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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friday] 3無 '박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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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요, 박캉스] [Cover story] 휴가 가긴 가야겠고… 편견을 깨는 '박물관 여행'

재미난 돼지박물관, 악 소리 나는 기생충박물관… 애주가는 술박물관 가면 되겠네

7월, 꼭 어디론가 떠나야 할까. 한낮 최고기온 35도가 넘는 찜통 속에 끓어오른 인파(人波)를 헤엄치다 보면 차라리 간담이나마 서늘한 회사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먹구름 잔뜩 머금은 장마철 하늘이 비웃으며 비를 뿌릴 때 공들여 짠 휴가 계획도 침수한다. 7월 초, 바캉스 떠나기 너무 위험한 시기.

그래도 다 가는데 우리만 안 갈 수 없어 인터넷에 '바캉스' 검색한다. 숙박 예약은 만원이고, 빈방 가격은 불만이다. 시원하고 조용하고 의미 있고 저렴한 곳은 없을까. 혹시나 하는 단어 하나 떠오른다. 날씨 때문에 싸울 일도 계획 틀어질 일도 없는 곳, 박물관.

알게 모르게 많은 이들이 이미 박물관을 여행의 핵심으로 꼽고 있다. 호텔스닷컴이 지난해 10월~올해 1월까지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여행' 관련 키워드 500만 개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뜻밖에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이 언급된 횟수는 총 30만5762개로 요즘 유행하는 여행 코스 루프톱(2위·25만5892개)이나 사진 잘 나오는 구시가지(3위·17만1177개)를 앞섰다.

서둘러 한국 박물관 검색한다. 국내에 박물관으로 등록된 곳의 개수만 무려 1000여 개. 고색창연한 문화재가 덩그러니 놓인 곳만 박물관은 아니다. 박물관은 고리타분하고 조용한 곳이라는 편견 거두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다. '도대체 왜 모은 것일까' 생각되는 특이한 물건부터 가족끼리 연인끼리 웃고 떠들 수 있는 박물관까지 각양각색이다. 실패 없는 바캉스 바라며 해변 대신 지식의 파도 넘실대는 박물관으로 '박캉스(박물관+바캉스)'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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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대형 자물쇠부터 가로·세로 길이 1㎝가 안 되는 초소형 자물쇠까지 전 세계 잠금장치를 모아놓은 쇳대박물관. ②한국의 떡 문화를 망라한 떡박물관. ③돼지박물관에서는 돼지들의 기상천외한 묘기를 구경할 수 있다. ④권진규미술관에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 취향까지 만족하게 하는 장난감 전시장이 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표태준 기자·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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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살고 있다

박물관이라고 낡고 멈춰 선 것만 있으란 법 없다. 산 것들로 가득해 생명력 꿈틀대는 박물관 찾아나섰다. 경기 이천시 월포리에 있는 돼지박물관 돼지보러오면돼지에는 ‘꿀꿀’ 돼지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소시지 강국 독일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삼겹살 강국 한국에 생긴 돼지 박물관이다. 돼지 인공수정사 이종영씨가 1994년부터 18개국을 돌며 수집한 돼지 관련 서적, 사육 도구, 장식품, 저금통 등 5000여 점을 볼 수 있다. 전 세계에 분포한 돼지의 종류와 사육 방법, 그리고 요리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울 수 있다.

이 더위에 무슨 돼지 관람 싶다면 잠시 그 마음 거두어도 좋겠다. 이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귀여운 돼지들의 발랄한 공연. 짧은 발로 ‘따다닥’ 소리를 내며 뛰어다니는 돼지들이 볼링과 축구를 하고, 가방을 탈출하고 장애물을 뛰어넘는 등 묘기를 펼친다. 최대 시속 40㎞로 달려 육상 선수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다는 돼지의 날렵한 몸놀림에 감탄사가 나온다.

