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마추픽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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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만고 끝에 그곳에 찾아간다 해도, 만약 내가 찾는 바로 그것이 없다면? 내가 여행을 떠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다.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떠날 때도 많지만, 아무리 짧은 여행도 ‘나는 지금 목마르게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내 안의 간절함에 화답해주곤 했기 때문이다. 뭔가 절실한 질문을 품어 안고 떠날 때, 여행은 더 아름다운 대답으로 내 삶을 밝혀주었다.
그런데 이번 남미 여행은 내가 뭘 질문하는지도 몰랐다. 뭔가가 미친 듯이 궁금한데, 그 궁금증엔 구체적인 타깃이 없었다. 유럽과 미국, 아시아를 향한 여행에는 ‘내가 원래 알고 있는 것들’이라는 기준점이 많았지만, 남미에 대해서는 바로 그런 앎의 베이스캠프가 턱없이 부족했기에. 그런데도 마추픽추는 늘 내 마음속의 여행지 1호였다.
이제야 떠나는 이유는 ‘내가 찾는 바로 그것이 없다면, 어떡하지’ 하는 의구심 또한 가장 큰 장소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뭘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타오르는 신비의 장소, 그곳이 내게는 페루의 마추픽추였다.
나는 내 마음속에 남미 여행의 고정된 이미지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10여년 만에 체 게바라의 남미 여행 이야기를 담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다시 보다가 퍼뜩 깨달았다. 내 무의식 깊은 곳에 체 게바라의 요절복통 남미 여행의 해맑은 판타지가 자리 잡고 있었음을. 돈도 없고 비전도 없지만 그저 눈부신 젊음 하나로 무장한 두 청년이 낡은 오토바이 한 대에 의지해 떠나는 남미대륙 여행의 소박하면서도 순수한 기억이 내 무의식 어딘가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칠레의 파타고니아를 거쳐 안데스산맥을 따라 북으로 6000㎞를 올라가서 마추픽추까지, 나아가 베네수엘라 과히라 반도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오직 기름이 줄줄 새고 걸핏하면 멈추는 오토바이에 의지해 다녀온 두 청년의 여행 이야기를 보니, 내 그리움의 정체가 조금씩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천식을 앓고 있었고 아직은 혁명가가 아닌 풋내기 의대생이었던 체 게바라에게 남미 여행은 문명으로부터 떠나 흙냄새 가득한 자연과 가까워지는 일이었고, 알 수 없는 모험의 세계로 인생을 던지는 일이었다. 온갖 파란만장한 모험 끝에 남미 여행을 마치면서 체 게바라는 비로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는다. 우리의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온갖 여행의 버킷리스트 속에도 바로 그런 ‘내 삶의 밑그림, 혹은 내 삶의 여정을 그린 지도’를 찾는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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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와 친구가 떠난 무전여행에 비하면 우리의 여행은 매우 빠르고 간편해졌지만,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난했다. 인천에서 토론토로, 토론토에서 멕시코시티로, 멕시코시티를 여행한 뒤 칸쿤의 해변과 치첸이샤의 마야유적을 관람한 뒤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하고 나서도, 우여곡절 끝에 거의 사흘 만에 마추픽추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길이 워낙 멀고 복잡해서, 바로 며칠 전 보았던 멕시코의 온갖 놀라운 풍경조차 가물가물해질 지경이었다. 마추픽추의 관문 쿠스코에서는 우려했던 고산병이 찾아와 밤새 엄청난 두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내일은 마추픽추를 볼 수 있다는 설렘과 희망으로 버텼다.
쿠스코의 다정한 원주민들과 놀라운 건축물들이 여행자를 반겨주었고, 고산병과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되는 코카잎으로 만든 코카차의 쌉싸름한 맛도 잊을 수 없으며, 한 알이 엄지손톱만큼 커다란 페루의 옥수수, 감자의 원산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놀랍도록 다채로운 감자요리 등 모든 것이 신기했다. 쿠스코에 도착한 순간 가장 압도적인 풍경은 그야말로 면도칼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이 완벽하게 짜맞춰진 거리의 석벽과 돌길이었다. 성당을 비롯하여 규모가 큰 건축물에는 정복자 스페인의 취향과 건축술이 다분히 느껴지지만, 수백t의 암석으로 만들어진 석벽과 돌길은 스페인 군대의 총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잉카문명의 위대함을 증언하는 듯했다.
