 억지로 웃는 걸 즐기는 것 같아요. 나이 어리고 신분 불안정한 여직원들 상대로 일어나요.

-강민주 피디

회사는 강 피디의 해고에 대해 “채용 부적격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정규직원 발령을 받지 못했다”고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밝혔다. 하지만 강 피디의 업무 태도에 대한 평가자는 성희롱 발언을 한 윤 국장이었다. 윤 국장은 강 피디에게 “공동체성이나 태도, 품성면에서 상당히 문제가 있음” 등의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강 피디는 자신이 별도 교육 없이도 현업에 투입돼 방송사고를 내지 않고 일한 점, 섭외와 원고작성을 도맡은 점, 수습 신분임에도 생방송을 진행해온 점 등을 근거로 ”객관적인 인사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 피해자에게 화살이 돌아온다

강 피디는 해고통보를 받은 뒤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했다. <미디어오늘> 등에 강 피디 사례가 보도되자 본사의 감사가 결정됐다. 2016년 11월 감사가 진행됐다. 감사실은 본사에 인사권이 있는 이 본부장에게는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렸다. 반면 인사권이 <전남시비에스>에 있던 윤 국장에 대해선 “전남시비에스에서 징계를 하라”고 권고했다. 강 피디는 <전남시비에스>에 ‘진상조사’와 ‘복직’,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연 <전남시비에스>는 ‘공개사과를 거부한다’는 결과를 통보했다.



본사에서도 강민주씨가 공개사과를 원하고 있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하고 있으며 전남 CBS도 공개사과가 조건이라면 복직문제는 물론 모든 문제에 대한 논의를 완전 철회하고 명예훼손은 물론 모든 법적 대응을 강구할 예정입니다. 강민주씨가 진정 복직을 원한다고 한다면 공개사과를 통한 당사자들에 대한 감정소모가 우선이 아니라 여겨지며, 복직 이후의 회사생활과 관련한 진지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것이 먼저라고 여겨집니다. 귀하께서 복직을 원하신다면 (중략) 한순간의 감정으로 인하여 모두에게 불화만 남기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2016년 12월 9일, <전남시비에스> 운영이사회 비상대책위원장이 강민주 피디에게 보낸 통보

2017년 3월, <전남시비에스>의 이사 조아무개 목사는 강 피디에게 ‘약정서’를 건넨다. 조 목사는 강 피디의 복직 여부를 두고 인사위의 전권을 위임받은 ‘전권위원장’이었다. 약정서에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부적격 판정’을 취소하는 대신, 문제제기가 채용부적합 통보에 대한 반발로 이뤄진 점이라는 것, 그리고 가해자가 입은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강 피디가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심지어 약정서에 추가할 내용을 이후 노무사를 통해 문자메시지로 통보했는데, 그 문자엔 “강 피디가 과장, 왜곡해서 문제제기했다”고 명시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강민주 수습은 CBS본사 감사실의 조사를 받을 당시 이아무개 본부장이 실수로 올린(앗 실수! 친구에게 보낸다는 것이 그만...) 단체 카톡에 올린 동영상으로 인하여 성적수치심을 느꼈다고 진술 했으나 본인이 실수로 올렸다고 했었고, 그래서 당시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뒤 채용부적합 통보에 따른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문제 제기를 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이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된 이아무개 본부장의 신상에 문제가 생기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향후 이아무개 본부장이 징계로 인해 입은 피해를 최소화 하는데 적극 노력하기로 한다.

-2017년 3월 29일, <전남시비에스> 인사위원회 전권위원장 조아무개 목사가 강민주 피디에게 보낸 약정서



한겨레

강민주 피디가 노무사를 통해 전달받은 회사쪽 ‘약정서’ 조항


강 피디는 자신이 문제제기를 할 때마다 돌아온 다른 선배의 말이 또다른 화살이 됐다고 털어놨다. 개중엔 여자 선배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는 늘 이렇게 가족처럼 살았는데 (넌) 왜 그러냐”, “나는 더 심한 일도 참고 10년 넘게 살고 있다. 너는 왜 혼자 잘났다고 그렇게 하느냐”라고 했다. 강 피디는 “그런 사람들이 나중엔 가해자가 됐다”고 했다.

싸움을 이어가는 동안 주변에서 비슷한 말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모두가 나무라는 건 아니었다. 진심으로 강 피디를 걱정해주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끝내 그 말도 상처가 됐다.



