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1 (월)

시간은 느긋했다…미황사에서의 하룻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난 겨울,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란 이름의 전시에는 30여 명의 작가들이 미황사에서 머문 추억을 각자의 방법으로 캔버스 위에 풀어놓았다. 작가들은 미황사의 달, 동백, 달마산, 고양이 등 사찰과 주변의 자연을 멋지게 표현했다. 특히 동백이 그러했다. 마침 TV에서는 네덜란드의 젊은 뮤지션 3명이 혜민스님과 방을 바꿔서 생활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는데, 그 장소가 바로 미황사였다. 동백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미황사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시티라이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Info 해남 미황사 템플스테이와 1913송정시장 구경 코스 수서-SRT-광주송정역-송정떡갈비1호점-미황사-1913송정역시장-광주송정역-SRT-수서

남도에서 매일매일 꽃 소식이 올라오면서 맘이 들썩거리다가 미황사 템플스테이를 생각해냈다. 미황사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예약을 했다. 1인당 5만 원. 입금 완료 문자를 받고, 교통편을 알아봤다. 서울에서 미황사까지 자동차로 5~7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7시간이었다. 기차-시외버스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둘이 가니 비용면에서는 차를 갖고 가는 게 나았으나 하룻밤을 위해 왕복 10시간 운전은 좀 망설여졌다. 올라오는 길에 광주 송정시장도 구경할 겸 SRT를 타고 광주 송정역으로 가서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SRT로 2시간, 승용차로 2시간, 도합 4시간이니 가장 나은 방법이었다.

▶SRT로 광주떡갈비골목까지

시티라이프

출발을 기다리는 SRT. 서울과 광주 송정역 사이를 운행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침 8시30분, 수서에서 SRT를 타고 광주 송정역에 도착하니 시간은 10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역을 나서서 왼쪽으로 400m쯤 걸어가자 유명한 송정리 향토 떡갈비 골목이 나왔다. 절에 가는 길에 갈비 집을 들르는 게 좀 맘에 걸렸지만 이 지역에서 유명한 음식이라니 먹어봐야 할 것 같다는 욕심이 죄송함을 눌렀다. 10여 개의 떡갈비 식당들이 즐비한 곳에서 1976년부터 떡갈비를 했다는 송정떡갈비1호점을 골라 들어갔다.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들이 두어 팀 있었다. 우린 떡갈비와 육회비빔밥을 주문했다. 큼지막한 갈비가 들어있는 갈비탕이 먼저 나오고 남도답게 쌈채소와 함께 반찬이 즐비하게 깔렸다. 신용카드보다 살짝 큰 떡갈비 2개가 1인분. 국내산 한우로 만드는 한우떡갈비와 달리 그냥 떡갈비는 국내산 한우와 돈육을 섞어 만든다. 떡갈비는 기대만큼 두툼하지는 않았지만 찰지고 쫀득한 질감이 살아 있었고, 불맛도 살짝, 양념도 적당했다. 싱싱한 육회와 야채가 넉넉히 올라간 육회비빔밥에는 날계란이 있어 보기에도 예쁘고 비벼 놓으니 맛을 더 돋워주었다.

시티라이프

 1976년부터 떡갈비를 만들어 판 송정떡갈비1호점은 큼직한 갈빗대를 넣어주는 갈비탕과 푸짐한 쌈채소 그리고 떡갈비가 대표메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Info (송정떡갈비1호점) 주소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로 29번길 1 메뉴 한우떡갈비 2만2000원, 떡갈비 1만3000원, 육회비빔밥 8000원 시간 오전 9시~오후 10시 *일요일 휴무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 템플스테이

시티라이프

달마산이 병풍처럼 둘러선 미황사의 대웅보전 안에서 불교 사찰에 대한 설명을 듣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황사는 조용했다. 일주문을 지나 양옆으로 동백나무가 도열한 계단을 오르니 웅장한 달마산을 병풍처럼 두른 대웅보전이 눈앞에 나타났다. 부처를 세 분 모시고 있는 곳이라 대웅보전이라 부른다. 달마산은 해발 489m로 높지는 않지만 큰바람재에서 몰고리재까지 거의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어 마치 남녘의 울산바위를 보는 듯한 위용을 느낄 수 있다. 남도의 금강산이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되어 1000년 동안 풍화를 겪으며 단청은 다 씻겨 나갔고, 그 모습 그대로 단청을 칠하지 않아 오래된 나무 기둥마다 시간의 흔적이 배여 있었다. 대웅보전 자체만으로 검박한 아름다움이 우러났다.