스페인 침략자들은 잉카문명의 도시들을 약탈할 때 본래의 건축물 상부를 허물고 그 위에 스페인식 건물을 짓곤 했는데, 쿠스코의 산토도밍고 성당 또한 그런 방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잉카문명의 위대함은 지진이 일어났을 때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 쿠스코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스페인 정복자들이 지은 성당은 처참하게 무너져버렸지만 신전의 토대인 석벽은 전혀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종이 한 장 끼워 넣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이음새를 자랑하는 잉카의 건축술이 가장 찬란하게 보존되어 있는 곳이 바로 마추픽추다.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항상 구름으로 가려져 있어 ‘공중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마추픽추는 스페인의 총칼과 화약을 구사일생으로 피할 수 있었다. 스페인의 침략이 없었더라면 리마나 다른 도시들도 마추픽추 못지않은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미국인 청년 하이램 빙엄이 원주민 소년의 도움으로 마추픽추를 발견한 이후, 이 신비로운 공중도시에 대한 무수한 논쟁이 이어졌지만 아직도 도시의 정확한 쓰임새는 알 수가 없다.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과 우르밤바 계곡의 변화무쌍한 물길을 실컷 보고 난 뒤 드디어 마추픽추의 위용이 드러나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구름에 반쯤 가려진 마추픽추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장엄하고도 쓸쓸해 보였다. 전 세계에서 찾아온 여행자들의 온갖 수런거림이, 마추픽추가 보이기 시작한 바로 그 지점에서 뚝 끊겨버렸다. ‘내가 찾는 그것이 이곳에 없으면 어쩌지’하는 부질없는 걱정은 그 순간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어떤 장소에서든 반드시 뭔가 ‘의미’를 찾으려는 마음의 병이 나를 괜스레 괴롭혔던 것이다. 유럽의 수많은 건축물들처럼 그 의미가 이미 충분히 해석되어 있는 곳에서는 마음이 놓였던 것이다. 수많은 학자들이 이미 그 장소의 의미를 해독해 놓은 곳에서는, 앞서간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의미의 오솔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마추픽추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의미 자체가 해독되지 않는 곳이기에, 붙잡고 따라갈 만한 의미의 이정표가 없었다.
하지만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의 위용이 마음을 사로잡는 순간, 아무 생각도 필요 없었다. 모든 장소에서 역사적 의미를 찾으려는 오랜 집착으로부터 비로소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그곳이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고맙고, 눈부시고, 행복했기에. 전혜린이 사랑했던 독일어 단어, 페른베(Fernweh·먼 곳을 향한 그리움)처럼, 마추픽추도 먼 곳을 향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의 갈증이 얼마나 강렬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곳을 미친 듯이 그리워하는 감정,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마추픽추를 동경하는 모든 이들의 집단무의식에 자리 잡은 페른베가 아닐까.
마추픽추와 함께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은 계단식 경작지로 유명한 모라이 유적지다. 계단식 경작지의 높이별로 서로 다른 농산물을 재배할 수 있는 모라이는 단지 농업의 장소가 아니라 철학의 장소로 다가왔다. 오랫동안 주저앉아서 무엇이 목적인지도 모르는 생각에 빠져들고 싶은 신비로운 매력을 뿜어내기에.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에서 가장 독창적인 요리를 선보였던 페루의 요리사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는 모라이에서 페루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었다고 한다. 그는 세상을 수평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 즉 평평한 지도를 펼쳐놓고 도시별로 장소의 이미지를 인식하는 방법으로는 페루를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안데스 산맥은 물론 이카 사막을 비롯하여 다양한 지형이 존재하는 페루는 ‘고도별’로 다른 생태계 변화를 보인다. 그는 페루를 수평적 관점이 아닌 수직적 관점으로 보여주는 다채로운 요리를 선보인다. 해발 4000m에서 나온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먹으면서 안데스 산맥의 변화무쌍함을 느끼고, 바다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험난한 계곡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아마조니아를 가로지를 수도 있는 그런 요리들. 그것은 다채로운 고도 속에서 변화무쌍하게 생존해온 페루아노(페루인)의 영혼을 담고자 하는 노력이다.
마추픽추는 우리 문명에는 없고 잉카에는 있는 것, 현대문명에는 없고 고대문명에는 있는 그 무언가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일 재발견되고 있다. 스페인의 총칼은 잉카의 정신을 말살하려 했지만, 잉카의 문명은 여전히 정복되지도 해석되지도 않은 아름다움으로 그 총칼에 멋지게 복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스페인 사람들이 말살하려 했던 바로 그 문명은 이제 전 인류의 신비로 살아남아 이토록 아름다운 복수의 향기를 온 인류에게 선물처럼 전해주고 있다. 마추픽추와 모라이를 거쳐 다시 쿠스코로 돌아오며 나는 굼베이 댄스 밴드의 ‘엘도라도’를 들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죽였지요. 그들은 오직 총으로만 말을 했어요. 용감한 남자들은 쇠사슬에 묶이고 모든 젊은 엄마들은 노예로 팔려 갔지요. 아기들은 밤새 울어댔어요. 그 아기들이 빛을 볼 수 있을까요? 엘도라도의 황금의 꿈들은 고통과 피의 바다에 모조리 잠겨 버렸어요. (…) 힘과 권력에만 굶주려 있는 자들에게 에덴의 문은 늘 닫혀 있을 거예요. 진정한 엘도라도는 다이아몬드와 금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니까요.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평화와 사랑, 이해를 향한 꺼지지 않는 갈망이에요.”
마추픽추를 향한 우리의 그리움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총칼과 권력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평화와 사랑, 이해와 존중을 향한 멈출 수 없는 갈망. 그것이 어떤 멋진 ‘의미’로도 포섭되지 않는 마추픽추의 영원한 아름다움이다.
<정여울 작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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