‘그렇게 해서 너가 얻는게 뭐냐. 그렇게 하기엔 너가 너무 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겠냐. 너 경력단절 되면 어떻게 할래? 너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지 알지. 너 이렇게 해서 어디서 널 써주겠어’란 말들을 했어요. 주식투자라고 보면, 이쯤에서 손절매를 하고 나오란 거잖아요. 그냥 조용히 묻고 가야 이 바닥에서 매장이 안 된다는 건데 그렇게 하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거잖아요.

-강민주 피디



■ 회사는 회유하고, 가해자는 고소한다

강 피디는 첫번째 복직 투쟁 과정에서 <전남시비에스> 이사인 조 목사로부터 금전 회유와 협박도 받았다고 주장했다. 2016년 12월28일 조 목사는 강 피디를 만나 “(본부장, 보도국장을) 네가 다 죽였다”, “네가 들어와서 일하겠어? 우린 또 (너를) 잘라”, “금전적인 보상으로 끝내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의 대화 녹취록을 보면, 시종일관 ‘피해자 때문에’ 가해자가 징계를 받게 됐다고 조 목사가 주장하는 내용이 나온다.



“내가 민주 말처럼 복직도 생각했었어. 근데 본부장 징계 재심도 끝나버렸잖아. 평직원 돼 버렸어. 이렇게 일파만파 해놓고 (강 피디는) 복직이 안 되지.”

“전부 니가 다 죽여놓고..복직이 되면 해줘야할 건 해줘야할 거 아니냐. 본부장 살려줘야 될 거 아니야. 윤 국장이 자치국이 아니면 딴 데 발령내면 되는데 그게 안 돼. 그리고 윤 국장은 지금 변호사를 사서 명예훼손을 준비하고 있지.”

-2016년 12월 18일, <전남시비에스> 이사 조 목사와 강민주 피디 대화 녹취록

조 목사는 1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당사자들은 성희롱을) 인정 안했다. (강 피디) 본인이 채용됐으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채용이 안됐으니까 그런 거다. 잘못하면 탈락되겠구나 싶으니까 그때부터 (강 피디가) 녹취를 한 것”이라고 문제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렸다. 조 목사는 “강 피디를 회유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회유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그 아가씨가 그렇게 못됐다. 말을 (그렇게 한다)”고 강 피디를 비난했다.

어김없이, 가해자의 명예훼손 고소도 이어졌다. 윤 국장은 2017년 2월21일 강 피디와 그의 해고를 보도한 <미디어오늘> 기자를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강 피디는 4월18일, 해당 기자는 8월3일 각각 ‘혐의없음’으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 피해자는 나온다. 가해자는 남는다.

강민주 피디는 2017년 11월23일자로 또다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두 번째 해고다. <전남시비에스> 쪽은 “계약기간 만료에 따라 근로 관계를 종료했다”고 밝혔다. 강 피디는 “회사 단체협약 등에 따르면 정규직으로 채용돼야 한다. 모든 직원이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고용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부당해고”라며 “실제로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 본사 노조로부터 ‘모든 직원들이 연봉계약 서류를 쓰고 있다. 정규직이라고 생각하라’란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기간제 계약직이었다면 서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첫 해고 뒤 전남지방노동위원회의 판결로 복직했을 당시 화해조서에도 강 피디를 ‘정규직으로 다시 채용한다’는 조항이 담겨있다.

한겨레

전남지방노동위원회의 화해조서


가해자인 윤 국장은 2017년 6월 감봉 3개월 처분을 받았다. 본사의 징계권고 6개월만이었다. 두세달 뒤 ‘특임국장’이라는 자리로 이동했다. 조 목사는 “특임국장은 아무 보직이 없다. 보도국장에서 좌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남시비에스>가 15명 가량의 소규모 조직인데다 윤 국장이 국장급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업무분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징계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앞서 서울여성노동자회는 지난해 7월 국회에서 열린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보호 및 실효성 강화를 위한 법 개정 토론회’에서 ”성희롱의 경중을 불문하고 성희롱 행위자가 퇴사를 하거나 확실한 업무적 분리가 되지 않는 이상 피해자 대다수는 계속 근로의 어려움을 겪게 되고, 퇴사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1월 개정돼 올해 5월부터 시행 예정인 ‘남녀고용평등법’도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에는 피해 근로자가 요청하면 근무장소의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윤 국장에 대한 징계가 좀 더 명확하게 이뤄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비에스> 노조도 이를 문제삼는다. 이진성 노조위원장은 “(윤 국장과 강 피디를) 업무 층을 분리했다고 하지만 (윤 국장이 계속) 간부직급에 있는 게 문제”라며 “<전남시비에스> 쪽에서 강 피디가 제대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강 피디에 대한) 보복인사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직장내 성희롱, 좋은 선례를 만들고 싶다”

