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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friday] 에메랄드 바다에 젖은… 열도 최남단의 정글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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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휴양지 '일본의 하와이' 오키나와

일년 내내 푸르다…

수상스키·제트팩 등 해양 스포츠의 성지

미군 흔적 남은 나하시

스테이크·햄버거 유명 북적이는 국제거리… 부유한 휴양지 느낌 물씬

여러 문화 섞인 류큐 왕국

중국 영향받은 슈리성, 전통 무술 가라테 본고장

조선일보

오키나와 나고시 카누차 리조트에서 짐을 풀고 테라스의 문을 열자 에메랄드빛 부세나 해변이 눈앞에 펼쳐졌다. 짠 바람이 들어와 방 안을 가득 메웠다./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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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정글은 덥고 깊고 젖었다. 질펀해 맨몸으론 끝까지 닿을 수 없어 길고 딱딱한 도구를 이용했다. 구릿빛 피부에 팔뚝이 야무진 아가씨가 11인승 승합차에 관광객을 태우더니, 자기 키보다 기다란 카약을 끌고 와 차에 묶었다. 정글 숲을 지나서 갈 때 서두르는 것은 금물. 엉금엉금 기어서 1시간을 오키나와 북쪽으로 달렸다. 맹그로브(열대·아열대 지역 갯벌과 강 하구에 서식하는 식물)가 수북한 숲에 도착했다. 강에 카약 띄워 정글의 정수를 맛보러 노를 저었다.

강가에 빼곡히 자라난 맹그로브가 잎으로 하늘을 뒤덮어 대낮인데도 어두웠다. 노를 저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숲의 고요를 깬 것은 파닥파닥거리는 소리. 맹그로브 나무 아래 육지로 기어올라온 물고기들이 펄떡거리고 있었다. 물속의 포식자를 피해 육지로 올라온 '베도라치'였다.

더 이상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를 구경하느라 카약 탄 관광객들이 한곳에 모였다. 물길을 안내하던 오키나와 아가씨가 잘됐다는 듯 이것저것 설명했다. "여기 가까이 맥주 공장이 있어요. 이 물을 끌어다가 오키나와에서만 생산·판매되는 '오리온 맥주'를 만들어요." 정글 물 끌어 맥주 만든다는 말이 못 미더워 정말이냐고 되물으니 먹어보라며 얼굴에 물을 뿌렸다. 정글 물에선 짠맛이 났다.

1년 내내 초여름

"와, 오랜만이네." 지난달 일본 오키나와 나하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더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덥고 습한 한국의 초여름 날씨가 마중 나와 있었다. 반가움에 감탄사가 나왔다. 날씨가 고장 나 4월에도 눈이 오는 한국과 달리 오키나와는 일년 내내 평균 22도의 온난한 기후를 유지한다. 오키나와를 즐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각종 쇼핑몰과 맛집, 유적지가 몰려 있는 남쪽 나하시(那覇市)에서 관광을 즐기거나, 나고시(名護市)가 있는 북쪽으로 올라가 해변에 세워진 리조트에서 휴양하며 열대우림과 작은 섬들을 탐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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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은 슈리성./일본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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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손에 끌려 곧장 나하시의 번화가인 '국제 거리'로 향했다. 오키나와현이 포함된 류큐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한 후 미국의 지배를 받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됐다. 오키나와 곳곳에 미군이 머물렀던 흔적이 남아 있고, 음식도 미군이 먹던 스테이크나 수제버거가 유명하다. 미군 잠수함 모양의 스테이크 집에 들어섰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직원들이 하얀 해군복을 입고 인사한다. 철판에서 지글지글 익는 스테이크와 장난감 우산이 꽂힌 파란 칵테일에서 일본의 최남단에 온 것을 실감했다.

2차 대전 이전만 해도 오키나와는 농사를 짓는 가난한 섬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지배한 후 상업·운수·금융업 등이 급격하게 발전했고, 관광명소로도 이름을 알리며 지금은 1인당 국민 소득이 동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잘사는 지역이 됐다. 국제거리는 부유한 휴양지의 느낌이 물씬 났다. 관광객이 바글바글거리고, 상점에는 구릿빛 피부의 원주민이 오키나와 전통악기 '산신(三線)' 따위를 연주하며 느긋하게 손님을 맞았다

일본에서 가장 독립적인 현

역사는 건축물에 남는다.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가장 독립적인 현'이라고 불린다. 27년 동안 미국의 지배를 받았고, 1879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일본에 귀속되기 전까지 오키나와는 독립국인 류큐왕국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 역사를 확인하러 나하시에 있는 슈리성으로 갔다.

