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봄소풍, 걷고 싶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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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엄마아빠를 쏙 빼닮은 아이의 손을 잡고 봄소풍을 떠나려면 어디가 좋을까. 복잡하지 않은 한적한 꽃길을 걸으며 초록세상을 마음에 담아보자. 원주는 강물이 맑고 숲은 울창하며, 호숫가에는 낭만이 넘친다. 강원도이지만 서울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어 당일치기로도 제격이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을 걸으며 소중한 가족과 추억을 남기기에 좋은 소풍명소를 찾았다.
■ 우리 가족 꽃길만 걷자
“결혼한 지 10년쯤 되면 연애 시절의 설렘은 찾아볼 수 없지요. 바쁜 직장생활에 치이고, 자녀를 돌보느라 세월이 어떻게 갔는지 모릅니다. 평생 꽃길만 걷자던 약속을 아이 앞에서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원주시청 조은희 계장은 “원주 토박이들이 자주 가는 예쁜 꽃길이 3곳 있다”면서 “사람 발길이 뜸하고 호젓해 아이들과 산책하기에 좋다”고 귀띔했다.
가장 먼저 호수 꽃길로 향했다. 일명 ‘키스 로드(Kiss Road)’로 불리는 곳이다. 1963년 조성된 인공저수지 ‘매지(흥업저수지)’에 있는 아늑한 숲인데, 연세대 원주캠퍼스 정문에서 300m쯤 가다보니 오른쪽으로 길이 나왔다. 느티나무, 벚나무,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한 숲을 흙길을 따라 걸었다.
호숫가를 찬찬히 살피면 가마우지 떼가 눈에 들어온다. 물고기를 사냥하는 가마우지는 물속 5~6m까지 잠수하는 새다. 야생 조수 보호구역인 만큼 호수는 맑고 깨끗했다. 은행나무 숲 아래서 가족사진 한 컷을 남긴다면 스튜디오 광고촬영이 부럽지 않겠다 싶었다. 4㎞ 정도를 한 바퀴 둘러보는데 1시간. 봄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고, 가을에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단풍으로 물들어 환상적이라고 한다.
원주천은 원주시를 관통하는 잘 꾸며진 명품길이다. 토박이들이 자주 찾는 둘레길에는 제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하얀 민들레가 홀씨가 되어 나풀거렸다. 수양버들과 갈대가 안겨주는 낯선 풍경을 가진 야생의 숲, 묘한 끌림에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늦은 오후 아이 손을 맞잡고 산책하는 젊은 부부의 표정이 연애 시절로 돌아간 듯 행복해 보였다.
원주 하면 섬강을 빼놓을 수 없다. 섬강은 강원도 횡성과 평창 경계에 있는 태기산에서 발원해 원주시를 지나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대관천, 금계천 등 수많은 지류들을 받아들이며 남한강에 닿을 때까지 97㎞를 내달린다. 섬강은 여전히 깊고 맑았다. 천혜의 계곡을 굽이쳐 돌아나오는 물빛은 서늘했다. 아이와 걷기에 좋은 코스는 흥원창에서 법천소공원까지 2.5㎞ 구간이다.
“고려와 조선시대 한강의 지류인 섬강이 남한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흥원창이 설치되었습니다. 각 지방의 세곡을 흥원창에 임시 보관해 개경으로 운반했는데, 여기 모인 세곡이 배 1척당 200석의 곡식을 실을 수 있었다고 해요. 평평한 선박이 21척이나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넓었는지 상상이 가십니까?” 원주시청 박종수 계장은 “섬강은 옛스러움을 간직한 물길이 매력적”이라면서 “아이와 지도를 펴고 강줄기를 따라 역사와 지리를 자연스럽게 공부하다보면 색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질 무렵 역사가 흐르는 섬강 물길을 따라 아이의 손을 잡고 차분히 걷다보면 붉게 물드는 저녁노을에 온갖 시름도 강물에 잠긴다. 바다처럼 너른 섬강의 일몰을 배경 삼아 근사한 가족사진을 남기기에 좋다.
■ 우리 가족 추억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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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문헌인 <여지도서>를 보면 원주는 강원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도시다. 사통팔달 중심지이다보니 전국적인 장터가 많이 생겼다. 얼마 전 ‘미로예술시장’으로 간판을 바꾼 중앙시장은 50년 넘은 역사를 지닌 재래시장이다. 1950년대 중앙동 일대에서 열렸던 5일장이 시초이기도 하다. 생동감 넘치는 젊은이들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청년몰은 가동~라동까지 있다. 낡은 콘크리트 슬래브 건물은 겉보기에도 초라했다. 제대로 된 물건을 살 수 있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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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마카롱, 수제케이크, 수제버거, 주점, 도시락, 꽃차 등 먹거리는 물론 퀼트, 유리공예, 네일아트, 테라리엄, 인테리어소품, 클레이 등 70여개 청년 점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좁은 시장골목을 여행하듯 걷다가 마음에 드는 점포가 나오면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갔다. 미로처럼 얽히고설켜 있는 청년몰은 술레잡기를 따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아차’ 하면 길을 헤매기 일쑤였다. 구석구석 예쁘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은 여지없이 발걸음을 잡아챘다. 가족들이 소중한 추억을 남길 만한 곳만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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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동 건물 계단을 오르자마자 ‘청춘’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북카페를 만났다. 원목으로 짜인 커다란 붙박이책장이 벽면 가득했는데, 다락 같은 공간이 복층으로 돼 있어 아이와 독서삼매경에 빠지기에 좋아 보였다. 나만의 향을 만드는 ‘제니헤나’와 ‘쁘띠캔들’은 흥미로웠다. 가족이 원하는 향을 조금씩 골라 수제향수와 디퓨저를 만들 수 있다니…. ‘반지공작소’는 가족들의 이름은 물론 ‘착하게 살자’는 가훈 등 특별한 의미를 반지와 팔찌에 새길 수 있었다. 예쁜 액세서리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우정, 커플, 부부, 모녀반지 등은 가성비도 좋았다. 아이와 직접 은반지 만들기 체험을 해보고 싶었다.
‘작업실 이곳’은 캘리그라피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먹물만이 아니라 수채화와 잉크 등으로 손글씨를 쓰는데,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집주인이 타로카드를 점이 아닌 상담으로 봐주는데, 꽤 인기가 있다고 했다.
1000일 동안 시들지 않는 특별한 꽃을 만든다는 ‘꽃핀 날’은 수국을 말린 뒤 색을 입혀 캔버스에 붙여가며 작품을 만든다. 생화 프리저브드를 활용한 플라워 액자 등은 아내에게 감동을 선물하기에 그만이 아닐까. “달리 드릴 게 추억밖에 없다”는 ‘달추’는 이름부터가 재미있다. 휴대폰 속에 있는 사진을 꺼내 나만의 자석과 액자를 만들었는데,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이렇듯 원주는 가족이 봄소풍 가기에 딱 좋았다.
<글·사진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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