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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박수찬의 軍] "날쌘 군대 만든다"는 국방부가 걱정스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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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만 거대하고 행동은 느린 공룡 같은 군대를 표범처럼 날쌘 군으로 바꾸겠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기존의 예산과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문재인정부의 국방개혁 2.0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등장하는 말이다. 기존에 추진됐던 국방개혁과 군사전략을 ‘구(舊)시대 유물’로 간주하고 인구절벽 시대에 맞게 군 구조를 슬림화하면서 북한 도발 시 ‘최단시간 내 최소희생’으로 승리를 얻겠다는 게 국방개혁 2.0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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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지대공미사일 천마가 공병대가 가설한 부교를 건너고 있다. 육군 제공


일각에서는 “날쌘 군대를 만들겠다”는 국방부의 개혁 방침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전쟁을 앞두고 수립된 계획이 실제 전쟁에서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던 사례가 많았다는 점에서 국방개혁 2.0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는 더욱 크다.

◆마음만 앞선 신(新)작전개념

국방개혁 2.0 핵심인 신(新)작전수행개념에서는 신속한 작전을 수행할 공정부대, 전략기동부대 편성이 포함되어 있다.

항공기를 이용해 전투지역으로 이동, 지상전을 실시하는 공정부대는 적지 후방으로 침투해 특정 지역을 공격해 점령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수송기를 이용하는 미국 육군 82공수사단이나 헬기로 적지에 강하하는 101공정사단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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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CH-47 수송헬기가 한국 육군 장병들을 태우고 공중강습작전 훈련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육군 제공


문제는 수송기나 헬기를 이용한 공정작전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군이 보유한 수송기는 C-130 16대, CN-235 20대다. 전투장비운송을 수송기에 의존하는 공정부대에게는 중소형 수송기보다 C-17같은 대형 수송기가 적합하다. 하지만 C-17 제작사인 미국 보잉사는 생산을 중단했다. 유럽 에어버스 A-400M이 있지만 C-17보다 적재량이 절반 가까이 적은 40t에 불과하다. C-130으로 눈을 돌려도 대량 추가 도입이 불가피하다. 최소한 조 단위 예산 소요가 새로 발생한다.

101공정사단처럼 헬기를 이용하는 공정부대를 만드는 것도 첩첩산중이다. 냉전 시절 101 공정사단은 중형 및 대형 수송헬기 약 200대와 공격헬기 70대, 정찰헬기 63대를 운영했다. 우리 육군은 AH-64E 공격헬기 36대, UH-60 수송헬기 130여대, CH-47 수송헬기 30여대를 운용중이고 수리온 수송헬기가 생산, 배치되고 있다. 육군이 보유한 헬기 전력을 모두 투입해도 공정부대 소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 한국형공격헬기(LAH)가 개발되어 실전배치된다 해도 수 조원을 투입해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헬기를 확보해야 한다.

적 후방에서 교전해야 하는 공정부대의 전투력과 생존능력 확보도 과제다. 러시아 공수부대는 기관포와 대전차미사일을 결합한 공수장갑차를 수송기로 투하, 화력이 부족한 공수부대를 지원한다. 반면 우리 군은 공정부대 화력지원에 필요한 지상장비가 거의 없다. 120㎜ 박격포나 소형 다연장로켓 등 수송기 탑재가 가능한 화력지원장비 소요 제기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공격헬기에 의한 화력 지원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 고사총,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기관포 등 헬기에 위협적인 보병 방공망은 사전 탐지가 어렵다. 실제로 이라크전쟁이 발발한 2003년 3월 24일 미국 육군 AH-64 공격헬기 31대가 이라크 내륙 지역 표적 타격을 위해 침투를 감행했으나 이라크군이 AK-47 소총을 포함한 개인화기와 휴대용 지대공미사일로 구성한 방공망에 걸려 1대가 추락하고 30대가 피해를 입은 채 실패한 전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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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장병들이 C-130 수송기에서 낙하해 목표 지점으로 강하하고 있다. 미국 태평양사령부 제공


전투기 공습이나 수송기에 의한 병력지원도 난제다. 지난달 이스라엘 공군 F-16이 시리아 정부군 SA-5 지대공미사일에 피격됐다. 이스라엘 공군은 적 방공망 탐지 및 교란 분야에서 미국 못지 않은 능력을 갖고 있었으나 구형 SA-5의 요격시도를 막지 못했다. SA-5는 북한도 보유하고 있는 무기다. 북한은 SA-5보다 향상된 S-300계열로 추정되는 신형 지대공미사일을 지난해 5월 시험발사했다.