슈리성을 세운 류큐왕국은 중국·일본·동남아·조선 등과 교류하는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여러 문화가 뒤섞인 국가였다. 그 증거가 슈리성에 남아 있다. 왕이 거주하는 정전(正殿)이 중국의 성과 유사하게 온통 붉은색으로 덮여 있고, 성의 모양새도 중국과 일본의 축성 기술이 혼합된 모양새다. 동아시아의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모습 덕분에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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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무라 민속촌에서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일본 전통춤을 추고 있다(왼쪽). 수상 스포츠의 성지 오키나와에서 제트팩을 즐기는 모습./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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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아무리 훌륭한 건축물도 역사의 숨결까지 담기는 어려운 법. 몸으로 오키나와를 느껴보기 위해 나하시의 가라테 회관을 찾았다. 17세기 오키나와의 무인들이 중국 남권을 간략화한 맨손 무술을 만들었는데, 이게 일본 전통 무술인 가라테의 시작이다. 지난해 개관한 오키나와 가라테 회관에는 일반 경기장과 박물관, 그리고 1년에 딱 세 번 가라테 장인만 들어갈 수 있는 특별도장이 있다.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에서 가라테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며, 가라테 순례 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오키나와 역사를 더 알아보고 싶다면 나하시 중심부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류큐무라 민속촌을 찾아볼 만하다. 열대우림 속에 100년 이상 된 민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여유롭게 둘러보기 좋다. 한국의 민속촌처럼 전통 공연이 계속 열리고, 각종 전통 의상을 입어보고 유리 공예 체험 등을 해볼 수 있다.

수상 스포츠의 성지

오키나와를 제대로 즐기려면 젖어야 한다. 해변에 리조트가 늘어선 오키나와 북부는 해양 스포츠의 성지. 카약부터 스쿠버다이빙·수상스키·플라잉보드 등 수많은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물 로켓을 등에 메면 수력(水力)으로 공중에 뜰 수 있다는 제트팩(Jet pack)을 골랐다. 균형 잡기가 어려워 바닷물로 여러 번 고꾸라진 끝에 하늘로 치솟았다. 저 멀리 열대우림에 있는 맹그로브의 정수리가 한눈에 보였다.

마지막 일정은 오키나와 부세나 해변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 해변에 지어진 카누차 리조트에 짐을 풀었다. 창은 해변을 향해 나 있고, 침대에 누우면 파란 하늘과 바다가 한 폭의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도저히 알코올 없이는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오키나와를 벗어나면 구하기 어렵다는 오리온 맥주를 들이켰다. 오키나와 정글 물을 퍼 날라 만들었다는 이 맥주는 일반 맥주보다 묽고, 탄산이 많아 톡 쏘는 맛이 강하다. 그리고 약간 짠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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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 오키나와는 다른 일본 도시에 비하자면 교통이 불편한 편에 속해 렌터카를 많이 빌린다. 하지만 도로가 한적하다고 해서 속도를 높였다간 벌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 대부분 도로의 제한 속도가 시속 40㎞이고, 한적한 곳도 60㎞ 이내다. 자동차 전용도로도 80㎞ 이상 속도를 낼 수 없다.

명물 : 오키나와는 유리 공예로 유명하다. 특히 류큐 마을에서 만들어진 ‘류큐 글라스’가 잘 알려졌다. 미군 점령기 당시 군 기지에서 버려진 콜라병과 맥주병을 재활용한 것이 오키나와 유리 공예의 시작. 다양한 색감을 가졌고, 질감이 독특하다.

음식 : 오키나와 전통 음식에는 간장과 흑설탕, 전통 소주 등을 넣고 조린 돼지삼겹살 ‘라후테’가 항상 들어간다. 라후테를 고명으로 얹은 ‘오키나와 소바’가 대표적. 고소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취재 협조=일본정부관광국(JNTO)

[오키나와(일본)=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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