강 피디는 변호사의 법률자문도, 노무사의 자문도 비교적 빨리 받았다. 녹취 자료를 그나마 남길 수 있던 것도 자문의 덕이 컸다. 끊임없이 자료를 만들었고 법적으로 검토했다. 그렇다고 그 과정이 쉬운 건 아니었다. 녹취 자료를 풀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다시 들여다보기 싫은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내서 정리해야만 했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으로 상담치료도 받기 시작했다. 해가 두 번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저는 솔직히 이런 일들하고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겪으면서 보니까, 가해자와 사쪽은 시간을 질질 끌면서 피해자가 지쳐 나가 떨어지게 만드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꼭 남성 대 여성의 문제라고만 볼 순 없어요. 이건 강자와 약자의 문제, ‘갑을 관계’예요. 피해 입는 사람들은 꼭 조직 내에서 약자거든요. 가해자는 늘 회사에서 가장 약한 사람을 골라요. 고용관계 때문에 문제제기 못 할 만한 사람들을 골라서 그런 일을 해요. 이 일을 겪어오면서 다른 언론사, 다른 업계 이야기도 직접 들었어요.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회사에서도) 늘 겪어왔던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도 문제제기를 안하는 거예요. 왜 안할까 생각해봤는데 선례가 없는 것 같아요. 만약 제가 조금 더 나은 선례를 남긴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 선례를 보고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저보다) 앞선 다른 사례를 보면서 용기를 얻거든요. 서지현 검사나 르노삼성 사례처럼요. (지난해 12월 22일 대법원은 ‘르노삼성 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견책처분, 직무정지, 대기발령을 한 것은 위법한 조치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피해자를 도운 직원에 대한 정직처분도 사업주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이 일을 겪으면서 비슷한 일을 당했던 조연출, 작가, 프리랜서 아나운서한테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 해결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 단계까지 갔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저보다 훨씬 심한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프리랜서나 계약직이요. 피해자들의 이야기 들어보면, 제가 운이 좋았다고 하는 사람도 많아요. 성희롱 문제제기 후 해고 위협을 느끼자마자 대응도 빨리 했고, 녹취록도 있고, 초반부터 자문을 구했죠. 제가 준비한 걸 듣고 ‘저렇게까지는 못하겠다’, ‘도움 줄 사람도 없다’ 이러면서 포기한 분도 있어요.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자료를 모아야 하는데 그게 엄두가 안나서 시작도 못하는 사람도 있고요. 제게 ‘운이 좋으시네요’ 말씀하시는 분들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 등 다양한 선례가 많다면, 피해자들이 그 사례를 보면서 도움을 받지 않을까요? 제 기사 보고도 그 분들이 위로를 받거나 조금이라도 힘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강민주 피디



■ “피해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성희롱은 행위자의 잘못이지 피해자 탓이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겪은 피해자와 고용노동부, 변호사, 노무사 등 전문가들의 조언을 종합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을 위한 ‘실전 매뉴얼’을 정리했다. 고용노동부 누리집을 통해 자세한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 [카드뉴스]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대응 매뉴얼, 근로자용)

한겨레

고용노동부 ‘직장 내 성희롱 업무 매뉴얼’ 갈무리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성희롱은 가부장적, 권위주의적, 성차별적 조직문화나 왜곡된 직장 권력관계 속에서 발생한 행위자의 불법행위일 뿐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성희롱 뿐만 아니라 성희롱인지 여부가 애매한 언행에 대하도 불쾌감을 느낀다면 문제제기를 해야한다.

△성희롱은 인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법적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문제해결을 위해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

△자신의 속한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대처한 선례를 검토한다.

△직장 내 성희롱의 특성상, 성희롱 행위자체가 당사자 간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해자가 부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피해자는 반드시 증거수집을 해야 한다.

△녹음도 좋다. 당사자 간의 녹음은 상대방의 허락을 맡지 않아도 불법이 아니다. 성희롱 상황자체가 담겨있는 녹음도 좋지만, 성희롱 후에 상대방에게 사과를 요구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자인하는 내용도 좋다.

-외부기관을 통한 해결방안은 어떤 것이 있는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성차별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

△지방고용노동관서 진정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직장 내 성희롱 문제제기로 부당한 해고나 정직 등 징계를 받은 경우, 조치가 있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신청해야 한다.

△민형사상 소송-시간과 비용이 든다. 범죄사실을 확실히 입증할 물증이 있으면 좋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 등으로부터 대응방법, 심리상담, 법적자문을 받을 수 있다.

△일단 노무사,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상담과 조언을 받고 필요한 서류 등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률 자문을 받는 일을 두려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은 비용이나 무료로도 법률 자문을 구할 곳이 많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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