반면 우리 군의 대비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008년 북한군이 신형 유도장치를 장착한 지대공 및 공대공 미사일을 실전배치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군 당국은 북한 미사일을 회피할 수 있는 신형 중적외선 섬광탄 개발을 결정했다. 전투기와 수송기, 헬기 엔진에서 나오는 적외선 파장을 추적하는 적 미사일 회피수단인 중적외선 섬광탄이 없으면 우리 군 항공기들은 휴전선조차 넘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전운용성능(ROC)을 충족하지 못해 개발이 늦어지다가 지난해 12월 개발사업을 중단하고 획득 방안을 재검토해 고속기용 및 저속기용 사업으로 분리해 재추진하기로 했다. 유사시 북한 내륙으로 침투할 항공기를 보호할 수단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공정부대 작전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자칫하면 2차 세계대전 사상 최악의 공정작전으로 불리는 마켓가든 작전이 한반도에서 재현될 수도 있다.

전략기동부대도 마찬가지다. 전차, 장갑차, 자주포 등 전투장비는 갖췄지만 예성강과 대동강 등 북한 내 주요 하천을 신속하게 건널 때 필요한 공병 차기전술교량, 자주도하장비는 여전히 도입되지 않는 등 지원전력 증강이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였던 1945년 8월 소련군 기갑군단이 만주 주둔 일본 관동군을 10여일만에 몰아내고 만주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부교와 임시 도로를 만들며 진격로를 개척했던 공병대의 희생에 힘입은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세작전이 가능할지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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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에 배치될 신형 차륜형장갑차가 시험주행을 실시하고 있다. 국방일보 제공


◆국방개혁 의도부터 되돌아봐야

국방개혁 2.0의 핵심인 공세적 종심기동작전에 대해 군에서 정책기획 업무를 맡았던 예비역 장군은 “군사전략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지휘관의 의도다. 지휘관이 어떻게 전략을 구상하는가에 따라 모든 요소가 뒤바뀐다. 국방개혁 2.0도 마찬가지다. 국방장관이 무엇을 의도하는가에 따라 군의 모든 분야가 바뀔 것이다”고 평했다.

송 장관의 의도는 ‘최단시간 내 승리’다. 신속하게 움직여 평양을 점령하고 북한 전쟁지도부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군 조직을 전투위주로 바꿔야 한다. 군수, 행정, 교육 등 비(非)전투 분야 장교와 부사관을 전투부대로 배치하고 이를 군무원 및 민간 근로자로 대체한다는 방침도 이같은 의도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의도가 군의 전투지원능력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군 교육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앞둔 시점에서 중요성이 더 커지는 분야다. 지금까지 군은 미군이 만든 한반도 전쟁전략을 활용해왔다. 하지만 전작권이 전환되면 우리 스스로 전쟁을 기획하고 군사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수십년 동안 전투에서 이기는 법만 익혔던 한국 군인들이 전쟁을 스스로 기획하는 방법을 알려면 교육이 필수다. 민간 영역에서는 소화할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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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7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판문점을 방문, JSA 대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군수 분야도 마찬가지다. 전투에 집중하기 위해 2000년대 민간업체에 군수를 위탁했던 미국 육군은 최근 자체 군수능력 확보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자 보급을 자체적으로 하지 않으면 전투에도 지장이 초래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반면 우리 군은 미군이 10여년 전에 적용했던 방식을 쓰려 하고 있다. 유행 지난 패션을 트렌드라고 생각하는 격이다.

군인들은 늘 “전쟁은 빨리 끝날 것”이라고 말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유럽의 군인들은 “낙엽이 지기 전에 전쟁은 끝난다”고 장담했다. 1940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할 때 히틀러도 “6주면 끝난다”고 말했다. 베트남전쟁과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전쟁들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어 수많은 전사자를 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전쟁을 지배하는 원칙이 머피의 법칙(일이 꼬이기만 하는 경우)이라는 점을 간과한 대가다.

“표범같이 날쌘 군대를 만든다”는 말은 원칙적으로는 옳다. 하지만 표범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피부 밑의 뼈가 튼튼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뼈가 부실한 표범이 제대로 뛰지 못하는 것처럼 군을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려면 군 구조가 튼튼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냉철한 현실인식과 전략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거대하고 느린 공룡 같은 군을 골다공증 걸린 표범 같은 군으로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맹수들이 병든 표범을 무서워할 리 있겠는가. 조만간 공개될 국방개혁 2.0이 우리 군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주목해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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