템플스테이는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점심 공양까지다. 머무는 동안 입을 간편한 옷을 받아 청운당의 방으로 들어가니 이부자리 두 채와 작은 장이 전부였다. 스님들의 무소유 일상이 와 닿았다. 사찰에서의 생활에 대한 간단한 교육을 받고, 절 안팎을 산책했다. 휴식형 템플스테이라서 충분히 쉴 수 있도록 여유 시간이 많았다. 듣던 대로 동백, 매화, 목련, 수선화 등이 사찰 곳곳에 만발해 있었다. 어쩌면 대웅보전에 단청이 없어 주변의 꽃들이 더 화려하게 보이는 것일 수도. 미황사 창건 설화에는 인도에서 도착한 배에서 1만 권의 책을 소에 실어 오다가 소가 넘어진 곳에 지은 절이란 이야기가 있다. 한 예술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미황사의 곳곳에 박혀 있는 돌에 검은 소를 그려 넣었다. 여러 해 동안 미황사에서 살았던 고양이도 그렸다. 덕분에 경내를 산책하며 소와 고양이 그림을 찾는 재미까지 누린다.

서울에서는 쪼개도 쪼개도 모자라던 시간이 절에서는 멈춘 듯 느긋하니 천천히 갔다. 주지스님인 금강스님이 모아놓은 책 중 한두 권을 꺼내 독서를 하다가 달마선다원에 가서 간식으로 단팥죽을 주문했다. 6000원인데 통단팥이 적당히 달달하고 팥향이 진하다. 녹차 한 잔 곁들이니 여행의 피곤함이 쑤욱 가라앉는다. 유명한 미황사의 일몰을 보러 계단참에 앉으니 멀리 바다 위에 떠 있는 해가 구름 사이로 슬쩍 숨어 버렸다. 날씨가 도와줘야 머릿속에 있는 일몰을 볼 수 있다. 좀더 정진해야겠다.

공양간에서 저녁 공양을 했다. 뷔페스타일로 밥과 국, 반찬이 6~7가지 있어 식성대로 먹을 만큼 덜어먹고, 접시는 깨끗이 비워야 했다. 발우를 사용하진 않았는데 외국인들도 많아 이게 더 편하겠다 싶었다. 7시쯤 범종각에 모여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타종 체험을 하고, 저녁 예불을 올렸다. 미리 배운 대로 삼보(부처님, 법, 스님)에 대한 예절을 의미하는 큰절(오체투지)을 세 번 하고, 예불을 올렸다. ‘오분향례’, ‘헌향진언’,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등을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예불이 끝났다.

시티라이프

참가자들과 다담을 나누는 보림스님, 미황사 찻집, 달마선다원에서 맛볼 수 있는 단팥죽.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예불 후에 합장하고 대웅보전 앞마당을 한 바퀴 돌고 나니 다담이 시작되었다. 스님이 만들어주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외국 젊은이들이 많아 ‘부다(부처, 깨친사람)가 뭐냐?’는 원론적 질문부터 ‘행복의 의미’를 묻는 질문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밤 10시가 되자 모두 불을 끄고, 일순간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3월말인데도 산 위에 위치한 절이라 추웠지만, 일찌감치 보일러를 켜놓아서 방은 따뜻했다.

시티라이프

울력 시간에 머위 잎을 따는 참가자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밤새 숲에서 바람이 불었다. 비가 오나 싶을 정도로 크게 들리던 바람 소리는 새벽이 되자 새소리로 바뀌었다. 자연의 깨어남을 그대로 맞은 아침이다. 새벽 4시 반이 되자 목탁소리와 함께 스님이 절을 한 바퀴 돌고 5시에 종이 울리자 새벽 예불이 시작되었다. 아침 공양 후에는 울력을 했다. 스님들이 절에서 생활하면서 하는 일들로 청소와 식재료 준비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날은 뒤쪽 언덕에서 머위잎을 따는 울력을 했다. 주말에 산사음악회에 오실 손님들을 위해 머위꽃튀김을 할 것이라기에 열심히 머위꽃을 땄다.