돼지가 냄새 나고 더럽다는 편견도 내려놓자. 돼지와 입맞춤하는 키스 타임도 있기 때문. 소시지 만들기, 돼지 그림 그리기 등 체험도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아이들의 그림 속에는 “돼지들이 너무 귀여워 이제 고기 못 먹겠어요”라는 글귀가 꼭 적혀 있다. 하지만 박물관 관람 마지막 순서는 갓 구운 소시지를 먹는 시간. 소시지를 먹고 있으면 박물관 직원들이 풀어놓은 돼지들이 뛰쳐나오고, 어루만지며 같이 사진을 찍을 기회가 주어진다. 아이들에게 자연의 섭리를 일깨워준다. (031)641-7540

관심 두고 싶지 않았던 생명체, 기생충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박물관도 있다. 서울 화곡동 기생충박물관에 들어서면 절로 ‘으악’ 소리가 먼저 나온다. 작은 뱀만 한 ‘사람 회충’ 수백 마리가 얽히고설킨 모습으로 전시된 유리상자가 눈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고개 돌리면 사람뿐만 아니라 여러 동물에 기생하는 각종 기생충과 이에 감염된 내장 등이 전시돼 있다. ‘놀랍고 아름다운 기생충의 진짜 모습’을 주제로 한 이 박물관에는 여러 기생충과 이와 관련된 연구물 등을 볼 수 있다. 적이 나타나면 수컷이 암컷을 꼭 끌어안은 채로 절대 놓지 않고, 암컷에게 자기가 먹어야 할 먹이까지 양보하는 로맨티시스트 기생충 ‘주혈흡충’의 얘기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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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박물관에는 4000여 종의 거미 표본이 전시돼 있다./한국관광공사


학교에 꼬박꼬박 채변 봉투를 제출했던 한국이 어떻게 ‘기생충 왕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났는지 알아가는 과정도 재밌다. 한국은 1950~60년대 국민의 장내 연충류 감염률이 무려 90%를 넘었다. 이에 1964년 한국기생충박멸협회(현 한국건강관리협회)가 출범했고, 1966년 기생충 질환예방법이 제정되면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검사와 투약 등 체계적인 기생충 관리사업이 이뤄진 것이다. 현재는 장내 연충류에 감염된 이가 2% 안팎이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신종 기생충 출현과 외래 기생충이 침투하며 기생충 질환은 진단과 치료가 매우 어렵고 전문성을 요구하는 특수 질환군의 하나로 변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면 근처 약국에서 회충약을 사먹게 된다. 박물관은 평일(월~금) 오전 10·11시, 오후 2·3시 등 총 4회 예약제로 운영된다. 개인이나 단체로 관람이 가능하다. (02)2601-3284

한번 물리면 성인 남성도 목숨을 잃는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독을 가진 거미를 보고 싶다면 경기 남양주시 진중리 거미박물관을 찾으면 된다. 치명적이어서 매혹적인 ‘붉은 등 거미’ 등 200여 종의 살아 움직이는 거미와 4000여 종의 거미 표본이 전시돼 있다. 거미 연구가 김주필 동국대 교수가 전 세계를 다니며 채집한 거미와 연구 자료를 모아 설립했다. 거미 중 가장 인기 있는 종은 손바닥 크기만 한 ‘자이언트 바븐’. 거미 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직접 살아있는 거미들을 만져볼 수도 있다. (031)576-7908

웬 빗자루가 전시돼 있나 싶어 가까이 다가섰더니 곤충이었다. 길이 50㎝가 넘는 ‘보르네오긴대벌레’ 암컷을 보고 있으면 그 크기에 압도된다. 서울 화곡1동 충우곤충박물관에는 부리로 연필도 부러뜨리는 ‘헤라클레스왕장수풍뎅이’ 등 전시 표본 1000여 점이 있는 제1전시관과 세계 최대 크기의 나비로 알려진 ‘골리앗왕비단제비나비’가 전시된 제2전시관으로 구성됐다. ‘보석풍뎅이’ 등 등껍질이 오색찬란한 곤충은 마치 보석상에 온 기분이 들게 한다. 곤충 마니아들에게는 곤충 표본 많은 곳으로 소문난 곳. 곤충 좋아하는 아이들과 가볍게 둘러볼 만하다. (02)2601-3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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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돼지박물관에서는 돼지와 입맞춤하는 키스 타임 행사도 있다. ②몸속에 꼭꼭 숨어 보기 어려웠던 기생충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기생충박물관. ③④충우곤충박물관에서 한국에 없는 전 세계 희귀 곤충을 만날 수 있다. /돼지박물관·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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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물건 모아놓은 이색 박물관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철수와 영희는 도대체 몇 살이나 먹었을까. 세종시 내판리 교과서박물관에서 답을 구할 수 있다. 국내 유일 교과서 박물관으로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국내외 교과서 등 학습 자료 20만 점을 모아놨다. 지상 2층짜리 건물은 교과서 전시실, 인쇄 기계 전시실, 기획 전시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1층 교과서 전시실엔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미 군정기를 거쳐 1~7차 교육과정에 사용된 교과서를 볼 수 있다. 철수와 영희가 최초로 등장한 교과서는 1948년 국민학교 1학년 1학기용 국어교과서 ‘바둑이와 철수’다. 철수와 영희는 48년 이전에 태어나 최소 일흔 살 이상 잡순 어르신인 것이다.

고종 32년인 1895년 쓰인 우리나라 최초의 국정교과서 ‘국민소학독본(國民小學讀本)’과 현대 경·위도선으로 그려진 첫 한국전도가 첨부된 대한지지(大韓地誌·1899년 발행) 등 사료적 가치가 큰 교과서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실 중앙엔 1960년대 교실 풍경이 펼쳐진다. 성인 무릎 높이의 책상과 의자를 비롯해 난로, 교탁, 풍금 등은 모두 당시에 사용하던 것들이다. 손때 묻은 크레용과 주판, 각도기, 양은 도시락 등이 어른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자연스레 자녀와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044)861-3141

귀한 것은 자물쇠를 걸어 보관하고 열쇠를 넣어 꺼내보는 행위 자체만으로 희열을 느끼게 해준다. 그 환희 배로 체감하기 위해 만든 쇳대는 예부터 문화예술의 집약체였다. 쇳대는 자물쇠와 열쇠를 아울러 일컫는 방언이다. 서울 동숭동 쇳대박물관은 국내 유일 쇳대박물관으로 전시품 350여 점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ㄷ자형, 원통형, 물상형, 함박형, 붙박이형, 빗장, 열쇠패 등 통일신라 때부터 고려, 조선, 최근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담긴 쇳대들이다. 가로·세로 1㎝ 크기의 초소형 자물쇠부터 30㎝가 넘는 대형 자물쇠까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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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교실 풍경을 체험해볼 수 있는 교과서 박물관(위)과 전 세계 술을 전시해놓은 술 박물관 리쿼리움./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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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아프리카, 중동 등의 쇳대와 우리나라 것을 비교해보며 보는 것이 관람 포인트. 서양에선 대체로 쇳대가 권위를 상징해 크고 화려하게 발달했다면, 우리나라 등 동양권에서는 자물쇠 몸통이 소박하고 단아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쇳대는 동식물 형상을 그려넣어 다산을 기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물쇠가 여성을, 열쇠가 남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02)766-6494

이 많은 종(鐘)이 다 어디서 왔을까. 충북 진천군 장관리 종박물관은 국내 유일 종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다. 종에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신비함이 깃들어 있어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분위기에 압도된다. 높이 3.75m, 지름 2.27m로 현존하는 고대 범종(梵鐘) 중 가장 큰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이 실물 크기로 재현돼 있다. 쇳물 주조 과정을 마치고 떼어낸 거푸집을 함께 전시해 이 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볼 수 있다. 전시장에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어진 밀랍주조 공법으로 복원한 다양한 범종들이 즐비하다. 종 앞에 마련된 원판을 발로 누르면 실제 종을 칠 때 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진동수가 다른 두 소리가 서로 간섭하며 작아졌다 커졌다 하는 ‘맥놀이 현상’을 통해 종소리가 나는 과정을 알기 쉽게 보여주는 코너도 있다. 중국 소수민족의 장식용 모자에 달린 종, 이탈리아 베네치아 가면무도회 때 쓰는 가면에 달린 종 등 앙증맞은 종들도 가득하다. (043)539-3847

어른과 아이 모두의 취향을 만족하게 할 박물관을 찾는다면 강원 춘천시 월곡리 권진규미술관을 추천한다. 건물 2층에는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작품 150여점이 전시돼 있다. 3~4층에는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아이언맨과 헐크버스터를 비롯해 철인 28호, 로보트 태권 V 등 각종 캐릭터 장난감 1만여점이 전시된 장난감박물관이 있다. (033)243-2111

[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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