다른 이들은 왕복 서너 시간 걸리는 달마산 정상을 위해 등산을 가거나 절에 머물며 쉬었다. 우리는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대숲삼거리까지의 산책을 택했다. 부도전을 구경하고 대숲삼거리에 오르니 날은 흐려도 발밑에 다도해가 펼쳐졌다. 점심 공양 후 템플스테이 일정은 끝나서 방을 정리하고 옷을 반납한 후 절을 나섰다. 만 하루의 휴식과 적당한 산책은 몸속에 쌓여 있던 피로를 많이 녹여주었는지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광주송정역의 제2대합실, 1913 송정역시장

시티라이프

 송정역전매일시장이 현대적인 1913 송정역시장으로 바뀌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광주에 도착하니 SRT 예약시간이 두 시간쯤 남아서 광주 송정역 바로 앞의 ‘1913 송정역시장’에 들렀다. 송정역전 매일시장을 광주시와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카드가 함께 리뉴얼한 그곳이다. 1913년부터 광주 송정역과 함께 서민들의 애환이 어우러진 전통시장이었는데 대형마트의 성장에 밀려 쇠퇴해가던 곳을 ‘시간’이란 키워드를 주제로 수정, 보완해서 새롭게 단장한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국수공장, 목욕탕, 미용실, 방앗간, 닭집, 쌀집, 슈퍼가 있던 시장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기존 점포 앞바닥에 건물 건립연도를 표시한 연도석을 깔고, 점포의 역사를 담은 스토리보드, 점포명과 장사 시작연도를 표시한 히스토리 월(History Wall)을 새겼다.

60년이 넘도록 제자리를 지킨 터줏대감 우량제분소, 40년 단골들이 드나드는 매일제분소, 30년 레시피의 통닭을 만드는 매일닭집, 진짜배기 영광굴비를 만날 수 있는 직판장 영광굴비, 고흥 태생 할아버지의 자연발효 홍어집 고흥상회, 50년 장인의 국물 현대국밥, 각양각색의 생활용품을 파는 영광상회 등이 대표적인 곳이다.

시티라이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전통 음식을 새롭게 접근한 청년 상인들을 영입해 시장에 젊은 기운을 불어 넣었다. 수제양갱가게인 갱소년, 바삭한 부각을 대표상품으로 한 느린먹거리by김부각, 수제떡갈비꼬치집인 완순이, 우리밀 반죽을 저온숙성해 만든 쑥’s 초코파이, 줄 서서 사먹는 식빵가게 또아식빵, 하트모양 젤라또전문점 아이스깨끼, 세계라면가게인 한끼라면, 수제맥주 브류펍 밀밭양조장, 우리밀로 만든 수제 고로케 집 고로케삼촌, 독일식 족발과 소시지를 만나는 족발쏘시지 등은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서 예쁜 사진과 해시태그로 올라 전국에서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유명 맛집들이 되었다.

맛집들 사이사이에는 한국의 사투리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디자인숍 역서사소, 인생을 테마로 한 큐레이션 동네서점인 인생가게, 흑백사진 스튜디오 서봄사진관 등 아이디어와 디자인 감각이 좋은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다.

시티라이프

만물상처럼 생활용품을 판매해온 영광상회.  양갱을 사탕처럼 모던하게 만들어 포장해 인기를 얻은 갱소년, 인생가게는 서점이다. 인생을 주제로 따뜻한 이야기가 담긴 책들을 판매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나주 축협 고기를 엄선한 현대식육점, 직접 농사지은 곡물로 만든 건강 식재료 개미네방앗간, 농장에서 공수한 친환경 식품점 푸르미식품, 건강약초와 구황작물을 다루는 만수상회 등 남도의 식재료를 착한 가격에 살 수 있어 좋다.

기차 시간이 아직 멀어 시장에서 고로케로 요기를 하고, 집에 가져가려고 부각과 참기름, 양갱을 샀다. 바른 음료를 파는 카페1913의 데크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인생가게에서 산 책을 읽는다. 광주 송정역의 제2대합실, 1913송정역시장은 맛있고, 재미있고, 알뜰하게 장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글과 사진 신혜연(콘텐츠 기획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24호 (18.04.17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